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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의 말기는 내선일체화, 일본식 성명 강요, 한민족의 황국신민화라는 명분 아래 한민족의 전통, 풍습, 언어 등을 말살하는 정책이 시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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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무

조선총독부의 교육·종교·사회사업 등의 업무는 1912년 3월까지는 내무부(內務部) 지방국(地方局) 지방과(地方課)와 학무국(學務局) 학무과(學務課)에서 담당하였고, 1919년 8월 이전에는 내무부 학무국 학무과와 지방국 제1과(第一課)에서 담당하였으며, 이후부터 1921년 7월까지는 학무국 학무과·종교과(宗敎課)와 내무국 제1과가 담당하였다. 1921년 7월부터 1932년 2월까지는 학무국 학무과·종교과와 내무국 사회과가, 1936년 10월까지는 학무국 학무과·사회과가, 1941년 11월까지는 학무국 학무과·사회교육과(社會敎育課)와 내무국 사회과가, 1942년 11월까지는 학무국 학무과·연성과(練成課)와 후생국(厚生局) 사회과가, 1943년 12월까지는 학무국 학무과·연성과와 사정국(司政局) 사회과가 담당하였다. 그리고 1943년 12월부터 1944년 11월까지는 학무국 학무과·사회과·연성과가 담당하였으며, 1945년 4월까지는 학무국 전문교육과(專門敎育課)·국민교육과(國民敎育課)·교무과(敎務課)·사회과·연성과가 담당하였다. 1945년 4월 이후부터 해방이 될 때까지는 학무국 학무과·교무과·연성과 그리고 원호과(援護課)로 존속하였다.

① 1910년 한일합방 ~ 1919년 3.1운동 이전
‘학무(學務)’, ‘사회교육(社會敎育)’으로 분류되는 기록물은 초기에는 조선총독부 내무부(內務部) 학무국(學務局)의 학무과(學務課)와 지방국(地方局)의 지방과(地方課)에서 생산되었다.
일제는 한국을 강제합방한 후 ‘통치기관의 통합, 지방기관의 충실, 인원의 선택배치, 경비절감’ 등을 표방하며 새로운 관제 시행을 위해「조선총독부관제」를 공포하고 10월 1일부터 시행하였다. 조선총독부에는 총독관방(總督官房)과 총무부(總務部)·내무부(內務部)·탁지부(度支部)·농상공부(農商工部) 그리고 사법부(司法部) 등 1관방(官房) 5부(部)가 설치되었다.1) 내무부, 탁지부, 농상공부는 대한제국(大韓帝國) 시기의 기구가 그대로 존치되었던 반면 학부(學部)는 내무부 안에 하나의 국(局)으로 축소되었다. 이는 조선인 우민화(愚民化) 정책의 반영인 것으로 여겨진다. 조선총독부의 1관방 5부 체제 가운데 학무와 사회교육 업무를 담당했던 기구는 내무부의 학무국(學務局)과 지방국(地方局)이다.2)

< 표1 >지방과·학무과·편집과의 업무 구분

인사계 업무분장 보기
내무부 지방국 지방과 내무부 학무국 학무과 내무부 학무국 편집과
  • 1. 지방행정 및 경제
  • 2. 병사(兵事)
  • 3. 구휼 및 자선사업
  • 4. 지리, 지적 및 토지가옥증명
  • 5. 공공조합(公共組合)
  • 6. 종교 및 향사(享祀)
  • 1. 학교, 유치원, 도서관 기타 학제에 관한 사항
  • 2. 교원(敎員)
  • 1. 교과용도서의 편집, 반포, 검정 및 인가
  • 2. 민력(民曆)

2년 후인 1912년에는 내무부가 일대 개편되어 서무과가 폐지되는 한편 지방국 산하로 토목과(土木課)와 위생과(衛生課)가 이관되어 지방국은 제1과, 제2과로 편제되었다. 그리고 학무국은 관측소(觀測所)가 신설되고 그 업무가 더욱 세분화 되었으며, 업무에 있어서도 ‘신사(神社) 및 사원(寺院)’과 ‘조선총독부관측소(朝鮮總督府觀測所)’, ‘경학원(經學院)’에 관한 사항 등이 첨가되었다.3) 이 시기는 지방국 제1과가 신사·사원, 종교·향사, 제2과가 구휼·자선(慈善), 학무국에서 교육 일반에 대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결국 이 시기도 지방국과 학무국이 교육·종교·사회사업에 관한 사항을 담당한 2원적 체제였다.
1915년 5월에는 조선총독부 관제가 개편되면서 학무·종교·사회교육을 담당하던 기구의 명칭도 바뀌었다. 지방국이 폐지되어 제1과·제2과를 내무부 직속 하에 두고, 내무부 학무국 아래 학무과와 편집과가 배치되었다.

