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 성공 직접 요인
가정용 연료재의 화석연료 대체
경제성장과 정부의 강력한 정책 지원은 분명 우리나라 산림녹화의 성공 요인이었다. 이러한 배경하에 산림 황폐화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던 가정용 임산연료의 화석연료 대체와 화전정리사업이 실행되었다. 특히 우리나라가 직면한 산림 황폐화의 가장 큰 원인은 도시와 농촌을 불문하고 산에서 나무를 베어 아궁이에서 태워버리는 막대한 임산연료 사용에 있었다.84 1960년에도 우리나라는 전체 1차 에너지의 62.5%를 신탄(薪炭)으로 충당할 정도로 연료재는 국가의 중요한 에너지원이었다. 1955년 당시 연료재의 소비량이 그대로 이어졌다면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 한국의 산림 대부분은 황폐되었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1950년대 중반의 상공부의 에너지 정책과 농림부의 산림녹화 정책을 연결한 부문 간 협력(inter-sectoral cooperation)은 효과적인 선택이었다. 상공부는 1956년 임산연료의 화석연료 대체를 위해 우리나라의 유일한 부존 에너지 자원인 무연탄 생산을 늘리는 정책을 강력히 추진하였다. 농림부는 1958년 도시지역으로 유입되는 임산연료 반입을 금지하고 상대적으로 연료재의 압박이 덜한 농산촌에는 연료림을 조성하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영암선, 태백선 등 석탄철도 부설이 확장됨에 따라 무연탄 생산은 급속하게 증가하였고 상대적으로 교통이 편리하고 인구가 밀집된 도시지역부터 임산연료의 대체가 이루어졌다.
특히, 1960년대 도시의 가정 연료는 무연탄이 임산연료를 대체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이런 영향으로 1970년에는 이미 도시지역의 단 7%만이 가정용 난방 및 취사 에너지로 임산연료를 사용하였다. 더욱이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농촌 지역도 서서히 연탄이 임산연료를 대체하기 시작하였고, 1980년대에 들어서면 취사용은 가스로, 난방용은 연탄으로 대체되었다. 가정용 연료의 화석연료 대체는 산림자원의 조성과 함께 1960년대 이후 산림자원을 지속적으로 증가시키는 핵심 요인이었다.
이러한 화석연료의 임산연료 대체 정책이 성공을 거두기 시작하자 전통적인 자원조성 정책과 산림보호 정책도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하였다. “연탄이 대도시를 비롯하여 '70년대 초에는 농촌에까지 보급되면서 어느새 푸른 산이 되었다.”85 는 평가처럼, 1970년대 가정용 임산연료의 화석연료 대체는 당시 산림 황폐화의 가장 큰 원인을 제거하는 역할을 하였다.
대규모 조림
산림녹화를 위한 이상과 같은 토대가 마련된 다음에야 정부의 대규모 조림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하였다. 조림은 산림녹화 성공의 필요조건이었다. 1946년~2000년간 연평균 9만 7천 ㏊를 조림하여 2000년까지 산림면적의 약 83%에 해당하는 532만 ㏊라는 막대한 조림 실적을 보였다. 상대적으로 산림 황폐지가 더 많았던 민유림에서 94%의 조림이 이루어져, 민유림 중심의 조림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식(補植) 면적에다 자연재해, 활착 실패, 사후관리 실패 등의 이유로 중복 조림이 이루어져 실제 조림 대상 면적은 이보다 적다고 해도 이 시기의 인공조림이 현재 우리나라의 산림을 이루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이를 5년 단위로 나누어 시기별로 살펴보면 산림녹화 프로그램의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 산림청 개청과 함께 그동안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잔여 연료림 대상 면적 36만 ㏊를 포함한 총 45만 ㏊를 일거에 조림하였던 1967년을 예외로 하면, 제1, 2차 계획이 포함된 1976~1980년에 연평균 20만 ㏊를 조림하여 가장 높은 실적을 보였다. 다음으로 1966~1970년에 연평균 19만㏊를 조림하여 두 번째로 높은 실적을 보였는데, 그 이유는 1967년의 대규모 조림 실적이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1961~1980년간 조림 실적은 전 기간 조림 실적의 59%를 차지하였고, 제1차 계획기간이 포함된 1971~1980년은 1961~1970년에 비해 다소 많은 31%를 차지하였다. 1980년대 이후는 연료재 대체 및 화전정리사업의 성공과 지속적인 조림 사업으로 인해 조림 실적은 계속 줄어들었다. 1983년 연평균 조림 실적이 10만 ㏊ 미만으로 떨어진 이후 급속히 감소하여 2010년 이후 2만 ㏊ 내외로 줄어들었다. 이런 측면에서 산림녹화 프로그램이 본격적으로 실행된 1973년~1987년 기간에 실행된 조림이 우리나라 산림녹화의 주춧돌이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치산녹화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영일지구 사방의 성공은 아무리 헐벗고 불가능해 보이는 황폐지일지라도 녹화가 가능하다는 희망을 일깨워주었다. 실제 제1차 계획기간 동안 사방사업 목표치인 84천 ㏊의 50%인 42천 ㏊밖에 이행되지 못하였지만, 영일지구 사방사업의 성공이 의미하는 바는 정량적 목표 달성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화전정리사업
