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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자혜의원

전주자혜의원은 1909년 8월 21일 대한제국 칙령 제75호「자혜의원관제(慈惠醫院官制)」에 의하여, 1909년 12월에 청주자혜의원과 함께 조선에 건립된 근대식 의료시설이자 최초의 자혜의원이다. 이후 1925년 4월 1일「조선도립의원관제(朝鮮道立醫院官制)」및「도립의원규정(道立醫院規程)」이 시행되면서 전라북도에서 운영하는 전라북도립전주의원으로 관제가 개편되었다. 해방 후에는 전북대학교 부속병원으로 개편되었으며, 1987년에 현재 위치(전주시 덕진구 금암동)로 신축이전하였다. 현재 국가기록원에는 전주자혜의원에 관련된 30매의 도면이 소장되어 있다.

명칭 연도 도면수
전주자혜의원(이축전) 1909.12 ~ 1922 5매
전주자혜의원(이축후) 1922 ~ 1925.03 25매

건립 당시 전주자혜의원의 배치는 1915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배치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도판1] 참조) 전주자혜의원은 남문통(南門通)과 동문통(東門通)이 만나는 도심 중앙부에 입지하였다. 남북으로 긴 병원 부지의 북동쪽에는 군청사, 동쪽에는 군수사택이 인접하였고, 서쪽과 남쪽에는 도로를 사이에 두고 경무부와 보통학교가 접하고 있다. 북쪽은 작은 민가들로 둘러싸여 있다. 전주자혜의원에는 남쪽과 북쪽에 2개의 청사가 각기 있었음이 확인된다. 북쪽의 ㄷ자형의 청사와 전면의 좌우로 긴 건물(長屋門)은 그 형태로 미루어 볼 때 기존의 한옥 건물을 개수하여 사용한 것으로 추측되며, 남쪽의 청사는 자혜의원으로 신축된 건축물로 추정된다. 청사에 비해서 병실 규모가 작은 것으로 보아 최초에는 진료 중심의 의료행정이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고, 이후 입원환자의 증대를 위해 남측 청사의 뒤편 공터에 2개 동의 병실계획이 예정하고 있다. 당시에 계획된 병실의 모습은 [도판2]에서 확인할 수 있다. 초기의 병실은 전체 크기가 30자×24자(9.0m×7.2m)에 불과하고 온돌을 두지 않은 누름대 비늘판벽의 일본식 목조건축물로 계획되어, 병실보다는 간이 숙소에 불과하였다. 이 작은 병실은 오래지 않아 크게 증축되었는데, [도판3]에서는 기존의 병실이 건물 중앙부의 재래병실을 중심으로 3배가량의 규모로 증축되는 계획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증축 부분 역시 기존과 동일하게 온돌이 없는 일본식 목조건축으로 계획되었다.

개원 이래 지속적으로 환자수가 증가함에 따라 전주자혜의원은 수차례의 증개축을 통해 병원을 확장해 오다가, 1922년경에 공사비 30만원으로 도청 동남쪽의 새로운 부지(花園町)로 이축하였으며, 1937년도 기준으로 전주자혜의원의 부지면적은 8,344평에 달하였다.

새로 이전한 전주자혜의원의 모습은 1922년에 작성된 배치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도판4] 참조) 이 배치도에서는 초기 본관 건물 1개동만이 먼저 계획되었음을 볼 수 있는데, 이 건물의 구체적인 계획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본관 건물은 지하1층, 지상2층의 규모로 계획되었는데, 층별 바닥구조로 목재장선·트러스와 철근콘크리트를 선택적으로 사용한 것이 특징적이다. 지하에는 철근콘크리트의 줄기초를 계획하였고, 1층 바닥으로는 철근콘크리트와 목재장선을 선택적으로 사용하였다.([도판5] 참조) 이에 반하여 2층 바닥은 모두 목재장선으로 구성하였고, 지붕틀은 목재트러스를 계획하였다.([도판6] 참조) 일제강점기의 관립 근대시설에서 철근콘크리트가 다수의 시설에 본격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1930년대 초로 확인되고 있는 것을 생각해 보면, 1922년 당시 지방의 시설이 ‘철근콘크리트 혼용 벽돌조’로 계획된 것은 당시 관립시설의 설계경향에 비하면 상당히 이른 시기에 도입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도판7]에서는 입면 계획을 볼 수 있다. 본관 외벽은 벽돌로 수려하게 조성되었는데 전면부 상부 중앙에는 서양식 목구조를 적용한 첨탑을 계획하였다. 첨탑의 계획안은 [도판8]에서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내부구조체는 모두 목조로 뼈대를 조성하고 동판으로 지붕을 덮었다. 첨탑의 외벽에는 목조의 뼈대 외부에 인조석(人造石)을 건식(乾式)으로 부착하고 스틸새시와 타일로 부분 장식을 가미하였다. 건물의 외벽 전면부에는 직사각형의 창문을 규칙적으로 배열하였으며, 중앙과 양단부 벽을 전면으로 돌출시키고 상부에 박공면을 계획하여 변화 있는 입면을 구성하였다. 특히 전면 중앙부에는 상부가 아치형인 창문을 계획하고, 현관부에는 전면계단과 차량용 경사로를 결합하여 권위 있는 공공건물의 양식을 반영하였다.

