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제별 해제 > 의료 · 세관 > 의료 > 대구자혜의원

의료

대구자혜의원

대구자혜의원은 1910년 각 도에 설치되었던 관립의원 중 하나로 1910년 9월 15일 개원하였다. 대구자혜의원은 1925년 4월 1일「조선도립의원관제(朝鮮道立醫院官制)」및「도립의원규정(道立醫院規程)」이 시행되면서 도립의원으로 개편되어 운영되어 오다가 현재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에 이르고 있다. 현재 국가기록원에는 대구자혜의원에 관련된 88매의 도면이 소장되어 있다.

명칭 연도 도면수
대구자혜의원 1910.09 ~ 1925.03 88매

소장 도면 중 1910년 개원 당시의 모습을 살펴 볼 수 있는 배치도는 없으나 이후 증축을 하면서 제작된 배치도에서 그 모습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도판1]은 병실을 증축하기 위해 제작된 배치도로 당시의 부지 형태와 건물의 배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부지는 비정형의 대지로 남쪽과 서쪽이 대로에 면해 있었다. 제일 남쪽으로 본관이 위치하였는데, 본관 왼쪽에는 시료진료소, 오른쪽에는 수술실로 보이는 건물이 복도로 연결되었다. 후면으로 병실로 보이는 건물이 복도로 연결되어 있으며, 병실 오른쪽에는 부정형의 부지를 따라 대각선으로 복도가 계획되어 있고 그 뒤로 병동이 배치되어 있다. 이 도면은 그 뒤쪽의 색이 칠해져 있는 병실을 증축하기 위해 제작된 것이다. 그 뒤로 북쪽의 대지 경계선에 가깝게 신축될 병실과 거리를 두고 배치되어 있는 건물은 전염병동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개원 당시 건축된 건물에 대한 도면은 남아 있지 않아 그 구체적인 모습은 알 수 없다. [도판2][도판1]의 증축 병실 도면이다. 목구조로 된 단층 건물로 남쪽에 복도를 두고 북쪽에 병실을 배치하였다. 양 끝에 공동욕실과 화장실을 두었으며, 온돌을 사용하였다. [도판3]에서는 병원이 확장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기존 부지의 동쪽과 북쪽의 부지를 매입하여 병원을 확장해 가는 모습이다. 이로써 부지는 동쪽을 제외한 남, 서, 북면 전체가 도로와 면하게 되었고, 남북으로 긴 정방형의 부지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기존 건물의 동쪽에 독립된 취사장 건물을 추가하고, 기존의 병동 뒤로 새로운 병동 두 동을 신축하려는 계획이 시행되었다. 부지의 북동쪽 끝에는 담장을 둘러 독립된 영역을 형성하는 전염병실을 계획하였다.

[도판4]는 당시 계획된 전염병실의 도면이다. 1915년 부지 확장과 함께 신축된 건물로 단층으로 된 목조건물이다. 전면 중앙에 현관이 있으며, 기존의 병실과 달리 남쪽에 병실을 배치하였다. 건물의 왼쪽에는 식당을, 오른쪽에는 욕실과 화장실을 두었다. 북쪽의 건물과 복도로 연결되었다. 굴뚝과 아궁이 시설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바닥은 다다미로 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청사의 규모를 확대하여 신축하려는 계획이 진행되었다. [도판5]는 1915~18년 사이에 제작된 도면으로 기존의 청사를 헐고 새로운 청사를 신축하려는 계획을 보여준다. 우측의 배치도를 보면, 기존 건물 보다 큰 청사가 들어서게 되면서 그 위치를 후면으로 조금 물러나게 한 것을 볼 수 있다. [도판6]에서 보다 자세한 청사의 계획을 살펴볼 수 있다. 목구조로 된 2층 건물이었으며, 중앙과 좌우를 전면으로 돌출시키고 상부에 박공을 둠으로서 전면을 강조하였다. 양쪽의 박공은 용마루 끝을 꺾어내려 변화를 주었다. 박공의 입면은 일식 목구조의 형상을 본떠 구성하였는데 이러한 모습은 1910년대 후반 학교 본관의 입면에서 많이 사용되던 기법이다. 지붕은 경사지붕이었는데, 전면에 4개, 좌우에 1개의 돌출창이 설치되었다. 건물의 서쪽에는 시료진료실이 단층 목구조로 연결되었는데, 시료영역과 일반영역은 출입구를 별도로 두고 있으며, 연결 복도에는 문을 두어 별도의 구역으로 구분하였다. 화장실을 따로 사용하지 않고 시료진료부와 같이 사용하는 것이 다른 자혜의원과 다른 모습이다. 본관의 1층에는 각 과의 진료실과 약국 등이 위치하였고, 2층에는 원장실, 식당, 도서실 등이 배치되었다.