② 1919년 3.1운동 이후
이후 무단통치로 식민지 조선을 압제하던 조선총독부는 3·1운동 이후 기만적인 ‘문화정치’를 표방하였는데, 그 일환으로 1919년 8월 19일 조선총독부관제를 개정하고 동년 동월 20일부터 시행하였다. 이때의 조선총독부의 관제는 6국 3부제였다. 종래의 내무부·탁지부·농상공부·사법부가 내무국(內務局)·재무국(財務局)·식산국(殖産局)·법무국(法務局)으로 변경되었고, 경무총감부(警務摠監府)가 폐지되는 대신 경무국(警務局)이 신설되었으며, 총독관방의 총무국·토목국·철도국이 각각 서무부(庶務部)·토목부(土木部)·철도부(鐵道部)로 바뀌었다. 이 시기 내무부에 부속했던 학무국이 총독 직속으로 승격되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총독 직속의 학무국은 3개의 과(課)로 편제되었다. 종래의 학무과(學務課), 편집과(編輯課)와 함께 신설된 종교과(宗敎課)가 그것이다.4) 신설된 종교과에는 지방국 제1과의 업무 중 신사(神社)·사원, 종교·향사(享祀)업무가 이관되었다.

<표2 > 학무과·편집과·사회과의 업무 구분

인사계 업무분장 보기
학무과 편집과 종교과
  • 1. 교육, 학예(學藝)
  • 2. 교원(敎員)
  • 3. 학교, 유치원, 도서관
  • 4. 조선총독부 관측소
  • 1. 교과용 도서
  • 2. 민력의 출판 및 반포
  • 1. 사회사업(社會事業)
  • 2. 제생원(濟生院) 및 감화원(感化院)
  • 3. 사회교육(社會敎育)
  • 4. 청소년단(靑少年團) 및 청년훈련소(靑年訓練所)
  • 5. 도서관 및 박물관
  • 6. 경학원(經學院) 및 명륜학원(明倫學院)
  • 7. 향교재산(鄕校財産)의 관리
  • 8. 종교 및 향사(享祀)
  • 9. 사원(寺院)
  • 10. 보물, 고적, 명승, 천연기념물의 조사 및 보존

4년 후인 1936년 8월 5일 부임한 제7대 미나미(南次郞) 총독은 중일전쟁을 대비하여 대대적인 인사이동을 단행하는 한편 전시체제(戰時體制)로 돌입하기 위한 기구 정비에 들어갔다. 조선총독부는 전시체제에 적합한 사상 및 민중교화를 위해 학무국 산하의 사회과를 다시 내무국 산하로 옮겨 사회사업 업무와 사회교화교육 업무를 강화시켰다. 이를 위해 학무국 내에 사회교육과(社會敎育課)를 신설하였는데, 사회과 업무를 사회교육과가 계승하여 과(課)의 명칭만 변경되었다.13) 또한 이때 편집과의 업무 중 ‘민력(民曆)’이 ‘약력(略曆)’으로 개정되기도 한다.
1937년 7월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1938년 4월 국가총동원법(國家總動員法)을 공포하고 전시체제로 전환함에 따라 식민지 조선도 전쟁 수행을 위한 총동원체제(總動員體制)로 재편되었다. 일제는 조선총독부 기구를 전면적으로 재편하여 조선의 인적·물적 자원을 수탈하였고, 민족말살정책을 추진하여 우리 민족을 일본화시키려 하였다. 특히, 1938년 이후 공포된 제3차·제4차 조선교육령은 황국신민화(皇國臣民化)를 보다 철저하게 추진하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었다.
국가총동원법 제정에 앞서 1938년 1월 사회교육과 업무에 조선미술전람회(朝鮮美術展覽會)’에 관한 업무가 첨가되었고14), 1939년 2월 사회과의 업무가 조정되기도 하였다.15)
1939년 7월 1일 학무국 소관의 관측소가 기상대(氣象臺)로 개칭되었고,16) 1939년 8월 학무국 산하에 교학연수소(敎學練修所)와 중견청년수련소(中堅靑年修練所)가 설치되었다.17) 교학연구소는 조선총독부교학연수소규정(朝鮮總督府敎學練修所規定)’에 의해 교원의 강습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였고, 중견청년훈련소는 ‘조선총독부중견청년수련소규정(朝鮮總督府中堅靑年修練所規定)’에 의해 중견청년의 수련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였다. 이는 전시체제기 조선인의 인력수탈 즉, 강제연행 수행을 위한 직접적인 기초작업으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이후에도 조금씩의 업무개편이 이루어져 1939년 11월 학무과 업무에 ‘조선총독부기상대(朝鮮總督府氣象臺)’에 관한 사항이 추가되었고18), 1941년 3월 내무국 사회과 업무의 조정이 이루어졌다. 이때 사회사업 업무를 담당하였던 사회과는 사회과와 노무과(勞務課)로 개편되었다. 사회사업 업무는 그대로 사회과가 맡고, 노동력 수급에 관한 업무는 노무과가 신설되어 담당하는 체제였다.19) 또한 1941년 6월에는 학무국 학무과 업무에 교직원공제조합(敎職員共濟組合)’에 관한 사항이 추가되기도 하였다.20)

