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이재편 기록은 모두 27책이 보존되어 있는데, 조선은행을 정점으로 하여 지방의 금융조합에 이르기까지 식민지적 금융기구와 관련하여 조선총독부의 정책적 입장을 밝힐 수 있는 기록, 조선총독부의 정책적 고려에 의한 대출과정의 실태를 보여주는 기록, 금지금·화폐정리·국고사업비 관련 기록들이 포함되어 있다.
- ① 금융기구 관련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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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근대적 금융기관이 출현한 것은 일본계 은행인 제일은행이 1877년 부산에 조선지점을 설립한 것이 그 시초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인에 의한 금융기관은 전·현직 정부관료 중심으로 대조선은행소(1896), 한성은행(1897), 대한천일은행(1897) 등이 설립되었으나 1905년 이후 일제의 화폐정리사업기에 식민지적 금융체제 속으로 편입되어갔다. 1905년 1월 이후 대한제국 중앙은행 지위를 누리던 일본 제일은행 조선지점은 일본정부의 정책적 고려로 1909년 7월 대한제국의 정식 중앙은행으로서 한국은행이 설립됨과 함께 중앙은행으로서 해오던 대부분의 영업을 한국은행으로 인계하고 다시 과거와 같은 사립은행으로 전신했다.
대한제국이 식민지로 전락한 1910년 이후 한국은행은 식민지 명목에 걸맞게 1911년 2월 조선은행으로 호칭을 변경하였고 이를 전후하여 지방에는 지방금융조합과 농공은행이 설립되어 화폐정리사업과 상업금융을 관장하였다. 조선총독부는 1918년에는 기존의 농공은행들을 흡수하여 식산은행을 설립하여 금융의 합리화를 꾀하게 되지만, 조선내 금융기관의 많은 문제점들로 인하여 1920년대 후반 이후 조선의 금융기관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
여기에 포함된 기록들은 금융기관의 설립 및 구조 개선에 관한 기록들로서 식민지 조선의 금융기관을 정비해 나가는 과정들이 수록되어 있다.
- ② 금융기관 대출 실태 관련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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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포함된 기록들은 금융기관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출 업무를 영위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산미증식계획 추진과정에서 토지개량 및 농사개량 사업자금으로 자금이 대출되는 과정을 상세히 보여주는 1929년과 1931~1933년간 4년간의 문서철들이 보존되어 있기도 하다. 산미증식계획과 관련한 농업자금뿐만 아니라 중소상공업에 대한 자금 융통, 고리채 차환 자금 융통, 재해 구제 자금 융통 등 일종의 구제금융적 성격의 내용도 담고 있다는 기록이 주목된다. 따라서 단순히 자금의 흐름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흐름이 사용되는 용처를 통해서 산미증식계획 자체가 어떻게 추진되어 갔는지까지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기록들이 포함되어 있다.
- ③ 금지금·화폐·국고사업비 관련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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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과 업무 중 화폐에 관한 사항, 중앙은행이 지불준비금으로 보유해야 하는 금지금에 관한 사항, 일제가 식민지 조선에서 식민 통치를 위한 기반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1916년과 1917년에 도로·해관·철도 등 기반시설 건설에 총독부 사업비가 투입된 내용 등이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