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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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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전국 네트워크로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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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1962년 1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에서 통신분야의 목표로 지방 통신시설의 보급, 전신·전화시설의 확장과 국내 통신기재 공업육성을 설정했다. 자금 조달을 위해 「전화채권법」이 제정됐다. 1962년 9월 서울시청 앞, 화신백화점 앞 등 10개소에 최초의 옥외 무인 공중전화가 설치되었는데, 당시 공중전화 요금은 5원이었다. 1963년 1월에는 주택용 전화가 증가하면서 정액요금제를 개선하기 위해 자동전화 도수제가 실시되었다. 한편, 전화가입 신청자가 폭주하였지만, 공급은 따라가지 못해, 공개추첨으로 전화청약 가입권을 부여하기도 했다.

1969년 6월 1일로 가설전화 50만대를 돌파하자 체신부는 1969년 7월 15일에서 20일까지 기념행사를 가졌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했다. 회선공급과 교환시설의 부족, 공급의 부족 등으로 전화매매와 매점매석, 전화가입권 담보사채업, 무단임대 등이 성행하였다. 또한 가입신청을 해도 1년 이상을 기다려하는 상황에서 전화를 두고 청탁, 뇌물성행 등 말썽이 되기도 했다.

한편, 1970년대 들어와서는 새로 공급하는 전화는 매매를 금지하되 이미 설치돼있는 전화는 자유로이 매매할 수 있도록 풀어주기로 했다. 이것이 바로 1970년 9월 1일 개정된 「전기통신법」의 주요 내용이었다. 이렇게 되어 판매를 금지한 전화는 청색전화, 여전히 자유롭게 사고 팔 수 있는 이미 가설된 전화는 백색전화로 불렸다.

1970년 6월 2일 금산통신위성지구국이 개통되어 전화, 텔렉스, TV 등의 국제 중계가 쉬워졌다. 그리고 1971년 3월 31일 서울-부산 간에 교환원 중계없이 가입자가 직접 다이얼을 돌려 전화를 걸 수 있는 장거리 자동전화가 처음 개통되었다. 1977년에는 시내·외 겸용 공중전화기가 선보였으며, 1978년 12월 31일 최초로 장거리 자동 공중전화 436대가 개통되었다. 1978년 전화신청 대기자가 무려 60만 명에 육박하는 일이 빚어지기도 했는데, 그러던 것이 1978년 전자식 교환기가 들어오면서 조금씩 누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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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풍경 및 농어촌 전화 사업

농촌 전화사업
기록물 철 제목 농촌풍경 및 농어촌 전화 사업(CET0041606)
기록물 건 제목 농촌 전화사업 (1973)

언론인 새마을산업 시찰

새마을운동 전신 가설작업
기록물 철 제목 언론인 새마을산업 시찰(CET0047289)
기록물 건 제목 새마을운동 전신 가설작업(19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