③ 1941년 태평양전쟁 이후
전시체제의 강화 속에서 1941년 11월에는 후생국(厚生局)이 신설되고 내무국(內務局)이 사정국(司政局)으로 개조되는 등 조선총독부 기구도 대대적으로 개편되었다.21)
중일전쟁이 장기화되자 태평양전쟁(太平洋戰爭)을 일으킨 일제는 1942년 11월1일 대동아성(大東亞省)을 설치하였다. 이에 따라 조선총독에 관한 규정도 바뀌는데, 조선총독의 권한이 축소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동시에 ‘행정합리화’라는 취지에 따라 후생국·기획부(企劃部)가 폐지되고 총무국(總務局)이 신설되는 등 조선총독부 기구도 개편되었다. 이때 사회교육과가 폐지되고 편집과가 연성과(練成課)와 편수과(編修課)로 개칭되는 등 학무국도 개편되었다.22) 즉, 사회교화 및 사회교육 업무를 담당했던 사회교육과가 폐지되어 그 업무가 연성과로 이속되었다. 또한 학무과 업무에 ‘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 등의 조사 및 보존에 관한 사항’이 추가되기도 하였다. 1943년 4월에는 교학연수소(敎學練修所)가 폐지되어 ‘지도자연성소(指導者鍊成所)에 관한 사항’이 연성과로 이속되었다.23)
1943년 일본 정부에 군수성(軍需省), 농상성(農商省), 운수통신성(運輸通信省)이 신설됨에 따라 1943년 12월 조선총독부 기구도 대대적으로 개편되었다.24) 종래의 총무국·사정국·식산국·농림국·철도국·전매국이 폐지되고, 광공국(鑛工局)·농상국(農商局)·교통국(交通局)이 신설되었다. 이는 식민지 조선에서 식량, 지하자원 등 물적 수탈과 징병, 징용 등 인적 수탈을 신속·원활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행정기구를 대폭 축소시킨 일원적 통합체제였다. 이때 학무국의 업무는 더욱 세분화되었으며, 사정국 사회과가 학무국으로 이속되어 학무국은 총 4개의 과(課)로 편제되었다. 특히, 사정국(司政局) 사회과가 학무국으로 다시 이속되었고, 그 담당업무는 학무국 사회과와 총독관방 지방과로 2분되었다. 즉, 군사보호(軍事保護)·구호 및 구료·주택에 관한 사항은 학무국 사회과로, 신사(神社)·도부군도읍면(道府郡島邑面)·학교비·학교조합·임시은사금(臨時恩賜金)에 관한 사항은 총독관방 지방과로 이속되었다.19) 사회과의 담당업무는 구호 및 구료, 이재구조(罹災救助), 사회복리시설, 주택, 군사보호, 제생원(濟生院) 및 감화원(感化院), 기타 사회사업에 관한 사항이었고, 노무과의 담당업무는 직업소개 기타 노무의 수급조정, 실업대책, 노동력의 보지(保持)·증강, 노동조건, 노동보호, 국민직업능력(國民職業能力)의 등록 및 국민징용(國民徵用), 기타 노무에 관한 사항이었다(「朝鮮總督府事務分掌規程(改正)」, 朝鮮總督府訓令第23號, 『朝鮮總督府官報』號外, 昭和16年(1941) 3月13日).

