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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자혜의원

자혜의원은 1909년 8월 21일 대한제국 칙령 제75호로「자혜의원관제(慈惠醫院官制)」가 공포되면서 설립이 시작되었다. 최초로 1909년 12월 전주와 청주에 설립되었으며, 1910년 1월에는 함흥에 자혜의원이 설립되었다. 이후, 1910년 7월 21일 대한제국 칙령 제38호로「자혜의원관제」를 개정하여 전국적으로 증설하였으며, 1910년 9월에는 나머지 10개도에도 설치되어 각 도에 1개소의 자혜의원을 배치하게 되었다. 이후, 자혜의원의 수는 꾸준히 증가되어 1925년 이전까지 모두 28개의 의원이 운영되었다. 그러나 자혜의원 운영비 조달의 어려움을 겪던 조선총독부는 1925년 4월 1일자로 칙령 제75호로「조선도립의원관제(朝鮮道立醫院官制)」를 공포하고, 동일 조선총독부령 제29호로「도립의원규정(道立醫院規程)」을 공포하면서, 소록도자혜의원을 제외한 모든 자혜의원은 각 도 산하의 도립의원으로 개편되었다.

1909년부터 1925년 개편 전까지 운영된 28개의 자혜의원 중 진남포, 마산, 김천자혜의원에 대한 도면은 현재 국가기록원에 소장되어 있지 않다. 나머지 25개소 중 14개소에 대해서는 개별 해제를 진행하였고, 본문에서는 소장된 도면수가 작아 상세한 해제가 어려운 나머지 11개 시설과 계획과정에서 설립이 진행되지 않은 부산자혜의원에 대한 해제를 포함하였으며, 그 내역은 다음과 같다.

명칭 연도 도면수
자혜의원 공통 - 18매
강계자혜의원 1922.12 - 1925.03 6매
강릉자혜의원 1912.08 - 1925.03 7매
공주자혜의원 1910.09 - 1925.03 24매
부산자혜의원 - 5매
성진자혜의원 1923.08 - 1925.03 8매
안동자혜의원 1912.10 - 1925.03 11매
의주자혜의원 1910.09 - 1925.03 13매
제주자혜의원 1912.10 - 1925.03 10매
진주자혜의원 1910.09 - 1925.03 28매
청주자혜의원 1909.12 - 1925.03 29매
초산자혜의원 1912.10 - 1925.03 9매
혜산진자혜의원 1923.11 - 1925.03 9매
각 자혜의원의 개원연도는「조선도립의원요람(朝鮮道立醫院要覽)」과「조선총독부관보(朝鮮總督府官報)」에 개제된 내용을 참고하였다.

각 자혜의원의 계획 내용을 시설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현재 국가기록원에는 모두 18매의 자혜의원 공통도면이 소장되어 있다. 이 도면들에는 구체적인 지역명이 없이 ‘자혜의원(慈惠醫院)’이라고만 기재되어 있어 다수의 자혜의원 시설을 계획하기 위한 공통도면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 중, 대부분의 도면은 변소, 창고 등 부속시설에 대한 도면이나, [도판1]은 주요건물인 본관의 설계도이다. 이 도면에 기재된 본관은 벽돌조 3층 건물로 ㄷ자형으로 계획되어 있다. 도면에 작성연도는 기재되어 있지 않지만, 이와 동일한 계획이 순천, 강계, 성진, 혜산진 자혜의원의 본관 계획에 사용되었음이 확인되고 있어, 1921~22년경에 작성된 것으로 생각된다.([도판2], [도판11], [도판30] 참조)

강계자혜의원은 1922년 12월 개원하였다. 실제 시설의 공사는 1921년부터 다른 5개의 자혜의원과 함께 진행되기 시작하였으며, 설치령은 1923년 3월 28일에 공포되었다. 강계자혜의원에 대한 주요도면은 남아있지 않으며, [도판2]에서 당시 배치 계획만을 확인할 수 있다. 강계자혜의원은 서쪽으로 도로를 면한 장방형의 대지 위에 계획되었으며, 남쪽으로 관사가 위치하였고, 북쪽으로 본관과 간호부기숙사, 전염병실이 계획되었다. 본관 계획의 윤곽은 전술한 것처럼 동 시기 개설된 다른 자혜의원의 본관과 일치한다.

