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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실학자들에 의해 독도에 대한 인식이 구체화되었다. 이중 대표적인 책이 영조 32년 신경준(申景浚)이 편찬한 『강계고』이다.
『강계고』에 의하면, 성종 3년(1472)에 삼봉도(三峯島)를 찾기 위해 박종원을 파견했으나 풍랑으로 뜻을 이루지 못한 채 돌아왔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내가 살피건데(신경준)” “여지지에 이르기를 ‘일설에는 우산과 울릉은 본래 한 섬이라고 하나 여러 도지(圖志)를 상고하면 두섬이다.
하나는 왜(倭)가 말하는 송도(松島)인데 모두 다 우산국(于山國)이다’라고 하였다”는 주석을 달았다.
1472년 박종원이 비록 삼봉도를 찾지 못하였지만 여지지의 기록임을 들어 우산,울릉이 두섬임을 지적하였다.
이 자료는 15세기에 이미 독도를 우리의 고유영토로 인식하고 있었을 보여주는 중요한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