이후 확장된 부지에 맞추어 병원 전체의 마스터플랜이 다시 계획되었다. [도판7]은 1917년경 제작된 도면으로 전체 계획을 보여준다. 얇은 선으로 그려진 기존 건물 위에 굵은 선으로 새로운 계획건물들을 그려 넣어 변경 전후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앞서 건축된 본관 건물 동쪽에는 수술실을 신축 계획하였고, 전염병동도 2동으로 확장하고자 하였다. 일반 병동으로는 기존의 병동을 헐고 신축한 두 동을 포함하여 총 5동의 병동을 계획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마스터플랜이 실현되어 가는 과정은 이후의 도면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새로운 마스터플랜에 따라 개원 당시 부정형의 대지에 맞추어 계획되었던 2동의 병실은 부지 뒤쪽 전염병동 옆으로 이전하여 시료병실로 사용되었다.([도판8] 참조) [도판9]는 병동의 이전당시 제작된 도면으로 이전계획을 보다 자세히 보여준다. 배치도 상으로는 건물을 그대로 이전한 것으로 보이지만 내부 평면에는 변화가 있었다. 도면을 살펴보면 북향이었던 기존 건물을 180도 회전시켜 남향의 건물로 재배치한 것을 알 수 있다. 건물 내의 화장실은 소사실(小使室)로 옮기고 그 자리는 복도와 욕실로 변경하였다. 난방방식은 기존의 온돌난방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이후 계속해서 증축이 이루어진다. [도판10]에서 신축계획을 살펴볼 수 있다. 기존의 병동 사이와 남쪽에 3동의 병실을 더 신축하고, 본관과 연결된 복도에 숙직실을 두고, 병동 동쪽에 기숙사를 신축하는 계획이다. 신축할 건물에는 색칠을 하여 기존 건물과 구분하고 있다. 3동의 신축병실 계획은 [도판11]에 잘 나와 있는데, 도면 아래에서부터 3등 병실, 2등 병실, 1등 병실의 계획이다. 3등 병실은 병실이 넓게 구획되어 있어 여러 명이 함께 사용하는 병실로 계획된 것으로 보인다. 2등 병실은 두 개의 방을 미닫이문으로 구획을 하여 필요에 따라 나누어 쓰거나 하나의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고 한쪽 방에 벽장을 두어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1등 병실도 두 개의 방으로 되어있는데 한쪽을 좀 더 크게 하여 작은 방을 부속실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특이한 점은 난방방식인데 2, 3등 병실은 일본식 다다미로 바닥이 계획된 것에 비해 1등 병실에는 온돌과 다다미를 모두 사용한 것이다. 병동의 신축 이후 5동의 병동 중 북쪽의 2동은 1등 병실로 사용하게 되고, 나머지 3개의 병동은 2, 3등 병실로 사용하게 되는데, 온돌은 시료병실과 함께 1등 병실에만 사용되었다. 시료병실과 일반병실과에 차등을 두었던 당시의 상황을 볼 때 온돌에 대한 당시의 인식을 살펴 볼 수 있는 좋은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대구자혜의원은 도립의원으로 개편된 후인 1926년에 큰 화재로 본관이 소실되었다. 이후 대규모의 본관 신축이 이루어지게 되는데 본관의 규모가 상당하여 당시 도립의원 중에는 가장 큰 건물로 총독부의원에 비해서도 손색이 없는 건물이었다고 한다. 이때 지어진 본관은 아직까지 현재의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 구내에 남아 있다.

[참고도판]
  • 도판1. 대구자혜의원증축건물배치도/56, 1910-15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2. 대구자혜의원증축설계도/병실설계도/51, 1910-15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3. 대구자혜의원병실기타신축공사배치도/22, 1915상세보기
  • 도판4. 대구자혜의원병실기타신축설계도/전염병실지부/23, 1915상세보기
  • 도판5. 대구자혜의원청사기타신축설계도/2, 1915-17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6. 대구자혜의원청사기타신축설계도/1, 1915-17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7. 대구자혜의원부지평면도/38, 1917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8. 대구자혜의원숙직실기타신축공사배치도/63, 1918상세보기
  • 도판9. 대구자혜의원재래병실기타이축모양체설계상세도/62, 1918상세보기
  • 도판10. 대구자혜의원병실기타신축설계배치도/1, 1917상세보기
  • 도판11. 대구자혜의원병실기타신축설계도/9, 1917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