강릉자혜의원은 1912년 8월 개원하였다. [도판3]은 신축 당시의 배치도로 추정된다. 비정형의 부지에 남향으로 건물을 배치하였으며, 본관, 부속가, 병동이 확인된다. [도판4]는 본관의 설계도이다. 본관은 누름대비늘판벽을 사용한 목조 단층 건물로 매우 단순하게 계획되었다. 내부에는 십자형 복도를 중심으로 개실이 배치되었으며, 수술실과 변소는 건물 좌우에 통로로 연결되는 독립건물로 계획되었다. 입면은 좌우대칭을 기본으로 계획되었으나, 특별한 장식이 부가되지는 않았다. 강릉자혜의원의 본관은 1934년 최신의 건물로 신축되었다. 이러한 본관의 계획은 1912년에 개원한 안동, 제주, 초산 자혜의원에서도 동일하게 사용되고 있으며, 그 원형은 1909년 계획된 청주자혜의원 본관 계획에서 찾아볼 수 있다.([도판24] 참조)

공주자혜의원은 1910년 9월 개원하였다. [도판5]는 개원 당시의 배치도로 생각된다. 이 도면에 부속된 배치도에는 본관이 ‘신축병원(新築病院)’이라 기재되어 있으며, 후면에는 기존의 병실들이 있었음이 표시되어 있다. [도판6]은 본관의 설계도이다. 이 역시 누름대비늘판벽의 단층 목조 건물로 계획되었으며, 평면의 구조는 강릉자혜의원 본관과 유사하게 십자형 복도를 중심으로 계획되었다. 후면에 독립 건물로 변소 및 부속가가 배치되었고, 수술실 역시 왼쪽에 독립된 건물로 계획되었다. 이 본관은 이후 증축되었으며, 그 상세는 [도판7]에서 확인된다. 좌우 양쪽으로 전면으로 돌출된 형태의 공간이 증축되었으며, 이로 인해 내부 개실의 과별 배치도 변하게 되었다. 증축은 입면의 좌우대칭을 유지하면서 진행되었으며, 여전히 장식이 없는 단순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도판8]은 1923년에 작성된 배치도이다. 부지의 남쪽에 전염병실을 신축하기 위해 작성된 도면으로, 본관이 증축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본관 주위로 상당량의 건물들이 운영되고 있음도 볼 수 있다.

부산자혜의원은 실제로 설립되지 않은 시설이지만, 현재 5매의 관련 부지 계획도가 소장되어 있어 흥미롭다. 이는 부산자혜의원의 설립에 대한 계획이 진행되었던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도판9]는 그 부지설계도로, 부산지방법원 북쪽에 대지를 마련하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부산자혜의원이 설립되지 않은 것은 당시 부산부에는 일찍부터 일본인이 많이 거주하여 부산부립병원을 비롯하여 다수의 의료기관이 존재하였기 때문이었다.

성진자혜의원은 1923년 8월 개원하였으며, 시설의 공사는 1921년 9월에 시작되었고, 설치령은 1923년 3월 28일 총독부령 제51호로 공포되었다. [도판10]은 그 신축배치도로 남쪽에 도로를 면하는 장방형의 부지 중앙에 본관을 배치하고, 그 서쪽으로 간호부기숙사, 북쪽으로 병실과 전염병실을 계획하고 있다. 부지의 동쪽은 관사부지로 활용되고 있다. 성진자혜의원 본관의 계획은 [도판11]에서 볼 수 있는데, 전술한 것처럼 동 시기 자혜의원의 본관과 동일한 계획 하에 설계되었으며, 신축설계도가 아닌 설비계획도만이 남아 있는 것도 공통도면을 활용하여 계획하였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안동자혜의원은 1912년 10월에 개원하였다. [도판12]는 그 배치도로, 남서쪽으로 도로를 면한 부지에 본관과 병동이 배치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으며, 그 형태는 같은 해 개원한 강릉자혜의원과 거의 동일하다.([도판3] 참조) 본관의 계획도는 [도판13]에서 볼 수 있는데, 강릉자혜의원 본관 계획과 좌우대칭으로 바뀌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이 형태는 초산과 제주 자혜의원에서도 나타난다. 본관은 누름대비늘판벽을 사용한 목조 단층 건물로 매우 간단하게 설계되었다.

