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출장소는 사세국 시기인 1912년경 설치되어 강점기 말기인 40년대까지 유지되었으며, 담배 생산을 위한 건조 시설 등을 중심으로 운영이 되었던 시설이다. 현재 국가기록원에는 충주출장소와 관련된 건축도면 34매가 있다.
명칭 | 연도 | 도면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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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 사세국 충주출장소 | 1912~1914 | 4 |
조선총독부 탁지부 충주출장소 | 1915~1919 | 13 |
조선총독부 전매과 충주출장소 | 1919~1921 | 1 |
조선총독부 전매국 충주출장소 | 1922~1945 | 16 |
* 연도는 ‘『朝鮮總督府及所屬官署職員錄』, 1910~1941’을 참고로 조사하였다. 다만, 직원록이 1941년까지만 확인 가능하므로, 그 이후는 유지된 것으로 추정하였다.
충주 출장소의 가장 이른 시기의 모습은 [도판 1]에서 확인할 수 있다. 1910년대 초반에 작성된 도면으로 연초화력건조실(煙草火力乾燥室) 등의 건물을 증축하기 위한 배치도 이다. 남북 방향의 도로 서쪽에 면한 부정형의 부지에 출장소가 계획되었었는데 서쪽 대지가 높아 두 단의 부지로 정리하여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기존 부지 뿐 아니라 도로 동쪽에도 새로 부지를 마련하여 시설을 증축하려는 계획이 나타나 있다. 점선으로 표현된 것이 기존 건물로, 부지의 서쪽 언덕 위 가장 안쪽에 위치한 감리실(監理室)에서부터 도로까지 이어지는 부지 안의 도로가 출장소의 주요 축을 이루고, 이를 따라 건물들이 배치되었다. 감리실 앞에는 도로 북쪽으로 재건조장(再乾燥場)이 있고, 하단 부지에는 작업장과 여러 채의 화력건조장(火力乾燥場)이 도로 양쪽에 배치되었다. 도면에서 보이는 실선으로 표현된 것은 신축건물인데 기존의 시설이 10여 동의 건물이 운영되는 적지 않은 규모의 것이었는데도 기존 시설만큼의 새로운 건물을 더 증축하려는 계획으로 보아 당시 전매 관련 사업이 상당한 규모로 확장되는 시기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신축되는 건물의 용도는 창고, 시험건조실, 작업장, 화력건조실 등이다. 이후 출장소는 큰 변화 없이 기존 건물을 일부 증축하여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먼저 감리실을 살펴보면, 전면에 사무실, 숙직실, 탕비실 등이 있는 본채를 두고 뒤에 변소를 두어 복도로 연결하여 평면을 계획하였다.([도판 2] 참조) 이 모습은 출장소 청사 공통도면에서 보이는 평면과 그 규모가 비슷하고 형태가 유사한 것으로 보아 본 청사의 평면형식이 공통도면으로 활용되기 이전부터 사용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단층 목구조 건물로 지붕은 일본식 목구조의 경사지붕으로 계획되었고, 외부 마감은 누름대 비늘판벽으로 구성하였다. 감리실에 대해서는 1920년대 중반 증축이 진행되었는데 그 상세는 [도판3]에서 볼 수 있다. 기존 감리실 동남쪽에 있던 농부사(農夫舍)를 이축, 남쪽에 배치하고 복도로 연결하여 숙직(宿直) 영역으로 변경하고, 기존 소사실 영역 뒤를 증축하여 사무실 영역을 확장하는 계획을 살펴 볼 수 있다.
