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총독부는 일제강점기 전매(專賣) 업무를 시행하기 위하여 1910년 우리나라에 전매국(專賣局)을 설치하고, 통감부 시기 탁지부 사세국(司稅局)에서 담당하였던 홍삼의 전매와 연초, 소금에 대한 과세 등의 업무를 승계하여 운영하였다. 전매국 산하에 개성, 주안, 광양만 출장소 설치를 시작하여 점차 그 수를 늘려 관련 업무를 관장하였으며, 그 외에 파출소, 관내판매소 등을 함께 운영하였다. 하지만, 관제 개정으로 외국(外局)으로서의 전매국은 1912년 폐지되었고, 조선총독부 산하의 사세국 전매과(1912), 탁지부 전매과(1915), 재무국 전매과(1919)로 순차적으로 개편되었다. 이후, 1921년 <조선연초전매령(朝鮮煙草轉賣令)>이 제정되면서 칙령 제53호로 <조선총독부전매국관제(朝鮮總督府專賣局官制)>가 1921년 3월 29일 공포되되었고, 중앙에 다시 전매국이 설립되었다. 경성, 대구, 전주, 평양에는 산하의 전매지국이 설치되었으며, 각 전매지국 소속으로 23개 출장소를 두어 전국의 전매 업무를 관장하였다. 이후 1923년부터는 더 많은 지역에 파출소가 설치되기 시작하였으며, 출장소와 파출소는 실제적으로 각 지역의 담배, 소금, 인삼, 아편의 전매사업을 관장하였다. 이후, <전매국관제(專賣局官制)>는 사업 규모 변화에 따라 이후 약 20여 회에 걸쳐 개정되었는데, 1936년 전매지국의 명칭이 지방전매국으로 바뀐 것을 제외하면 큰 변동이 없었지만, 출장소와 파출소는 그 명칭과 위치, 관할 구역에 있어 잦은 변동이 있었다.
이렇게 다수의 출장소 및 관련 시설을 전국에 건설하면서 모두를 개별적으로 계획하지 않고 표준설계도인 ‘공통도면(共通圖面)’을 사용한 점은 전매시설 계획의 특징이다. 특히, 이러한 공통도면은 부속시설에 주로 사용되었다. 국가기록원에 소장된 전매시설 관련 도면에도 공통도면은 모두 47매로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명칭 | 연도 | 도면수 |
---|---|---|
출장소 청사 및 부속시설 | 1922~23 | 16 |
파출소 청사 | 2 | |
연초 및 엽연초수납소 | 10 | |
창고 | 9 | |
작업장 및 건조실 | 3 | |
기타 | 7 |
먼저, 전매지국 출장소 청사 및 기타 부속 시설에 관련된 공통도면은 모두 16매가 소장되었다. 그 중에서 출장소 청사의 평면 및 입면 계획을 확인할 도면은 6매이며, 5개 유형의 출장소 청사에 대한 계획이 기재되었는데, 내용을 간략히 정리하면 아래의 표와 같다. 전매지국 출장소 청사의 공통도면을 살펴보면, 1922~23년의 짧은 기간 동안임에도 그 설치 수만큼이나 다양한 계획이 시도되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공통적인 계획 부분을 보면, 청사의 내부는 큰 공간의 사무실로 단순하였으며, 후면에 탕비실, 숙직실, 변소 등의 부속 공간이 배치되었다. 하지만 각 도면마다 청사의 전체 형태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도면제목 | 작성연도 | 평면형태 |
전면 길이 |
측면 길이 |
청사구조 입면마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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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매국출장소청사신축설계도 | 1922.06 | 튼 T자형 | 54尺 | 30尺 |
양식목조 누름대비늘판벽 |
전매국출장소청사신축설계도 | 1922~23 추정 | T자형 | 72尺 | 30尺 |
양식목조 누름대비늘판벽 |
전매국출장소청사신축설계도 | 1923.05 | T자형 | 78尺 | 30尺 |
양식목조 누름대비늘판벽 |
전매지국출장소청사신축설계도 | 1923.05 | T자형 | 48尺 | 24尺 |
양식목조 모르타르 바름 |
전매지국출장소청사신축설계도 | 1923.05 | T자형 | 48尺 | 24尺 |
양식목조 모르타르 바름 |
전매지국출장소청사신축설계도 | 1923.07 | 2층 T자형 | 48尺 | 30尺 | 벽돌조 |
우선, [도판1]의 경우에는 사무실 부분에서 일반인 대기실(公衆控所)를 전면 현관 안쪽이 아닌 측면에 배치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별도 출입구를 측면에 설치하였다. 그로 인해 후면의 부속가도 전면 중앙이 아닌 오른쪽에 치우치게 되었다. 반면 [도판2]는 부속가가 사무실 중앙 후면에 배치되었으며, 사무실 부분의 전면 길이도 [도판1]의 54척(尺)(약 16.4m)에서 72척(尺)(약 21.8m)으로 증대되었다. [도판3]은 청사의 크기가 전면 78척(尺)(약 23.6m)으로 더 켜졌으며, 그에 따라 중앙에 복도를 두고 사무실을 좌우로 나누어 계획하였으며, [도판1]과 [도판2]에서는 측면의 일반인 대기실이 전면 현관 안쪽으로 이동되었다. 이와 함께 전면 일부분에는 소장실(所長室)도 계획되었다. 이렇게 크기와 내부 구성은 조금씩 변하지만, 이들 세 계획은 모두 양식 목조 구법의 단층 건물로, 벽체는 가장 단순한 누름대 비늘판벽으로 마감되었다는 공통된 특징을 보인다.
