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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기록원 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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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기' '독도=조선 고유영토' 인정기(~1905년 이전)

肅宗實錄(숙종19, 1693년) 안용복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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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3년 발생한 안용복 사건은 한일간의 독도 영유권을 둘러싼 최초의 논쟁이다.

사건의 발단은 “계유년(1693년) 봄에 울산의 어부 40여 명이 울릉도(鬱陵島)에 배를 대었는데, 왜인(倭人)의 배가 마침 이르러, 박어둔(朴於屯)·안용복(安龍福) 등 2인을 꾀어내 (백기주로) 잡아서 가버렸다”. 이에 안용복은 백기주(伯耆洲) 태수에게 독도는 조선의 땅임을 주장하고 자신들을 끌고온 부당성을 항의하자, 백기주 태수는 안용복 처리를 막부에 문의하였다.

이 안용복 문제로 조선과 일본 및 일본내 대마도와 막부에서도 논의가 진행되었고, 마침내 1696년 1월 아부풍후수(阿部豊後守)는 관백 덕천강길(德川康吉)의 재가를 얻어 “지리적으로 인번 보다는 조선과 더 가깝기 때문에 조선의 지계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유시(諭示)하였다.

즉 안용복 사건을 계기로 한일간의 독도의 영유권 문제는 1696년 이미 결론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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