<표3 > 학무과·연성과·편수과·사회과의 업무 구분

인사계 업무분장 보기
학무과 연성과 편수과 사회과
  • 1. 교육, 학예(學藝)
  • 2. 교원(敎員)
  • 3. 학교 및 유치원
  • 4. 기상대
  • 5. 교직원
  • 6. 보물, 고적, 명승, 천연기념물 등의 조사 및 보존
  • 7. 국내 타과의 주관에 속하지 않는 사항
  • 1. 청소년의 훈련
  • 2. 육군병지원자 및 해군병지원자의 훈련
  • 3. 청년특별연성
  • 4. 지도자연성
  • 5. 국민연성 및 국민 근로교육
  • 6. 체위향상
  • 7. 사회교육 및 사회교화
  • 8. 종교 및 경학
  • 1. 교화용도서
  • 2. 초등보통교육에 관한 교원용 참고도서의 인정 및 추천
  • 3. 국어의 조사
  • 4. 제 학습용 방송, 영화 및 음반
  • 5. 약력의 출판 및 반포
  • 1. 군사보호
  • 2. 구호 및 구료
  • 3. 주택

국민 연성이 강화됨에 따라 1944년 11월 학무국 학무과와 연성과는 전문교육과(專門敎育課), 국민교육과(國民敎育課), 연성과(鍊成課), 교무과(敎務課)로 개편되었다.25) 즉, 학무과는 전문교육과와 국민교육과로, 연성과는 연성과와 교무과로 분리되었다.

<표4 > 전문교육과·국민교육과·연성과·교무과의 업무 구분

인사계 업무분장 보기
전문교육과 국민교육과 연성과 교무과
  • 1. 대학 및 전문학교 및 차등의 학교에 준하는 각종 학교
  • 2. 대학 및 전문학교에 부치한 교원양성기관
  • 3. 국체의 본의에 기반한 교학의 쇄신·진흥
  • 4. 학교에서의 보건위생
  • 5. 학교에서의 교련, 무도, 활공훈련 기타의 체육훈련
  • 6. 학위 및 이에 비견되는 칭호
  • 7. 기상대(氣象臺)
  • 8. 조선장학회(朝鮮·學會)
  • 9. 국내 타관의 주관에 속하지 않는 사항
  • 1. 사범학교
  • 2. 중등학교, 국민학교, 유치원 및 차등의 학교에 준하는 각종 학교
  • 3. 서당 및 학술강습회
  • 4. 국민학교 교원 및 양호훈도 시험
  • 5. 조선교직원공제조합
  • 6. 조선교육회 기타의 교육연구단체
  • 1. 청소년의 훈련
  • 2. 초등보통교육에 관한 교원용 참고도서의 인정 및 추천
  • 3. 군무예비훈련
  • 4. 국민연성 및 국민근로교육
  • 5. 체위향상
  • 1. 사회교화 및 사회교육
  • 2. 경학원 및 유림
  • 3. 종교
  • 4. 향사
  • 5. 보물, 고적, 명승, 천연기념물 등의 조사 및 보존
  • 6. 도서관, 박물관 기타의 관람시설

6개월이 지난 1945년 4월 학무국 조직은 다시 개편되어 전문교육과, 국민교육과, 편수과가 학무과로 통합되고, 원호과(援護課)가 설치되었다.26) 이는 교육의 일원적 체제를 도모하고자 한 점과 군사원호 업무의 중요성이 급상승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로 이때의 학무국 조직이 해방 때까지 계속되었다.