산림 황폐화의 주요 원인 중 하나였던 화전 역시 제1차 계획과 별도로 수행된 화전정리사업(1974~1978)의 성공으로 1980년이 되자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화전지 107,216ha 중 경사도 20도 이상의 산지 74,171ha는 산림으로 복구되고 20도 미만의 산지 30,045ha는 농경지화하였다. 20도 미만의 화전지는 영농을 허용하되 국유림의 경우 연부 상환으로 토지가를 내면 화전민의 토지소유권을 인정했다, 화전민은 현지 정착, 이전, 이주의 형태로 정리되었다 화전정리 후 영농 규모가 3,000평(1ha) 이상이 되면 현지 정착을 인정하였다. 이전은 경사 20도 이상 지역에 거주하는 화전민을 인근 마을로 옮기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는 이주자에게 20만 원의 지원금을 주고 정착을 지원하였다. 이주는 화전민 가족을 다른 도시로 옮기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는 이주하는 화전민에게 40만 원의 지원금과 다양한 지원 정책을 제공하였다. 1974년~1979년 동안 화전민 호수 267,301호가 정리되었는데, 현지 정착이 93.4%로 대부분이었고 이주는 5.7%, 이전은 0.9%였다. 화전정리에 들어간 예산은 188.6억 원이었다. 화전 지역을 임야 소유별로 살펴보면, 124,643ha의 화전 중 사유림이 차지하는 비율이 73.0%로 가장 높았으며, 국유림 15.8%, 공유림 11.2%로 뒤를 이었다.86
화전정리사업은 치밀한 계획과 국가의 강력한 사업 추진으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국가적 사업으로 추진하였다고 해도 화전민을 발생시키는 사회경제적 조건이 제거되지 않는 한 쉽게 성공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점도 분명하다. 화전민이 생기는 핵심 원인이었던 농촌인구의 토지에 대한 압력이 1970년대부터 해소되었다. 1970년 사회경제구조의 변화에 따른 노동시장의 확대와 농산물 시장의 변화는 화전민의 이주를 촉진했다.87 1970년대 농촌인구의 급격한 도시 이주는 농민의 임산연료 사용 감소와 추가적인 화전민 발생을 막는 요인이 되었으며, 이는 결국 산림녹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또한 식민지기와 달리 지주․소작 관계가 해체되고 농민 소득의 증가 역시 화전정리사업 성공의 필요조건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근본적인 사회경제적 변화를 바탕으로 국가의 강력한 화전정리사업이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특히 화전민의 이주 및 이전을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한 국가 재정의 투입은 무엇보다 중요한 화전정리사업의 성공 요인이었다. 덧붙여 항공측량 기술의 발전과 지방까지 확장된 도로 건설은 화전민의 은닉성을 제거하였다.88
| 구분 | 내용 | 연도 | ||||||
|---|---|---|---|---|---|---|---|---|
| 1974 | 1975 | 1976 | 1977 | 1978 | 1979 | 계 | ||
| 화전지 정리 (ha) |
산림복구 | 7,772 | 18,680 | 28,395 | 0,968 | 7,547 | 819 | 74,171 |
| 농경지화 | 2,583 | 5,750 | 18,065 | 3,393 | 218 | 30,009 | ||
| 집단농경지화 | 409 | 3 | 654 | 1,80 | 164 | 3,036 | ||
| 소계 | 10,764 | 24,433 | 47,104 | 16,167 | 7,929 | 819 | 107,216 | |
| 화전민 정리 (호) |
이주 | 3,173 | 3,869 | 3,876 | 2,273 | 2,103 | 15,294 | |
| 이전 | 332 | 668 | 630 | 523 | 196 | 2,349 | ||
| 현지정착 | 37,626 | 91,891 | 89,136 | 41,678 | 6,970 | 249,658 | ||
| 소계 | 37,626 | 91,891 | 89,136 | 41,678 | 6,970 | 267,301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