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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대한민국 대한민국사람들의 사진속 생활 역사

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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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구식 건축개념의 본격도입
  • 아파트의 건축
소개하는 글

서구식 건축개념의 본격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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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 간이주택과 후생주택

    정부는 1951년부터 1953년까지 전쟁으로 인한 재난민들을 수용하기 위한 수용시설과 월동용 간이주택, 그리고 후생주택과 복구농민주택, 수복지구 간이주택으로 총 82,658호를 건설하였다. 이는 이 기간에 건설된 총 216,344호의 주택 중 38.4%에 해당한다. 1954년 4월에 산업은행이 발족되면서 대한주택영단과 지방자치단체는 산업은행 융자금으로 재건주택과 복구주택, 그리고 외인주택 등을 건설하였다. 1954년부터 1956년까지 난민정착용 주택 107,710호가 건설되는데, 이는 같은 기간 건설된 약 30만 호의 주택의 33%에 해당한다.

  2. 2) 원조경제 하의 시범주택

    6.25전쟁 직후 원조는 난민과 전재민(戰災民) 구호를 위한 긴급구호자금의 성격을 가졌다. 그리고 1950년대 후반에는 원조가 재건자금의 성격으로 바뀌었다. 이 재건원조의 주류가 ICA(국제협조처) 원조자금이다. 그런데 이 ICA 자금에 의한 주택건설 6개년사업 계획이 수립되면서 정부의 주택공급정책이 변화하였다. 정부자금(주로 원조자금)에 의한 직접공급이 축소되고, 융자지원에 의한 공급방식이 주를 이루었다. 1953년 장기적으로 보급할 한국 주택의 전형(典型)을 제시하기 위한 기구로 한미재단(KAF)이 설립되었다. 한미재단은 1956년에 서울시 종로구 교북동에 3층 아파트 3개동 48세대, 연립주택 2층 11개동 52세대, 단독주택 14세대의 규모로 시범주택을 건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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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최고회의의장 공영 및 간이주택 입주식 참석

공영 및 간이주택 입주식1
기록물 철 제목 박정희최고회의의장 공영 및 간이주택 입주식 참석(CET0035543)
기록물 건 제목 공영 및 간이주택 입주식1(1961)

부산시 난민주택

부산시 난민주택
기록물 철 제목 부산시 난민주택(CET0040120)
기록물 건 제목 부산시 난민주택(19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