본관의 1층은 외과, 내과, 부인과, 소아과, 치과, 이비과, 안과, 약국, 수술실 및 원장실로 구성되었다.([도판7]참조) 각 실들은 중앙 복도로 연결되었고. 중앙계단을 비롯한 3개소의 내부 계단을 통해 층간을 이동하도록 하였다. 외부출입구는 중앙 현관을 포함하여 총 4개소에 계획되었다. 후면의 양측 단부에는 4각, 8각의 부속건물이 덧붙여졌는데, 한편에는 시료진찰용 실들을 두고, 다른 한편에는 수술실을 두어 몸체 부분의 진찰실과 구역을 구분하고 있다. 특히 8각의 수술실 부분은 L자 철제 트러스로 지붕틀을 구성하고 천정(天井)에 간유리(磨り硝子)를 깔아 건물의 다른 부분과 구분되는 상부구성을 보여주고 있다.([도판9] 참조) 이러한 계획수법은 수술실의 채광 환경을 좋게 하기 위한 방안으로 추정된다. 지하층에는 기관실, 취사실 및 식당, 그리고 각종 창고가 계획되었다.([도판10] 참조) 취사실에서 조리된 음식은 배선실의 리프트를 통하여 2층으로 운반할 수 있도록 계획하였다. [도판11]에서는 손잡이가 달린 도르래를 사용하는 리프트의 작동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지하층에서 출발한 리프트는 2층에 도착하면 리프트 박스의 상부가 누름버튼을 눌러 지하층의 벨을 울리게 하여 리프트 작동을 멈추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듬해인 1923년에는 1922년에 계획된 본관보다 더 규모가 큰 본관이 계획되었다.([도판12] 참조) 본관의 평면 형태 전체가 변경되었고, 병실과 전염병실 각 2개동, 간호부숙사와 시체실도 함께 계획되어 있다. 시체실과 소규모의 부속건물을 제외한 모든 건물들은 복도로 연결되었으며, 시체실과 전염병실은 담장으로 별도 구획되었다. 즉, 1922년과 1923년에 연속하여 의원 배치계획이 작성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1937년의 자료에서는 1923년의 계획안에 준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어, 1922년의 계획안은 당시 경향에 비하면 매우 선도적인 기술을 반영하여 계획되었으나 결국 실현되지 못하였고, 1923년의 계획안에 따라서 병원이 건립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도판]
  • 도판1. 전주자혜의원부속병실병토병기기타신축배치도/1, 1915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2. 전라북도자혜의원부속병실급토병기타신축도/2, 1909-1915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3. 전라북도자혜의원부속병실기타증축설계도/6, 1909-1915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4. 전주자혜의원건물배치도/1, 1922상세보기
  • 도판5. 전주자혜의원지형복급상복도/본8, 1922상세보기
  • 도판6. 전주자혜의원소실복급이계상복도/본9, 1922상세보기
  • 도판7. 전주자혜의원신축설계도/본1, 1922상세보기
  • 도판8. 전주자혜의원탑실상세도/본10, 1922상세보기
  • 도판9. 전주자혜의원대수술실상세도/본17, 1922상세보기
  • 도판10. 전주자혜의원신축설계도/본3, 1922상세보기
  • 도판11. 전주자혜의원계단급리프트상세도/본13, 1922상세보기
  • 도판12. 전주자혜의원신축부지배치도/28, 1923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