<표6 > 학무과·연성과·교무과·원호과·중견청년훈련소의 업무 구분

인사계 업무분장 보기
전문교육과 국민교육과 연성과 교무과 연성과 교무과 원호과 중견청년훈련소
  • 1. 교육
  • 2. 기상대
  • 3. 교직원공제조합
  • 4. 교과용 도서
  • 5. 제 학교용 가사,악보,방송,영화 및 음반
  • 6. 국내 타과의 주관에 속하지 않는 사항
  • 1. 청소년의 훈련
  • 2. 청년특별연성
  • 3. 군무예비훈련
  • 4. 국민연성 및 국민 근로교육
  • 5. 체위향상
  • 1. 사회교화 및 사회교육
  • 2. 경학원 및 유림
  • 3. 종교
  • 4. 향사
  • 5. 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 등 의 조사 및 보존
  • 6. 도서관,박물관 기타의 관람시설
  • 1. 군사보호
  • 2. 구호 및 구료
  • 3. 주택
  • 4. 사회복리
  • 5. 제생원 및 감화원
  • 6. 기타 사회사업
  • 1. 중견청년의 수련
  • 1) 「朝鮮總督府官制」, 勅令第354號, 『朝鮮總督府官報』第28號, 明治43年(1910) 9月30日.
  • 2) 「朝鮮總督府事務分掌規程」, 朝鮮總督府訓令第2號, 『朝鮮總督府官報』第29號, 明治43年(1910) 10月1日.
  • 3) 「朝鮮總督府事務分掌規程(改正)」, 朝鮮總督府訓令第27號, 『朝鮮總督府官報』第475號, 明治45年(1912) 3月30日.
  • 4) 「朝鮮總督府事務分掌規程(改正)」, 朝鮮總督府訓令第30號, 『朝鮮總督府官報』號外, 大正8年(1919) 8月20日.
  • 5) 「朝鮮總督府事務分掌規程(改正)」, 朝鮮總督府訓令第21號, 『朝鮮總督府官報』第2595號, 大正10年(1921) 4月8日.
  • 6) 「朝鮮總督府事務分掌規程(改正)」, 朝鮮總督府訓令第37號, 『朝鮮總督府官報』第2657號, 大正10年(1921) 6月20日.
  • 7) 「朝鮮總督府事務分掌規程(改正)」, 朝鮮總督府訓令第45號, 『朝鮮總督府官報』第2689號, 大正10年(1921) 7月27日).
  • 8) 「朝鮮總督府事務分掌規程(改正)」, 朝鮮總督府訓令第53號, 『朝鮮總督府官報』號外, 大正10年(1921) 10月1日.
  • 9) 「朝鮮總督府事務分掌規程(改正)」, 朝鮮總督府訓令第50號, 『朝鮮總督府官報』第3053號, 大正11年(1922) 10月13日.
  • 10) 「朝鮮總督府事務分掌規程(改正)」, 朝鮮總督府訓令第34號, 『朝鮮總督府官報』號外, 大正13年(1924) 10月25日.
  • 11) 「朝鮮總督府事務分掌規程(改正)」, 朝鮮總督府訓令第1號, 『朝鮮總督府官報』第3719號, 大正14년(1925) 1月10日.
  • 12) 「朝鮮總督府事務分掌規程(改正)」, 朝鮮總督府訓令第34號, 『朝鮮總督府官報』第1528號, 昭和7年(1932) 2月13日.
  • 13) 「朝鮮總督府事務分掌規程(改正)」, 朝鮮總督府訓令第31號, 『朝鮮總督府官報』號外, 昭和11年(1936) 10月16日.
  • 14) 「朝鮮總督府事務分掌規程(改正)」, 朝鮮總督府訓令第2號, 『朝鮮總督府官報』第3303號, 昭和13年(1938) 1月22日.
  • 15) 「朝鮮總督府事務分掌規程(改正)」, 朝鮮總督府訓令第7號, 『朝鮮總督府官報』第3614號, 昭和14年(1939) 2月7日).
  • 16) 「朝鮮總督府事務分掌規程(改正)」, 朝鮮總督府訓令第36號, 『朝鮮總督府官報』第3733號, 昭和14年(1939) 7月1日.
  • 17) 「朝鮮總督府事務分掌規程(改正)」, 朝鮮總督府訓令第45號, 『朝鮮總督府官報』第3761號, 昭和14年(1939) 8月3日.
  • 18) 「朝鮮總督府事務分掌規程(改正)」, 朝鮮總督府訓令第65號, 『朝鮮總督府官報』第3858號, 昭和14年(1939) 11月29日.
  • 20) 「朝鮮總督府事務分掌規程(改正)」, 朝鮮總督府訓令第66號, 『朝鮮總督府官報』第4307號, 昭和16年(1941) 6月4日.
  • 21) 「朝鮮總督府事務分掌規程(改正)」, 朝鮮總督府訓令第105號, 『朝鮮總督府官報』號外, 昭和16年(1941) 11月19日.
  • 22) 「朝鮮總督府事務分掌規程(改正)」, 朝鮮總督府訓令第54號, 『朝鮮總督府官報』號外, 昭和17年(1942) 11月1日.
  • 23) 「朝鮮總督府事務分掌規程(改正)」, 朝鮮總督府訓令第21號, 『朝鮮總督府官報』號外, 昭和18年(1943) 4月1日.
  • 24) 「朝鮮總督府事務分掌規程(改正)」, 朝鮮總督府訓令第884號, 『朝鮮總督府官報』號外, 昭和18年(1943) 12月1日.
  • 25) 「朝鮮總督府事務分掌規程(改正)」, 朝鮮總督府訓令第96號, 『朝鮮總督府官報』號外, 昭和19年(1944) 11月22日.
  • 26) 「朝鮮總督府事務分掌規程(改正)」, 朝鮮總督府訓令第18號, 『朝鮮總督府官報』號外, 昭和20年(1945) 4月17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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