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총독부 부속기관·관측소

강릉측후소

강릉측후소는 1911년 10월 1일, 강릉군 북이리면(北二里面) 북성내리(北城內里)에서 관측업무를 개시하였다. 1925년 4월 1일에는 강원도립 강릉측후소로 변경되어 강릉군 강릉면 대화정(大和町, 구 북이리면이 속함)에서 사무를 계속하였다. 1939년 7월 1일에는 조선총독부기상대 강릉측후소로 편성되어 강릉읍(구, 대화정이 속함)에서 관측업무를 계속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1949년에 국립중앙관상대 강릉측후소로 개칭되었으며, 1982년에는 현재의 강원지방기상청으로 개편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국가기록원에는 청진측후소와 관련된 도면 9매가 소장되어 있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표> 강릉측후소 소장 목록
명칭 연도 도면수
강릉측후소 1911-1925, 1939-1945 9

강릉측후소에 관련된 도면 9매는 모두 트레이싱지 도면으로 작성연도가 기재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강릉측후소가 도립으로 운영되다가 1939년 7월에야 다시 중앙으로 귀속되는 점, 1940년에 설치된 전신분실(電信分室)이 배치도에서 확인되지 않는 점을 볼 때, 이 도면들은 1939년 7월 관립으로 재개편 직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도면의 내용을 볼 때도, 철근콘크리트 보가 사용되는 점, 철근의 치수를 mm로 표시하는 점, 3중의 정교한 방수층을 계획하는 점 등도 이를 뒷받침한다.

강릉측후소는 청사부지와 관사부지가 인접하도록 계획되었다.([도판1] 참조) 부지 아래쪽에는 소장관사(所長官舍)를 배치하고 부지 왼편에는 판임관사(判任官舍) 2채를 배치하였다. 청사부지는 남북으로 긴 대지로 조성되었다. 청사부지 하단에는 우량계실(雨量計室)이 있는 노장(露場)을 반듯하게 배치한 반면, 청사는 대각선 방향으로 배치함으로써 건물이 정확하게 남향하도록 계획되었다. 강릉측후소 부지는 삼면이 도로에 접하고 있으나 부지가 높은 탓에 출입이 용이하지는 않은 편이다. 또한 관사가 부지 하단의 상대적으로 낮은 부지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청사부지로 진입할 수 있는 길은 청사 건물 우측 하단의 경사로에 불과하다.(도판 내 삼각형 표시 부분) 강릉측후소의 부지는 현재의 강원지방기상청의 신청사가 준공(2008년 4월 17일)까지 사용하였던 구 강원지방기상청의 부지, 현재의 강릉KBS 및 칠사당(七事堂) 서편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이 경우, 청사 우측 하단의 출입로는 칠사당과 연결되었던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청사의 건축계획은 [도판2]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청사는 관측사무를 위한 2층의 청사건물과 숙직사무를 볼 수 있는 단층의 부속가(附屬家)가 연접하고 있다. 청사의 1층은 중복도형으로 계획되었으며 복도의 양 끝은 청사 현관, 부속가 입구와 맞닿아 있다. 청사의 중복도 위쪽으로는 지진계실, 지진계준비실, 암실(暗室), 청우계실(晴雨計室), 기계실 및 계단이 계획되어 있고, 아래쪽으로는 소장실, 관측실, 사무실이 남향하도록 계획되었다. 2층은 1층의 일부분에만 계획되었다. 계단으로 오르면 서고(書庫)와 도서실로 출입할 수 있는 복도에 닿게 되며, 외부로 나가면 외부계단을 통해 2층 지붕으로 올라가도록 계획하였다. 2층 지붕에는 각종 관측기기의 설치를 위한 노대가 배치되었다. 풍신기대(風信器台), 풍신계대(風信計台), 두 개의 풍력계대(風力計台), 그리고 일조계대와 기류관측대, 총 6개가 설치되었다. 한편, 부속가는 청사와 맞닿는 곳에 변소와 욕실의 편의시설을 두었고, 그 안쪽으로 취사장, 소사실(小使室) 및 두 개의 숙직실을 계획하였다. 청사와 부속가는 건물 높이는 다르지만 일본식 지붕틀을 사용한 경사지붕으로 계획되었는데, 청사의 중층부에만 콘크리트 평지붕을 사용한 점이 흥미롭다. 또한, 난방계획을 살펴보면 청사에서 직원이 주로 사용하는 사무실, 관측실 등과 부속가의 욕실, 소사실에는 직접난방방식의 벽돌조 연도가 설치된 반면, 부속가 내부의 두 숙직실에는 온돌난방방식이 계획되었다.

청사 단층부의 단면계획에서는 벽돌조에 일본식 목조 지붕틀을 접목한 계획안을 확인할 수 있다.([도판3] 참조) 벽돌은 1.5B의 두께로 쌓아올리고 두 겹의 창문을 설치하였으며, 벽돌벽의 외부는 모르타르로 마감하였다. 목조 지붕틀에서는 일본식 지붕틀의 특징인 빗방향으로 설치한 꿸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으며, 39척(약 11.7m)의 거리를 3개의 보를 이어서 건너지른 구법도 확인할 수 있다. 반면에 청사 중층부에서는 벽돌조에 콘크리트 바닥판을 적용한, 일명 '철근콘크리트 혼용 벽돌조'가 적용되었다.([도판3], [도판4] 참조) 지붕 바닥판 위로는 방수층, 무근콘크리트, 방수 모르타르의 3중 방수층을 계획하여 우수에 대비하였으며, 패러핏에는 난간을 얹어 2.5척(약 75cm)의 지붕난간을 계획하였다. 청사의 내부에는 시멘트 마감이 공통적으로 적용되었으며, 각종 관측용 시설을 고려하여 창문의 크기와 높이가 정해졌음을 볼 수 있다.([도판5] 참조) 반면, 부속가는 목조건축으로 계획되었다([도판6] 참조) 구조재로 3.5인치 두께의 목재를 적용한 '경골목구조(輕骨木構造)'가 적용되었으며, 외벽은 모르타르로 마감되었다.

[참고도판]

  • 도판1. 강릉측후소청사신축기타공사배치도 / 1, 1939-40년 추정 상세보기
  • 도판2. 강릉측후소청사신축기타공사설계도 / 2, 1939-40년 추정 상세보기
  • 도판3. 강릉측후소청사신축기타공사설계도 / 3, 1939-40년 추정 상세보기
  • 도판4. 강릉측후소청사신축기타공사설계도 / 4, 1939-40년 추정 상세보기
  • 도판5. 강릉측후소청사신축기타공사설계도 / 5, 1939-40년 추정 상세보기
  • 도판6. 강릉측후소청사신축기타공사설계도 / 부속가지부 / 7, 1939-40년 추정 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