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일지구 사방 사업지는 경북 영일군 의창면 외 7개면, 월성군 강동면 및 안강읍, 포항시 장량동 외 8개동에 걸쳐 분포하였다. 일제시기 산림 수탈과 6.25전쟁 등으로 임상이 파괴되었고 연료난 등으로 산림의 황폐화 정도는 심하였다. 또한 모암층이 이암(泥巖)과 혈암층(頁巖層)으로 일단 황폐되면 복구가 어려워 첫 사방사업이 시작된 1907년 이래 무려 50여 회에 걸쳐 소규모의 사방사업을 시행하였지만 복구에 성공하지 못하였다.
1971년 9월 17일 | 대통령, 경북 영일군 우수새마을 시찰시 "국제항공로의 관문인 영일지구 집단 황폐지를 복구하라" 고 지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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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3월 | 중앙임업시험장 주관 하에 과거 일제시기 이 지역에 대한 사방실패 요인을 분석하여 시험사방 실시 |
1973년 5월 |
"새로운 기구를 설치하더라도 2~3년 안에 완전복구 하라"는 대통령 지시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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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5월 ~ 197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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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위(사업량: ㏊/투자액: 백만원)
연도별 | 사업량 | 투자액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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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 국고 | 지방비 | 주민 | 취로 | ||
계 | 4,538 | 3,828 | 2,851 | 931 | 36 | 10 |
1973 | 627 | 357 | 346 | 11 | - | - |
1974 | 1,299 | 675 | 598 | 59 | 18 | - |
1975 | 971 | 722 | 644 | 78 | - | - |
1976 | 719 | 863 | 504 | 331 | 18 | 10 |
1977 | 922 | 1,211 | 759 | 452 | - | - |
일반사방 |
나지(裸地) 사방 |
특수사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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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1㏊ (72%) |
768㏊ (17%) |
479㏊ (11%) |
참여인원 총: 3,556천명 | 주요자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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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일지구는 우리나라 치산치수 사업 중 규모에 있어서 단일구역으로는 가장 큰 사업지였다. 5년이라는 장기적 계획으로 그 마무리를 성공적으로 마쳐, 국제항공로 관문의 녹화, 토사 유출방지로 국토보전에 기여, 포항 공업지역 황폐 예방과 수원 함양, 주민의 농외소득 향상의 효과를 보았다.
시공전 |
시공 3년 후 (1975년) |
시공직후 |
시공 2년 후 (1975년) |
시공전 |
시공 6개월 후 (1975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