의주자혜의원은 1910년 9월에 개원한 초기 자혜의원이다. [도판14]는 1915년에 작성된 배치도로 당시 종방향으로 긴 부지의 중앙부터 본관, 병실들이 배치되고, 본관 전면의 한쪽에 기숙사가 배치되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도면은 시실(屍室)을 신축하기 위해 작성된 배치도로 이 도면에서는 간호부기숙사 후면에 시실을 배치하려 하였으나, 이후 계획에서는 위치를 변경하게 되었음도 확인된다. 배치도에서 보이는 본관은 증축된 형태로, 증축되기 전과 후의 형태를 [도판15]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본관은 후면편복도의 단층 목조 건물로, 누름대비늘판벽으로 장식 없이 계획되었다. 초기에는 건물에 4개실만이 있었으나, 2개실을 증축하였다. 초기의 본관에는 원장실, 응접실, 약국, 숙직실이 계획되어 있었으나, 증축 이후 내부 공간은 외과실, 부인과실, 안이(眼耳)과․인후(咽喉)과실, 내과실 및 보통대합실과 시료(施療)대합실로 변경되었다.

제주자혜의원은 1912년 10월 개원하였으며, 현 제주시 삼도2동 154번지에 그 부지를 마련하였다. 해방 이후에도 동 부지에서 계속 운영되다가 2002년 현 제주의료원 부지로 이전하였다. 제주자혜의원은 개원 초기 다른 시설을 양도받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도판16]은 그에 대한 배치도로 무질서하게 배치된 작은 건물들을 의원으로 활용하였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곧 본관을 새로 신축하게 되었으며, 그 이후의 상황을 [도판17]에서 볼 수 있다. [도판17]은 시실(屍室)을 신축하기 위해 작성된 배치도로, 대지의 북쪽에 정문이 계획되고, 북쪽부터 본관, 병실이 배치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본관의 계획은 [도판18]에서 볼 수 있는데, 전술한 것처럼 강릉, 안동, 초산자혜의원 본관의 계획과 동일하게 십자 중복도의 목조 단층 건물로 계획되었고, 누름대비늘판벽으로 단순하게 마감되었다.

진주자혜의원은 1921년 9월 개원하였다. 가장 이른 시기의 시설 현황은 [도판19]에서 볼 수 있다. 오른쪽의 배치도를 보면, 북쪽에 정문이 있고, 부지 중앙에 관리실과 수술실, 병실이 있으며, 부지 후면에 병실이 추가로 운영되고 있었음을 볼 수 있다. 이후, 건물의 증축이 계속되었는데, 1922년에 작성된 [도판20]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본관 후면으로 병실이 추가로 계획되었고, 가장 후면의 병실도 새롭게 바뀌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본관 전면에도 여러 건물들이 더 계획되어 있다. 하지만, 이 도면은 일부의 건물을 이축(移築)하기 위해 작성된 도면이다. 진주자혜의원은 1921년 11월 6일에 부지 이전을 위한 공사를 시작하였고, 1922년 10월 신축 부지에 본관과 전염병실을 준공하고 이전하였다. 본관을 신축하면서, 나머지 건물들은 기존의 건물을 이축하여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1923년 12월 15일에 낙성식을 거행하였다. 이전 부지는 옛 진주농업학교 자리이며, 현 진주시 중안동 4번지 경상남도진주의료원 부지이다. [도판21]은 이전 부지에 대한 배치도이다. 부지 자체가 기존보다 훨씬 넓어졌으며, 남동쪽에 정문을 계획하고, 전면부터 본관, 병실, 전염병실을 계획하고 있다. [도판22]는 본관의 설비계획도이다. 본관의 계획적 형태는 군산 및 춘천자혜의원 본관과 거의 동일한 점과 신축계획도 없이 설비계획도만 남아있는 점은 본관에 대한 공통도면이 존재하였음을 알려준다.

