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국가기록원에 소장되어 있는 26,000여 매의 일제강점기 건축도면들은 근대기 한국의 도시와 건축에 대한 종합적이고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해 주는 귀중한 자료 중 하나이다. 특히 19세기 말 이후 급격하게 서구의 근대 문명과 건축의 이식을 경험했던 역사적 사실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 주는 자료이며, 해방 이후 전쟁과 급격한 도시의 발달을 거치면서 사라져 버린 당시 건축물의 원형을 추적할 수 있는 직접적인 발판이 된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크다고 하겠다.
근대기에 건조된 건축물은 급격한 사회변동의 산물이었고, 한국인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서구인이나 일본인에 의해 이식되었지만, 한국의 현대 건축과 도시의 원(原) 풍경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1945년 해방 이후의 전쟁과 60~70년대에 걸친 급격한 경제개발과 도시발전은 20세기 초에 형성된 근대건축과 도시의 모습을 대부분 파괴하였고, 남아 있는 근대 건축물 또한 건립된 후 100여 년이 지나면서 많은 변형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일제에 의해 도입된 건축물로 평가절하 되면서 무분별하게 철폐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지난 상황은 한국 도시와 건축의 역사적 연속성을 상실하게 하였으며, 이를 회복하는데 있어서 국가기록원 소장의 건축도면은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즉, 이 근대건축도면들을 통해 이미 사라져 버린 근대 건축물과 도시의 상황을 상세하게 재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그동안 접근이 극히 제한되어 왔던 1906년 통감부 설치 이후부터 1910년대 식민지 통치 초기의 근대 건축물에 관한 정보가 수록되어, 그동안 단편적이고 소수의 건축물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던 근대 건축과 도시에 대한 연구가 더욱 확장될 수 있다.
소장된 도면에는 기본적으로 각종 근대 시설의 입지와 건축양식에 관한 내용을 비롯하여, 근대의 건축기술과 건축 계획 수법에 관한 다양한 정보가 수록되어 있다. 여러 매로 이루어져 있는 건축도면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건물의 원래 계획 의도부터 구조방식, 내부 공간의 활용방법, 증축의 과정 등을 알아낼 수 있다.
특히, 행정시설에 관련된 도면들은 각 지역 중심부에 세워졌던 식민통치시설의 입지와 건축 양상을 보여주고 있어, 일제강점기 도시의 모습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한편, 일제강점 초기의 행정 시설은 기존의 청사나 관아 건물을 전용한 경우가 많았고, 그에 관련된 증축 도면들을 조합하여 그 과정을 추적함으로써, 전통한옥이었던 관아건축물이 근대시설로 수선되는 과정과 양식 건물로 치환되는 과정을 자세하게 확인할 수 있다. 일부 도시의 경우, 근대 시설물들이 기존의 대형필지나 작은 필지들을 합필한 대지에 신설되는 것이 확인되는데, 이는 전통도시가 근대도시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직접적인 자료이다. 또, 일제강점기 신시가지의 원형을 추적할 수 있는 자료로서도 가치가 매우 크다.
일제강점기 당시의 건축물에 대한 양상과 도시의 모습 이외에도 근대건축도면이 보여주는 또 하나의 중요한 점은 근대기 신건축 기술의 도입과정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전통시대 대부분의 건축물은 흙과 나무를 중심으로 한 목조구법이었으나, 근대기 가는 목재를 조합하여 벽체를 구성하고 건물을 올리는 양식목조구법이 도입되어 다양한 기능의 근대시설 건립을 뒷받침하였고, 또 벽돌과 콘크리트가 사용되면서는 보다 다양한 방식의 건축 기술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재료와 건축기술의 변화 과정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은 관련 연구뿐만 아니라, 현재 남아 있는 문화재로서의 근대 건축물을 보존하는 것에도 큰 가치를 지닌다. 대표적으로, 현재 등록문화재 제18호(2002년)로 지정되어 있는 충청남도청 청사의 경우, 해방 이후 3층으로 증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지만, 국가기록원 소장의 건축도면을 통해 초기 계획 당시의 형태와 건축기술적 특징을 상세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