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총독부 부속기관·관측소

평양측후소

평양측후소는 1907년 농상공부소관 측후소 관제의 공포로 처음 설치되었다. 같은 해 3월 통감부관측소 관제가 공포된 이후 1908년 3월까지 통감부관측소에 위탁 운영되었으며, 새로운 농상공부관측소 관제에 따라 인천관측소 산하 평양측후소로 개편되어 대한제국 기상업무에 흡수 통합되어 운영되었다. 1910년 일본의 강점 이후 조선총독부의 관제가 공포됨에 따라 조선총독부관측소 산하의 측후소로 개편되어 운영되었다. 1925년에는 그 관할이 해당 도로 이관되었다가 1940년 조선총독부기상대 산하의 관립시설로 다시 재편되었다. 현재 국가기록원에는 평양측후소와 관련된 도면 16매가 소장되어 있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표> 평양측후소 소장 목록
명칭 연도 도면수
평양측후소 1907-1925, 1939-1945 16

소장된 16매 중 주요 공사에 관련된 도면은 모두 동일 시기의 계획안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도면에서나 관련 문헌 자료에서 해당 공사가 어느 시기에 이루어졌는지는 확인되지는 않는다. 다만, 청사의 사무공간이 모르타르바름으로 마감된 벽돌조로 계획되었고, 온돌 형식을 볼 때, 1920년대 이후의 계획으로 생각할 수 있다. 또한, 도판의 기재 형식이 1940년대의 것과는 많이 달라, 1925년 도립으로 개편되기 이전의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즉, 이 계획안은 1910년대 후반에서 1925년 사이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도판1]에서 보이는 평양측후소의 부지는 청사 신축과 함께 새로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동서로 조금 더 긴 장방형의 부지가 서쪽의 관사부지를 거치는 신설도로를 통해 기존도로에 연결되었다. 개별건물의 배치계획은 [도판2]에서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부지는 신설도로를 통해 서쪽으로 진입하도록 계획되었다. 부지의 동북쪽에 청사와 부속가(附屬家)가 정남향으로 위치하고 있고, 남서쪽에는 노장(露場)이 배치되었다. 청사 동북쪽에는 창고가 대지 경계에 나란하게 배치되어 있다. 이러한 배치는 일제강점기 지방 측후소의 일반적인 구성과 유사하다.

[도판3]에서는 청사와 부속가의 계획을 살펴볼 수 있다. 부지의 출입구와 나란하도록 청사의 주출입구를 서쪽으로 두어 박공진입을 하도록 하였다. 부속가는 청사의 동쪽에 접하도록 계획하여 부속가의 정면 뿐 아니라 청사의 복도를 통해서도 출입할 수 있도록 하였다. 청사는 단층의 경사지붕 건물이나 기상 관측을 위해 건물 일부를 2층으로 계획하고, 이 부분은 평지붕으로 마감하였다. 외부 입면은 특별한 장식 없이 모르타르로 마감되었다. 청사는 중복도 형식으로 복도를 중심으로 남쪽과 북쪽에 각 실들이 배치되었다. 현관을 거쳐 복도를 들어서면 남쪽으로 사무실, 관측실, 소장실이 위치하였고, 북쪽으로는 기계실, 청우계실(晴雨計室), 암실, 지진계준비실, 지지계실이 계획되어 있다. 청우계실과 복도사이에는 계단이 있어 2층과 옥상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하였다. 2층에는 서고와 도서실이 있고, 외부계단을 통해 옥상으로 올라가도록 계획하였다. 부속가는 청사 직원이 숙식을 할 수 있도록 한 곳으로 청사 복도의 동쪽 끝과 연결되어 있다. 청사와 바로 인접하여 남으로 출입구를 두었다. 부속사를 들어서면 변소를 지나 취사실로 연결된다. 취사실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두 개의 숙직실을 두었다. 남쪽의 숙직실은 다다미방으로, 북쪽의 숙직실은 온돌방으로 계획하고 마루로 된 작은 공간을 통해 출입하도록 하였다. 취사실 남쪽으로는 온돌로 된 소사실(小使室)이 위치해 있고 그 옆으로 욕실을 배치하였다. 외기에 면한 창문은 2겹으로 하면서 그 두께가 외벽보다 두꺼워져 밖으로 돌출되도록 계획되었다.

