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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향한 여섯발의 총성 그리고 그후

그들은 사건현장에서 국방색 호로형 지프차에 발동을 걸고 무엇인가 기다리고 있는 듯 보였고, 7시 30분경 김창룡이 탑승한 남색 지프차가 내려올 때 도로를 차단 한 후 김창룡 지프차가 크락숀을 2회 신호할 무렵 2명의 군복입은 괴한이 김창룡의 차문을 열고 권총을 5, 6발 발사하여 그를 살해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운전수에게도 중상을 가한 후 지프차를 타고 원효로 전차도로 방향으로 도피하였다는 실마리를 얻게 되었다.

시체검안서 1956년 1월 30일

같은 날 9시 및 9시 20분에 육군특무부대는 시체를 검안하고 〈시체검안서〉를 작성·보고하였다. 시체검안서에 의하면, 시체는 안색 창백, 체온 하강, 동공 산대(散大)하였으며, 사지하악(四肢下顎) 및 기타 관절에는 사망한 후 강직(强直)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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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상반신에는 5개의 총탄창구를 발견하였는데 하악전면정중부(下顎前面正中部), 좌측경부(左側頃部), 우측 쇄골하부, 우측 액하부(腋下部), 시체좌측 쇄골부에 소절개흔(小切開痕)을 발견하였다. 소절개흔은 서울적십자병원에서 미제45구경 권총탄환을 절개하여 적출한 절개창으로 인정되었다. 그리고 우측 견갑부외 좌측 전박내측(前膊內側)에 총탄찰과상이 있었다. 결국 김창룡의 사인은 전반적인 검시 및 부검을 실시하지 못하여 구체적이고 정확한 사인을 구명하지 못하였지만 대체적으로 총창으로 인한 폐장 및 심장 대동맥 등의 손상 및 출혈 과다로 인한 사망이라고 추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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