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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기록원 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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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기' '독도=조선 고유영토' 인정기(~1905년 이전)

제1기의 개요

독도라는 명칭은 1906년 심흥택(沈興澤)이 처음 사용하였다.
그 전에는 우산도(于山島)·삼봉도(三峰島) 등으로, 일본에서는 송도(松島 ; 현재 일본은 독도=죽도, 울릉도=송도)로 불렸다. 독도는 서기 512년(智證王 13년) 신라 장군 이사부(異斯夫)가 ‘우산국’(현재의 울릉도와 독도)에 파견·복속시킨 이래, 울등도민의 생활지로 인식되고 관리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과거 일본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1905년 이전까지만 해도 한일간의 독도시비는 심각하지 않았다.

독도가 우리의 고유영토라는 사실을 한일간에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1693년 안용복(安龍福)사건은 크게 주목되어 왔다.
1693년 울산 어부 안용복은 40여명을 데리고 어업활동을 하다가 울릉도에 표류, 그곳에서 어채를 하고 있던 일본인 백기주(伯耆州)의 상인들과 마찰이 생겼고, 안용복 외 1인은 백기주 상인들에게 인질로 끌려갔다.

안용복은 백기주 태수를 통해 막부에 독도는 조선의 땅임을 주장하자, 백기주 태수는 안용복 처리를 막부에 문의했다.
안용복문제는 조선과 일본에서도 논의가 진행되었다.
일본내의 논의의 결과 1696년 1월 아부풍후수(阿部豊後守)는 관백 덕천강길(德川康吉)의 재가를 얻어 “지리적으로 조선과 더 가깝기 때문에 조선의 지계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유시(諭示)하였다. 즉 안용복 사건을 계기로 한일간의 독도 영유권 문제는 이미 결론이 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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