칙령 제53호에 의해 1921년 4월 1일에 신설된 전매국은 조선총독부 상품진열관으로 사용되었던 대한제국 농상공부 청사(현재 남대문세무서)를 1928년부터 사용하다가, 1940년 광화문통(光化門通, 현재 세종로) 경성법학전문학교 부지로 이전하여 청사를 신축하였다. 이후, 1943년 12월 1일에는 관제 개정을 통해 외국(外局)이었던 전매국은 폐지되고 관련 업무는 재무국에 신설된 전매총무과(專賣總務課)와 전매사업과(專賣事業課)에 각각 이관되었다. 현재 국가기록원에는 전매국과 관련된 건축도면 111매가 있다.
명칭 | 연도 | 도면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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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 전매국 | 1921~1943 | 111 |
국가기록원의 전매국 관련 도면은 모두 1940년경의 신축 이전 계획과 관련된 것이다. 그 전체적인 모습은 1938년 작성된 [도판1]에서 볼 수 있는데, 기존에 있었던 법학전문학교 관련 시설을 모두 철거하고 새로운 청사를 신축하려는 계획을 확인할 수 있다. 부지는 부정형으로 서쪽과 북쪽은 도로와 접하였고 동쪽은 크고 작은 여러 부지들과 인접하였는데, 청사는 서쪽의 대로에 면하여 서향으로 배치되었다.
전매국 청사의 평면 계획은 [도판2]에서 확인할 수 있다. 좌우로 긴 일자형 건물과 중앙 후면에 덧붙여진 부속 공간으로 계획되었다. 이러한 평면이 확정되기까지는 다양한 평면계획을 시도했는데, 이는 [도판3]와 [도판4]에서 확인된다. 건물의 오른쪽 또는 왼쪽의 끝부분을 뒤로 확장하여 ㄱ자 또는 ㄷ자 형태의 평면을 계획하기도 했었는데 계획 당시 자금조정법 시행 등의 경제적인 제약에 의해 청사 계획이 축소 확정된 것으로 보이며, 확정된 계획도 중간에 공사가 중지되는 등의 어려움이 있었다. 청사의 입면과 단면은 [도판5]와 [도판6]에서 확인되는데,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된 평지붕의 4층 건물로 계획하였다. 전면과 측면에는 벽돌을 노출시켜 마감하였고, 중앙의 현관부분과 일층 부분은 판석으로 입면을 구성하였다.([도판7], [도판8] 참조) 중앙 현관 부분은 전면으로 6자(약1.82m) 돌출시키고, 중앙부 4층의 층고를 높여 중앙부를 강조하였으며, 각 층 창문에 세로로 요철을 주어 수직성을 강조하였다. 배면은 모르타르로 미장 마감하여 별다른 장식을 하지 않았다.([도판5] 참조) 하지만 청사의 평면은 일부 변경을 통해 확정되었는데, 일부 실의 크기를 조정하였음이 확인된다. 변경 계획도인 [도판9]은 1938년에 작성된 일층 평면도이다. 전체 평면은 중복도 형식으로 가운데 복도를 두고 그 앞뒤로 각 실을 배치하였다. 포치가 설치된 중앙의 현관을 통해 들어서면 계단실과 엘리베이터, 화장실이 있는 홀(廣間)로 진입하게 된다. 현관 오른쪽에는 경리과(經理課)가 대기실(控室)·응접실(應接室) 등의 부속공간과 함께 계획되었고, 왼쪽에는 상인대기실(商人溜室)이 부속된 경리과·타이프라이터실(タイプライター室)이 부속된 문서계(文書係)가 있다. 엘리베이터 뒤에는 전화실이 있고, 왼쪽에는 응접실·계단실·예비실(豫備室)이 차례로 위치하였다. 화장실 오른쪽으로는 경리과장실이 부속된 경리과 사무실이 있다. 중앙 계단실 뒤로는 탕비실과 숙직실 등이 있는 숙직 영역이 있고, 그 아래 지하에는 전기실·보일러실(ボイラールーム)·석탄고(石炭庫) 등이 계획되었다. 2층에는 염삼과(塩蔘課)·국장실·기획계·인사계·회의실·기자실·식당 등이 배치되었고, 3층에는 엽연초감정실(葉煙草鑑定室)·제조연초시험실(製造煙草試驗室)·도서실·제조과(製造課)·사업과(事業課) 등이, 4층은 층 전체를 진열실로 계획하였다.([도판10], [도판11] 참조)
이어 1939년에는 강당 건물을 추가로 계획하였는데 그 모습은 [도판12]과 같다. 철근콘크리트 구조의 2층 건물로 청사와는 복도로 1, 2층이 연결되도록 하였다. 입면 마감은 전제적으로 시멘트 모르타르 마감으로 하였고, 도로와 면해 있는 북쪽 입면 중 1층 부분은 청사 전면과 같이 벽돌을 노출시켜 마감하였다. 1층에는 식당과 주방을 두고, 2층을 강당으로 사용하였다.([도판13], [도판14] 참조) 이후 청사 남쪽으로도 차고를 계획하는 등 지속적으로 부속 건물들이 건립되었다.([도판15] 참조)
[도판16]은 전매국 정문의 도면으로 기둥은 청사와 같이 벽돌을 노출·마감하였고, 문은 철물을 사용하여 무늬를 넣어 장식하고, 바닥에는 석재로 마감하는 등 화려하게 하였다.
[참고도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