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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적십자사조선본부 결핵요양소

일본적십자사조선본부 결핵요양소는 결핵환자의 증가에 따른 결핵예방사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1937년의 중일전쟁으로 전시체제를 대비한 국민 개개인의 관리 차원에서 건립한 결핵전문 요양소로서 일명 ‘연수장(延壽莊)’이라고도 하였다. 1940년 12월에 개원하였으며 외래환자는 취급하지 않고 주로 일본인을 대상으로 입원치료를 행하였다고 한다. 현재 국가기록원에는 일본적십자사조선본부 결핵요양소에 관련된 98매의 도면이 소장되어 있다.

명칭 연도 도면수
일본적십자사조선본부 결핵요양소 1940 ~ 1945 98매

일본적십자사조선본부 결핵요양소는 일제강점기 의료사업의 대표적 대상인 결핵환자의 입원치료를 위하여 개원한 요양소이다. 관광명승지로 풍광이 좋은 문학면 연수리 산자락, 연수동 220번지(현, 인천광역시 연수구 연수3동 580-3번지)에 개원하였다. 결핵요양소는 북쪽으로부터 시작되는 진입로를 통해 출입하도록 계획되었다.([도판1] 참조) 계단식 전답(田畓)으로 추정되는 지형과 듬성듬성 배치된 민가의 상태로 보아 진입로 자체도 새로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긴 진입로 안쪽의 결핵요양소는 남쪽으로 경사진 지형에 동서로 길게 조성된 평탄한 대지에 관사부와 요양소부로 구분되어 계획되었다.([도판2] 참조) 요양소부는 병실과 본관이 동서로 연접하여 긴 건물을 이루고 본관의 서쪽 단부에서 복도를 통하여 간호부숙사와 연결되도록 하였기 때문에, 전체가 마치 동서로 긴 단일 건물처럼 보인다. 보일러실과 취사장은 진입로를 향하여 북쪽 편에 계획되었는데, 주요건물의 남측 채광을 확보하기 위한 계획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요양소부의 동쪽으로는 2개 동의 온돌병실이 별도로 계획되어 있으며, 서쪽으로는 5개 동의 관사를 계획하였다. 요양소부에 가까운 곳부터 원장관사, 의원관사, 서기관사 각 1동씩과 2개동의 고원숙사(雇員宿舍)가 배치되었다. 결핵요양소의 남쪽으로는 민가(民家)로 추정되는 몇 채의 한옥도 확인할 수 있다.

본관 건물의 계획안은 1939년에 작성된 [도판3]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건물의 동쪽으로 치우친 현관을 통해 1층으로 진입하면 복도를 중앙에 두고 남쪽으로는 시험실, 소(小)수술실 겸 처치실, 진찰실, 서무실과 숙직실이 있었고, 북쪽으로는 뢴트겐실과 태양등실(太陽燈室), 그리고 약국이 배치되어 있었다. 2층의 복도 남쪽부분은 옥상노대(屋上露臺)로 남겨두고 복도 북편에만 회의실, 원장실, 의무실 등을 계획하였다. 결핵환자를 요양시키기 위한 시설이기 때문에 적극적인 처치보다는 진찰과 간단한 처치 그리고 관리를 위한 시설로 계획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관 부분은 이례적으로 중앙부에서 한쪽으로 치우쳐 있지만, 다른 입면 부분과 달리 타일로 치장하고 간격이 동일하지 않은 장식기둥을 세워 두드러진 외관을 계획하고 있다.([도판4] 참조) 현관 안쪽에는 내외로 모두 열리는 여닫이문을 계획하여 들어오고 나가는 이용자를 모두 배려한 점도 확인할 수 있다.([도판3] 참조)

[도판5]에서 본관 건물의 구조체계를 확인할 수 있다. 벽체는 벽돌조로 구성되었고, 바닥판과 보는 철근콘크리트로 계획되었으며, 지붕가구로는 목재트러스가 사용되었다. 내부 공간은 내력벽인 벽돌벽으로 단위공간을 크게 구획한 후, 그 사이사이를 목조 비내력벽으로 구분하고 있다.([도판3] 참조) 입면 계획을 살펴보면, 특별한 장식이나 조형물 없는 외벽에 기와를 얹은 경사 지붕을 계획하였음을 볼 수 있다.([도판6] 참조) 다만, 지붕 처마 바로 밑에 서까래 마구리가 노출되도록 하여 규칙적인 패턴처럼 보이게 한 점은 특징적이다.

