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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향한 여섯발의 총성 그리고 그후

따라서 허태영은 신초식 단신으로는 불가함을 깨닫고 송용고를 부산에서 상경시켜 김창룡 저격 사건에 공동행동을 취하도록 하였다고 진술하였다.
한편, 신초식은 그의 〈피의자신문조서〉에서 김창룡 저격 배경을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자신에게 허태영은 부모, 형과도 같은 사람으로 살해의 동기는 허태영 대령에게 있으나 살해의 결의는 자신이 하였다고 진술하였다. 무엇보다 그가 김창룡 저격 사건을 실행한 것은 군부내 장성들이 자신들을 지원하고 있다는 허태영의 말을 믿고 개인적 반감이 없었으나 허태영의 지시에 따라 살해하였다고 하였다.

피의자심문조서(신초식) 1956년 2월 27일  피의자심문조서(신초식) 1956년 2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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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심문조서(신초식) 1956년 2월 27일  피의자심문조서(신초식) 1956년 2월 27일

신초식의 〈피의자신문조서〉에는 김창룡 저격 사건과 관련된 군내부의 배후세력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김창룡 저격 사건과 관련하여 손○○과 정○○, 이○○, 원○○, 제2군사령관 강문봉중장, 입법부에는 도진희의원이 중심이 된 세력과도 이미 논의가 다 되었다는 말을 허태영으로부터 들었다고 진술하였다. 따라서 사건이 발각되어도 절대 체포되지 않을 것이며 거사에 성공하면 특무부대장에는 이진용대령이 임명되고, 허태영은 헌병감, 송용고, 신초식은 육군중위로 임명되어 심항등지로 파견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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