[도판4]에서 보이는 평면은 전술한 측후소 청사를 신축하기 이전의 상황을 보여주며, 기존의 사무실 뒤로 기기실을 증축하면서 작성된 도면이다. 앞서 살펴본 도면의 건물과 달리 청사와 부속가가 구분되어 있지 않고 한 건물에 함께 배치되어 있는데, 평면의 형태를 볼 때 전통의 한옥 건물을 수선 및 증축하여 사용한 것으로 판단된다.([도판5] 참조) 이후 측후소 부지를 확보하고 이전하여 [도판3]의 모습으로 신축하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청사는 벽돌과 철근콘크리트의 병용구조 건물로 지붕에는 일본식 목구조를 사용하였다. ([도판6], [도판7] 참조) 2층 부분의 바닥판과 계단 등에는 철근콘크리트 구조를 사용하였다. 부속가는 목조건물로 계획되었으며, 지붕은 청사와 마찬가지로 일본식 목구조를 사용하였다. ([도판8] 참조) 부속가에는 개량온돌의 하나인 촌강식(村岡式) 온돌이 설치되었다. 따라서, 촌강식 온돌의 사용 시기와 비교해 볼 때 평양측후소의 신축계획은 1920년대에 계획된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2층 옥상에는 바람을 관측할 수 있는 옥상 관측장이 계획되었다.([도판9] 참조) 2개의 풍력계대(風力計台)와 풍압계대(風壓計台), 풍신기대(風信器台)가 설치되어 있다. 이중 풍신기와 풍압계는 관측실로 연결이 되어 있어 실내에서 관측할 수 있도록 계획되었다.

우량계실(雨量計室)은 구내에 별도로 구획된 노장(露場)안에 계획되었다.([도판2], [도판10] 참조) 지하로 계획된 우량계실은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되어 있으며, 계단을 통해 접근하도록 되어 있다. 실 상부에 빗물을 계측할 수 있도록 지상과 연결된 장치와 환기구가 설치되어 있으며, 계측장치 아래에는 계측대를 설치하였다. 청사 북동쪽으로 목구조로 된 창고가 있다.([도판11] 참조) 창고(庫) 부분은 모르타르로 외벽을 마감한 것에 비해 땔감을 보관하는 공간(薪炭置場)은 나무판벽으로 마감하였다.

[참고도판]

  • 도판1. 평양측후소부지정지공사설계도, 1910년대 후반-1925년 추정 상세보기
  • 도판2, 평양측후소청사기타신축공사설계도 / 배치도, 1910년대 후반-1925년 추정 상세보기
  • 도판3. 평양측후소청사기타신축공사설계도 / 청사급부속가지부, 1910년대 후반-1925년 추정 상세보기
  • 도판4. (무제), 1910년대 추정 상세보기
  • 도판5. 평양측후소기계실증축기타공사설계도, 1910년대 추정 상세보기
  • 도판6. 평양측후소청사기타신축공사설계도 / 청사지부, 1910년대 후반-1925년 추정 상세보기
  • 도판7. 평양측후소청사기타신축공사설계도 / 청사지부, 1910년대 후반-1925년 추정 상세보기
  • 도판8. 평양측후소청사기타신축공사설계도 / 부속가지부, 1910년대 후반-1925년 추정 상세보기
  • 도판9. 평양측후소청사기타신축공사설계도 / 청사지부, 1910년대 후반-1925년 추정 상세보기
  • 도판10. 평양측후소청사기타신축공사설계도 / 우량계실기타지부, 1910년대 후반-1925년 추정 상세보기
  • 도판11. 평양측후소청사기타신축공사설계도 / 창고지부, 1910년대 후반-1925년 추정 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