내부(內部)의 전신은 의정부 내각 8아문의 하나인 내무아문(內務衙門)으로 1895년 을미개혁 당시 설치되었다. 1등국인 주현국(州縣局), 2등국인 토목국·판적국(版籍局), 3등국인 위생국·회계국으로 구성되어 지방인민(地方人民)의 제치사무(制治事務)를 총괄하는 기능을 담당하였으며, 1910년의 일제강점 이후에는 조선총독부로 편입되어 새로운 조직 체계로 구성되었다.
내부 청사는 1909년 6월 광화문 동남쪽의 옛 의정부 터에 착공되었고, 1910년 8월에 준공되었는데, 공사 기간 중에 일제에 강점되면서 완공 후에는 바로 경기도청으로 활용되었다. 건물은 건축면적 약 236평의 2층 벽돌조 건물로 계획되었으며, 사용된 재목은 대부분 영림창(營林廠)의 관급자재가 사용되었다.
현재 국가기록원에는 내부와 관련된 도면 18매가 소장되어 있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명칭 | 연도 | 도면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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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 1895-1910 | 18 |
내부 청사는 현재의 세종로변 광화문 시민열린마당과 대한민국역사박물관(구 문화체육관광부) 자리에 계획되었다. 세종로 즉, 일제강점기의 광화문통(光化門通)은 조선시대 이래 국가의 최고 행정을 담당하는 기관들이 도열한 장소였다. 대한제국기 이 일대에는 광화문통을 중심으로 광화문 앞부터 서쪽에는 근위대대(近衛大隊), 경시청(警視廳), 군부(軍部), 법부(法部), 통신관리국(通信管理局)이 자리 잡고 있었으며, 동쪽에는 내부(內部), 법무원(法務院), 학부(學部), 탁지부(度支部), 법관양성소(法官養成所)가 자리하고 있었다. 1909년 청사가 착공되기 이전의 내부(內部)는 여러 동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중심 건물군의 전면에는 광화문통과 평행하게 배치된 세장한 건물들이 부지를 감싸고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내부 청사가 신축되면서 청사 전면의 건물들은 철거되었다. 부지 내 기존 건물들과 청사의 위치는 [도판1]의 좌측 상단에 간략히 표기되어 있다. 청사는 건물의 정면이 광화문통과 평행하도록 새로이 배치되었으며, 건물 전·후면에 넓은 공터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청사 건물 후면으로 기존 내부(內部)의 건물군이 확인된다.
내부 청사는 길이 210척(약 63.6m)의 一자형 전면 동을 중심으로 중앙부와 양단이 전·후면으로 돌출된 좌우 대칭의 평면 형태로 계획되었다. [도판1] 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이러한 평면은 일제강점기 도·부청사의 평면 유형 중 하나인 E자형 평면과 유사한 형태이다. 청사 건물의 중앙부에는 건물로 출입할 수 있는 정문이 설치되었는데, 정문과 마주한 반대편에도 문짝이 없는 개구부가 계획되어 있었다. 이 중앙 공간에서 양측의 계단과 문을 지나야 비로소 건물 내부의 복도로 진입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이 공간은 지면과 바닥 높이가 같다는 점으로 보아, 이곳은 실내라기보다는 건물을 관통할 수 있는 내부 통로처럼 계획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도판2]와 [도판3] 의 중앙부, [도판3]의 좌측 상단 중앙일부횡단면 참조) 이 중앙부 통로의 우측으로는 숙직실과 경찰 숙직실, 좌측으로는 문서과 접수실(受付室)이 계획되었다. 건물 내부의 각 실들은 건물 후면의 공터와 면한 폭 7척(약 2.1m)의 복도를 통해 연결되었으며, 1층과 2층은 중앙부 통로의 양측과 건물 양단에 위치한 총 4개의 계단실로 연결되었다. 각 실들의 이름을 살펴보면 관련 부서별로 실들이 배치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1층의 우측은 회계과(會計課), 좌측은 토목국(土木局)이, 2층의 우측은 경무국(警務局), 좌측은 지방국(地方局)이 주로 공간을 사용하도록 계획되었다. 두 층의 평면 공간 구성방식은 동일하나 각 실들은 비내력벽으로 구획되었기 때문에 실 크기의 조절이 가능하여, 각 부서별 공간 활용 방식에 따라 1, 2층의 실 구획에서는 약간의 차이가 보인다.
내부 청사는 벽돌 벽체에 목조로 층간바닥과 지붕가구를 구성하는 벽돌조 구법으로 계획되었다. 지붕가구는 왕대공 트러스를 사용하여 길이 24척(약 7.3m)의 스팬을 가로지르도록 계획되었다. ( [도판4] 참조) 1910년 이전의 관립 근대시설은 목조 건물이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내부 청사의 신축에 벽돌조 구법이 사용된 것은 정부 중심 시설의 위상을 잘 보여주는 것이며, 이러한 점은 입면 계획에서도 잘 드러난다. 난방 방식으로는 각 층의 각 실에서 운영할 수 있는 페치카 방식이 적용되었으며, 굴뚝을 통해 지붕 위로 연기가 배출되도록 하였다.
건물의 정면에는 중앙부를 강조하는 의장 방식이 주로 사용되었으며, 좌우 단부에도 장식적인 요소를 가미하였다.( [도판2] 참조) 반면 후면은 의장요소를 생략하고 단순하게 계획되었다. ( [도판3] 참조) 정면의 의장 방식을 살펴보면, 전면의 중앙부를 삼분하여 양쪽은 전면으로 돌출시키고 가운데의 상부는 박공지붕 위로 솟은 사각의 탑처럼 계획하는 등, 서양 건축의 작은 탑을 연상하게 하는 성벽형 의장 방식이 사용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중앙 및 좌우단부 돌출벽체의 상부에 원형 혹은 반원형의 화려한 장식을 덧붙인 것도 특징적이다. 나아가, 중앙부와 단부의 정면은 1, 2층 사이의 수평 돌림띠를 강조하고 2층에만 벽기둥 장식을 적용하여 1, 2층을 수평적으로 구분하는 의장 방식을 택했다면, 나머지 입면에서는 창문 주변으로 1, 2층을 연결하는 석조 의장을 사용하여 수직성을 강조한 특징이 있다.
한편, 국가기록원에 소장된 내부 관련 도면 중에는 실제 건축된 계획안이 아닌 시안도 포함되어 있다. [도판5]는 비늘판벽으로 마감한 목조건물로 청사를 계획한 시안으로 추정되는데, 실제 계획안과 같이 정면 중앙부와 양단을 의장적으로 강조하였다는 공통점이 보인다.
[참고도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