병동 건물은 계단실을 경계로 본관과 연접하도록 계획되었다. 최초의 계획안은 두 개 층에 복도를 북편에 두고 병실의 배치하여 병실의 남측 창문이 외기와 직접 만나도록 설계되어 있었으며,([도판7] 참조) 또한 부분적으로 3층을 계획하고 일광욕실과 노대(露臺)를 두었다. 일광욕실의 경우 남쪽 경사 지붕에 유리를 사용하여 일광욕실 내부 전체가 채광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도판8] 참조)

그러나 최초계획안 도면에는 모두 ‘불용(不用)’이라는 글씨가 적연필로 기재되어 있어 이 계획안은 폐기되고 새로운 계획안으로 진행된 것을 알 수 있다. [도판9]에서 변경된 평면 계획을 살펴보면, 1층과 2층의 모든 병실 전면에 베란다를 계획하여 마치 또 하나의 복도와 같이 조성한 점과 일광욕실이 있었던 3층을 삭제하고 2층 병실로 계획한 것을 볼 수 있다. 새로운 계획안에서는 병동 중앙의 계단실을 경계로 좌측에는 작은 규모의 병실을 두고 우측에는 큰 규모의 병실을 두었으며, 중앙 계단부에서 북쪽 부분에는 변소, 욕실 등의 부속시설이 돌출되어 배치되었다.

병동의 구조로는 본관과 마찬가지로 벽돌조 벽체에 바닥판과 보로는 철근콘크리트가 사용되었다.([도판10] 참조) 지붕가구에는 목재 트러스가 사용되었는데, 병실의 일부는 본관보다 폭이 크기 때문에 목재의 큰 보를 만들기 위해 두 개의 부재를 철판과 볼트로 연결하여 장거리 스팬(span)을 확보하고 있다. 또한, 수직 연결재와 대각선의 가새로 보강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도판11]에서는 병실 남쪽에 베란다를 두고 전면 전체를 창문으로 계획한 단면계획을 확인할 수 있다. 병실의 북쪽으로 돌출된 부속시설에는 화장실, 욕실 등이 계획되어 있다.([도판12] 참조) 욕실의 경우에는 방수계획의 일환으로 바닥판을 0.5자(15cm) 낮아지도록 하였고, 욕실 사용자 편의를 위하여 3자(90cm) 깊이의 욕조 바닥도 낮아지도록 하여 욕조 턱이 1.5자(45cm)에 불과하도록 계획한 점이 특징이다.

이에 비하여 간호부기숙사는 다소 간략한 공법으로 계획하였다. 벽체로는 벽돌벽를 사용하되 바닥판과 지붕가구 일체를 목조로 조성된 반면, 계단과 계단참만이 철근콘크리트로 계획되었다.([도판13] 참조) 기숙사 실내는 다다미로 계획하였는데, 각 층마다 바닥 밑으로 환기가 되도록 환기구멍을 벽체에 삽입하였다.

해방 후의 결핵요양소는 1946년 7월부터 대한적십자사 본사직영으로 재개원하였으며, 1977년에는 인천적십자병원으로 개칭하였다. 1985년에는 종합병원으로 승격하고 시설을 전면적으로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참고도판]
  • 도판1. 문학면연수리지내도로개수공사설계도/평면도, 1938-1940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2. 일본적십자사조선본부결핵요양소신축공사배치도, 1938-1940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3. 일본적십자사조선본부결핵요양소신축공사설계도/본관급간호부숙사평면/2-1, 1939상세보기
  • 도판4. 일본적십자사조선본부결핵요양소신축공사설계도/원설계본관현관회상세/9, 1938-1940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5. 일본적십자사조선본부결핵요양소신축공사설계도/본관구계도/8, 1938-1940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6. 일본적십자사조선본부결핵요양소신축공사설계도/3-1, 1938상세보기
  • 도판7. 도판. 일본적십자사조선본부결핵요양소신축공사설계도/각계평면도, 1938-1940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8. 일본적십자사조선본부결핵요양소신축공사설계도/병동일광욕실상세/15, 1938-1940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9. 일본적십자사조선본부결핵요양소신축공사설계도/병동평면도/2-2, 1938상세보기
  • 도판10. 일본적십자사조선본부결핵요양소신축공사설계도/병동구계상세(기2)/10, 1938-1940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11. 일본적십자사조선본부결핵요양소신축공사설계도/병동구계상세(기1)/11, 1938-1940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12. 일본적십자사조선본부결핵요양소신축공사설계도/병동수세,욕실,변소회상세(기2)/20, 1939상세보기
  • 도판13. 일본적십자사조선본부결핵요양소신축공사설계도/간호부기숙사구계/16, 1938-1940년 추정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