이와는 다르게 [도판4]의 가장 큰 특징은 모르타르 바름의 입면 마감 방식이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이와 함께, 전면 현관부의 크기도 확대되고 지붕에 박공창이 설치되는 등 관립시설로서 보다 엄중한 전면 입면이 계획되었다. 내부는 [도판3]과 유사하게 좌우에 하나씩의 사무실을 두고, 그 전면에 대기실과 응접실을 계획했다. 다만, 크기는 전면 48척(尺)(약 14.5m), 측면 24척(尺)(약 7.3m)으로 전술한 세 가지보다 훨씬 작은 규모이다. 특히 [도판3]과 [도판4]는 작성 연도가 1923년 5월로 동일함에도 이렇게 입면 마감·규모 등에서 크게 다른 계획을 보여주어서 출장소 청사 계획에 대한 많은 고민을 짐작케 한다.
나아가 [도판5]에서 보이는 출장소 청사 계획은 더 큰 변화를 보여준다. [도판6]에서 볼 수 있는데, 지붕은 서양식 트러스이며, 내부에는 벽돌조 벽체가 추가되고 2층 바닥은 목조였다. 한편, 이 [도판6]의 제목에는 ‘전매국 출장소’라 기재되었는데, [도판5]에는 ‘전매지국 출장소’로 되어, 당시 ‘전매지국 출장소’와 ‘전매국 출장소’라는 명칭이 혼용되었음을 잘 보여준다.
전매지국 파출소 청사에 대한 공통도면은 [도판7]과 [도판8]에서 볼 수 있다. 이 두 도면 역시 1922년 것으로 각각 6월과 8월에 작성되었으며, 두 계획의 평면 형태는 동일하다. 두 청사는 모두 양식 목조구법에 누름대 비늘판벽으로 마감한 단순한 건물이었다. 하지만 가장 크게 다른 점은 거주 공간에 설치된 온돌이다. 즉, 6월의 계획을 보다 추운 지역에 적용하기 위해 일부 수정하여 8월의 계획이 작성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입면 계획에서도 나타난다. 6월의 것은 사무실 부분의 창호가 크게 되었지만, 8월은 좁고 세로로 긴 창호로 바뀌었다. 현관 상부의 포치 역시 삼각 형태에서 평평한 형태로 바뀌고, 내부는 다른 시설의 최하급 파출소 청사와 마찬가지로 사무와 주거의 병용 건물로 계획되었다. 한쪽에는 넓은 사무실이 자리하며, 그 후면에 탕비실·변소 등의 부속공간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거주를 위한 방들이 배치되었다.
청사 외에 공통도면으로 작성된 건물들로는, 연초 수납소·작업장·창고·변소·정문 등이 있다. 연초(煙草) 및 엽연초(葉煙草) 수납소는 내부에 커다란 작업 공간을 가진 단층 목조 건물이다. [도판9]나 [도판10]에서 보는 것처럼, 내부에는 화물하치장·수납 및 감정소·임시창고(上家)를 기본으로, 계산실·현품(現品)대조장 등이 설계되었다. 건물은 누름대 비늘판벽으로 마감된 단순한 건물이었으며, 수납장에는 원형 궤도가 설치되어 검품을 편리하게 하도록 한 것이 흥미롭다. 이외에도 [도판11]과 같은 다양한 크기의 창고도 공통도면으로 계획되었는데, 창고의 경우에도 모두 양식 목조구법과 누름대 비늘판벽 마감을 사용한 가장 저렴하고 단순한 형태였다.
[참고도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