[도판4]는 탁지부 산하의 출장소로 운영되던 시기인 1910년 중반에 작성된 것으로 재건조장을 신축하려는 계획이다. 단층 목조 건물로 트러스를 사용하여 지붕틀을 만들고 경사지붕을 설치하였다. 지붕의 용마루 부분에는 겹지붕을 두어 그 측면으로 채광과 환기가 가능하도록 창문을 설치하였다. 외벽은 영국식 비늘판벽으로 마감하였다. 내부에는 작업장·전준실(塡樽室)·기관실·습윤실(濕潤室)을 두었다. 습윤실을 별도의 벽돌조로 내부에 설치한 점이 특징적이다. 재건조실은 이후 전면에 회랑을 설치하고, 서쪽에 기계실과 압착실(壓搾室) 등을 증축하는 등 몇 차례의 변화가 있었다.( [도판 5], [도판 6] 참조)
화력건조실의 모습은[도판 7]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쪽 길이가 긴 직사각형의 평면에 단층 건물로는 높은 층고(15자, 약4.54m)를 가진 일본식 지붕틀로 구성된 양식목조 건물로 계획되었다. 벽은 양쪽으로 석회를 2번 발라 만들었다. 지붕은 용마루 부분에 설치한 창문을 통해 내부의 공기를 외부로 배출하도록 계획하였는데, 도르래와 줄을 사용하여 건물 외부에서 개폐가 가능하도록 장치하였다. 이외에도 개폐가 가능한 창문을 건물의 곳곳에 계획하였는데, 건물의 중간 뿐 아니라 지면과 맞닿은 곳에 지창(地窓)도 계획하여 건조과정에 적절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바닥에는 건조를 위한 설비가 설치되었는데, 한옥의 온돌과 비슷한 구조를 하고 있다. 한쪽에는 불을 땔 수 있는 아궁이를 두고 파이프로 된 연도(煙道)를 설치하여 연도가 건조실 전체를 돌아 다시 아궁이 위에 설치된 굴뚝으로 빠져나가도록 계획하였다. 파이프는 바닥에 묻지 않고 노출시켜 아궁이에서 공급된 열이 바로 건조실에 전달이 될 수 있도록 하였고, 굴뚝을 아궁이와 같은 위치에 설치하여 열이 바로 빠져나가지 않고 한 번 더 방을 거쳐 나가도록 고안하였다. 화력건조실은 12자×18자(약3.64m×5.45m)의 크기를 기본 모듈로 사용하여 1~4개를 묶어 한 건물로 계획하여 사용한 것으로 보이며, 이는 작업자의 능률 및 축열·집열 등의 에너지 효율을 고려한 계획으로 판단된다.([도판 8] 참조) 이러한 화력건조실의 설비는 몇 가지 형태의 것을 직접 지어 연초의 건조 정도를 시험해 보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도판9]에서 확인된다. 이 건물은 연초시험건조실로 네 가지 다른 형태의 건조 설비가 설치되어 있다. 아궁이에서부터 굴뚝까지의 연도가 한옥의 온돌에서처럼 실 바닥에 묻힌 것과 드러난 것, 여러 가지 연도의 구조, 굴뚝의 위치를 다르게 하는 등 흡사 다양한 온돌의 구조를 보는 듯한데, 연도의 형태와 길이·노출 정도 등을 다르게 하여 연초의 건조 정도를 시험하여 적당한 건조 상태, 효율적인 건조 시설 등을 시험한 것으로 보인다.
전매지국 체제로 운영되던 1922년 이후의 모습은 [도판 10]에서 확인된다. 1923년에 건조장과 창고를 오가기 위한 궤도를 부설하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전체적인 부지의 모습이 나타나 있지 않고, 표현된 땅의 형태나 건물의 모습 등은 [도판 1]의 모습과 연관관계를 찾기 어렵다. 다만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기존 배치 모습이 확인되고, 많은 수가 있는 창고에 비해 건조장은 큰 규모의 재건조장만 있는 것으로 보아, 1차 건조 이후의 작업이 이루어지던 시설이 배치된 부분임을 알 수 있다. 즉,[도판 1]에 기재된 부지의 확장 부분이라 추정할 수 있다.
[참고도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