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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향한 여섯발의 총성 그리고 그후

피의자심문조서(허태영) 1956년 2월 23일  피의자심문조서(허태영) 1956년 2월 23일
피의자심문조서(허태영) 1956년 2월 23일  피의자심문조서(허태영) 1956년 2월 23일

하지만 허태영은 김창룡 저격 사건의 배후에 대한 진술을 번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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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2월 23일 〈피의자신문조서〉에서는 사건의 배후에 대하여 신초식이 진술한 것과 동일하게 진술하였는데, 2월 27일 〈피의자신문조서〉에서는 입장을 바꿔 배후는 없고, 다른 관계자들에 대해서는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도진희의원의 연관성에 대해서 도진희가 국회의원이라는 신분임으로 지프차의 처리를 잘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단순히 매수하였고, 송용고를 피신시킨 이진용에 대해서도 사건과 관련된 사실이 없다고 진술하였다. 신초식이 진술했던 군부내의 상층부와의 암살계획 논의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없었다고 진술하였다.

피의자심문조서(허태영) 1956년 2월 27일  피의자심문조서(허태영) 1956년 2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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