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소련 체제에서 한인은 러시아인 지배의 민족계층체계에서 러시아인과 원주민족의 중간에서 중개적 역할을 수행하면서 원주민족에 비교해서 높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누려왔다. 이들은 거주국 사회에 동화를 추구하면서도 밑바닥계층에 남기보다는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구조를 최대한 활용하여 신분상승을 추구하였다. 적성민족이라는 신분상 제약으로 인해 한인은 정치, 군사, 공직 분야로의 진출은 일찍이 포기하고 대신 자신의 재능과 노력으로 승부할 수 있는 경제 분야, 특히 고본질(계절농), 집단농장, 자영농업, 자영업에서 경제적 자립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농업분야에서도 쌀, 야채, 과일과 같이 현지 원주민들이 경작하지 않는 작물에 집중함으로써 원주민들과의 경쟁을 피하였다. 이민 1세가 농업을 통해 자본을 축적한 후에는 그 축적된 자본을 자녀세대의 고등교육에 투자하였다. 자녀 교육을 위해 부모들은 농촌을 떠나 대도시로 이주하기 시작하였고 한인은 타민족들에 비교해서 높은 도시화율을 기록하였다. 대도시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이민 2세는 졸업 후 도시에서 전문직, 기술직에 종사하면서 도시에 정착하였다. 주류사회에 진출하였어도 상층계급으로는 진출하지 못하고 러시아인과 원주민 사이의 중간계층에 머물면서 러시아인 지배 사회체제가 유지되고 운영되는데 기여하면서 자신들의 지위를 보장받았다. 한인이 신분상승의 전략으로 도시화, 고등교육, 전문직화를 추구하면서 이들은 언어, 의식, 생활방식 등에서 러시아의 사회문화에 동화되었다. 하지만 동화가 한인의 민족정체성을 약화시킨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주류사회에 진출할 수 있는 자격을 확보한 후에도 여전히 민족집단에 대한 소속의식을 유지하였다.
1991년에 구소련이 해체되고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독립하면서 한인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였다. 중앙아시아에서는 자신들의 방패막이 역할을 하였던 러시아인의 힘이 약화되고 대신 자신들이 경멸하고 거리감을 두어왔던 원주민족들이 실권을 잡게 되었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독립 후 잃었던 민족의 언어와 역사를 되찾고 민족정체성을 확립해 가는 과정에서 타민족들에 대한 차별과 배척이 심화되어가고 있다. 아울러 사회주의 경제체제에서 자본주의 경제체제로 이행되어 가는 과정에서 고실업, 부정부패, 빈익빈 부익부의 사회불평등 등의 사회문제들이 삶의 질과 기회를 낮추고 있다. 경제적 문제의 심화는 사회의 희소한 자원을 둘러싼 민족들 간의 경쟁과 갈등을 증폭시켰고, 러시아인, 독일인, 유태인들은 공공연한 차별과 배척을 피해 모국으로 이주하는 수가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한인은 모국이 둘이 있어도 남한과 북한 어느 곳으로도 돌아갈 수 없는 처지이기 때문에 어찌되었든 현지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할 처지에 놓여있다.
중앙아시아의 정치경제적 불안과 부상하는 민족주의를 피해 한인은 1990년대부터 남부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등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1989년과 1999년 사이에 러시아의 한인인구는 107,051명에서 125,000명으로 17,949명이 증가하여 16.8%의 인구증가율을 보였다. 2011년에는 213,020명으로 증가해서 1999년 대비 70% 증가했다. 한인은 농사를 짓기에 적합한 볼고그라드 지역과 우크라이나에 집중하여 살고 있다.‘고본질’이라고 하는 계절농사에 익숙한 고려사람은 이곳에서도 당근, 양배추, 고추, 오이, 가지, 토마토 등 채소류와 수박과 메론 등 비교적 고부가의 과일류 농사에 치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