청주자혜의원은 1909년 12월 전주자혜의원과 함께 가장 먼저 개원한 자혜의원이다. 청주자혜의원의 초기 배치는 [도판23]에서 엿볼 수 있다. 이 도면은 1919년 작성된 도면으로 병실과 욕실을 증축하기 위한 것이다. 증축 부분은 빗금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그 나머지 건물들은 그 이전에 건립된 것이다. [도판24]는 그 본관의 설계도이다. 본관은 십자중복도를 갖는 장방형 평면의 좌우에 수술실과 변소가, 후면에 창고 및 탕비실이 덧붙는 형태로 계획되어 있다. 이러한 본관의 평면 계획은 1912년에 설립된 강릉, 안동, 제주, 초산 자혜의원 본관의 계획을 그대로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청주자혜의원 본관은 영국식 비늘판벽으로 마감되고, 전면에 장식이 부가된 박공과 지붕창 등으로 비교적 화려하게 계획되어 있는 반면, 1912년의 본관들은 모두 매우 단순하게 계획된 점이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도판4], [도판13], [도판18], [도판27] 참조) 본관의 전면에는 원장실, 사무실, 환자대기실(患者控室), 진료실이 배치되었고, 후면에는 응접실, 암실, 내과진찰실, 숙직실, 약국 등이 위치하고 있다. 1922년 이 본관에 대해 신축하려는 계획이 진행되었으나, 실제 신축은 1928년에서야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 동안에도 병원 내에는 많은 건물이 새롭게 신축되고 있었다. [도판25]는 1923년에 작성된 배치도이다. [도판23]과 비교해 보면, 후면에 대형 병실 두 동이 추가로 계획되어 있으며, 본관의 왼쪽에도 대규모의 건물들이 새롭게 증축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초산자혜의원은 1912년 10월 개원하였으며, 같은 시기의 강릉 자혜의원과 거의 동일한 배치로 계획되었다. [도판26]은 그 배치도로 장방형의 부지 중앙부터 본관, 부속가, 병실이 배치되었다. 본관은 누름대비늘판벽의 단층 목조건물로 계획되었으며, 이 역시 강릉, 안동, 제주 자혜의원 본관과 동일한 설계를 기반으로 계획되었다. ([도판27] 참조) 분관과 수술실 사이의 복도는 그 전면에 추가로 건물을 증축하면서 개축되었는데, 그 현황을 [도판28]에서 확인할 수 있다.

혜산진자혜의원은 1923년 3월 28일 총독부령 제51호로 설치령이 공포되었으며, 1923년 11월 개원하였다. 장방형에 가까운 부지를 마련하고 정문을 서쪽 모서리에 계획하였으며, 부지 중앙부터 북쪽으로 본관, 예정 병실, 전염병실을 배치하였다. 본관의 구체적 계획은 [도판30]에서 볼 수 있는데, 전술한 것처럼 동 시기 자혜의원의 본관과 동일한 계획 하에 설계되었으며, 신축설계도가 아닌 설비계획도만이 남아 있는 것도 공통도면을 활용하여 계획하였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참고도판]
  • 도판1. 자혜의원증기난방장치도, 1921-22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2. 강계자혜의원신축배치도/7, 1921-22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3. 강릉자혜의원신축공사배치도/4, 1912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4. 강릉자혜의원본관급기타부속수술실신축공사설계도/3, 1912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5. 공주자혜의원신축설계도/1, 1910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6. 공주자혜의원신축설계도/2, 1910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7. 공주자혜의원청사증축모양체설계도/17, 1911-22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8. 공주자혜의원전염병실신축공사부지배치도/19, 1923상세보기
  • 도판9. 부산자혜의원부지설계평면도/1, 1910-25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10. 성진자혜의원신축배치도/1, 1921-22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11. 성진자혜의원증기소독급급수장치도/6, 1921-22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12. 경상북도안동자혜의원부지지균급하수공사설계평면도/10, 1912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13. 안동자혜원본관기타신축공사설계도/3, 1912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14. 의주자혜의원시실배치급주위철조책설계도/11, 1915상세보기
  • 도판15. 평안북도의주자혜의원원사기타증축공사지도/7, 1910-15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16. 제주자혜의원부지배치도/7, 1912-13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17. 제주자혜의원창고급시실신설배치도/9, 1915상세보기
  • 도판18. 제주자혜의원본관기타신축공사설계도/내본관수술실측랑하/1, 1912-13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19. 경상남도자혜의원배치도/2/재래관리실일부모양체지도, 1910-20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20. 진주자혜의원재래건물배치도 / 21, 1922상세보기
  • 도판21. 진주자혜의원부지지균공사설계평면도 / 11, 1921-22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22. 진주자혜의원증기소독장치지도 / 26, 1922-23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23. 충청북도자혜의원병실기타증축공사배치도 / 22, 1919상세보기
  • 도판24. 충청북도자혜의원신축설계도/제1호, 1909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25. 청주자혜의원증축배치도/19, 1923상세보기
  • 도판26. 초산자혜의원본관기타신축공사배치도/2, 1912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27. 초산자혜의원본관기타신축공사설계도/1, 1912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28. 초산자혜의원증축공사배치도 / 6, 1912-25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29. 혜산진자혜의원신축배치도/6, 1922상세보기
  • 도판30. 자혜의원증기난방공사설계도/1, 1923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