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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군인마산요양소

상이군인마산요양소는 1941년에 개설된 조선총독부 직속 요양소로 당시 결핵으로 제대한 일본군의 상이군인을 입원치료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1941년 3월 29일 <조선총독부상이군인요양소관제(朝鮮總督府傷痍軍人療養所官制)>가 칙령(勅令) 제313호로 공포되었고, 총독부령 제29호에 의해 그 명칭과 위치가 확정되었다. 상이군인마산요양소는 해방 이후 국립마산결핵요양소로 바뀌어 운영되다가 국립마산결핵병원을 거쳐 현재 국립마산병원에 이르고 있다. 현재 국가기록원에는 상이군인마산요양소와 관련된 168매의 도면이 소장되어 있다.

명칭 연도 도면수
상이군인마산요양소 1941.04~1945.08 168매

상이군인마산요양소는 총공사비 1,300,000원으로 1939부터 1941년까지 3년간의 사업으로 준공하였고, 당시 가장 큰 규모의 요양소로서 수백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다. 부지 28,919평과 임야 201,000평의 국유지에 병동과 본관, 강당, 주방, 기관실, 직원 관사, 간호부 기숙사 등의 부속건물을 갖추고 있었다.

초기의 모습은 [도판1]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동서로 긴 부지에 지형을 따라 건물을 배치한 계획으로 그 규모가 매우 큰 요양소이었음을 알 수 있다. 부지의 서쪽에 병동을 남향하여 배치하였고, 동쪽으로는 직원 관사와 간호부 기숙사 등을 계획하고 있다. 서쪽의 병동 부분을 보면, 세 동의 병동이 두 개의 복도로 연결되어 있고, 전면 왼쪽에 취사장과 욕실이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요양소의 계획규모가 크다 보니 전체 시설의 건립이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고 순차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실선으로 표시된 부분이 먼저 지어지게 되는데, 그 중 오른쪽으로 뻗어 나온 두터운 부분이 본관 건물이다. 본관 건물과 함께 뒤의 병동 일부, 전면의 취사장과 욕실을 우선적으로 건립하여 요양소 운영을 시작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욕실건물에 있던 기관실을 증축하게 되는데,([도판2] 참조) 이 배치도를 보면 전체 건물의 규모가 축소된 것을 알 수 있다. 3동으로 계획되었던 병동은 2동으로 축소되었고, 관사도 그 수를 줄여 계획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기관실의 증축과 함께 병동 남쪽으로 작은 통기소옥(通氣小屋)들과 식당, 힐소(詰所) 등도 함께 신축된다. [도판3]에서는 그 이후의 계획을 살펴볼 수 있다. 굵은 선으로 그려진 부분이 신축하려는 건물을 표시한 것이다. 이 계획에 앞서 본관 남쪽에 ㄱ자 평면의 애국관(愛國館)이 지어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계획도에 의하면, 병동의 계획은 [도판2]와 비교하여 대규모로 확장되었고, 그 북쪽의 새로 조성될 부지에는 전염병동이 계획되어 있다. 더불어 기존의 본관 전면에 동향한 새로운 본관을 신축하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함께 남쪽에 계획된 소옥(小屋)의 수를 늘리려는 계획도 함께 볼 수 있다. 새로운 확장 계획에 따라 북동쪽의 부지를 다시 정비하고 건물을 신축하려고 하였으나, [도판3]에서 계획된 부분도 한 번에 다 건축되지는 못하였으며, 동쪽의 병동 일부와 북쪽의 전염병동만이 먼저 신축되었다. 이후 나머지 부분에 대한 계획이 새롭게 진행되었다.([도판4] 참조) 병동 부분의 계획은 크게 바뀌지 않았으나, 신축본관의 규모는 축소되어 기존의 ㄱ자형 평면에서 ㅡ자형 평면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건물을 증축해 오던 상이군인마산요양소는 결국 일부건물의 완공을 보지 못한 채 해방을 맞이하게 되었다.

[도판5]는 본관 건물의 평면도이다. 내부는 중복도 형식으로 계획되었는데, 현관 안쪽에 약국이 위치하고, 그 오른쪽에 X광선실, 태양광실, 수술실이 있으며, 왼쪽에는 소사실(小使室)과 화장실을 배치하였다. 그 앞으로는 숙직실, 사무실, 의국 등이 위치하였다. 소사실과 숙직실 바닥에는 다다미를 설치하여 좌식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사무실 왼쪽에 상인대기실(商人溜)을 따로 두고 외부와 출입할 수 있는 문을 별도로 두었는데, 외부인과 건물 내부를 격리하기 위한 계획으로 보인다. 벽돌조 단층 건물로 지붕에는 일본식 목구조를 이용하였다. 실내 바닥은 장마루로 계획하고 현관과 단차를 둔 것이 눈에 뜨인다.([도판6] 참조) 건물의 외관에는 특별한 장식은 없고 맞배지붕으로 마감하였다.([도판7] 참조) 본관 서쪽으로는 건물과 바로 이어서 병동이 위치하고 있는데, 병동은 편복도 형식으로 계획되었다. 남쪽으로 복도를 두고 북쪽에 병실을 배치한 구조로 여느 병동에 비해 크게 다른 점은 없다.

[도판8]은 본관 북쪽의 병동 도면이다. 내부는 편복도 형식으로 계획되었고, 건물 중앙에 본관건물과 연결되는 복도를 중심으로 좌우에 병실이 배치되었다. 서쪽 끝에는 세면장과 화장실이 있고, 중앙에 간호부실과 식당이 배치되었다. 본관 건물과 마찬가지로 복도가 병실 남쪽에 있다. 병실 출입문은 일반적인 여닫이문이 아닌 미닫이문으로 계획되었는데, 복도와 면하는 벽면 전체를 문으로 계획한 점이 이례적이다. 복도 바깥쪽의 창문도 기둥과 기둥 사이를 전부 창으로 계획하였다. 병동의 외관은 본관과 같이 단순하게 계획되었다.([도판9] 참조) 이 당시 지어진 병동은 추후 뒤쪽을 증축하여 남쪽의 복도를 북쪽으로 옮기게 되었다.([도판3], [도판4] 참조)

[도판10]]은 본관 동쪽에 신축된 병동의 평면이다. 가장 큰 변화는 기존의 병동과 달리 병실이 남쪽에 면하고 북쪽으로 복도가 연결된 점이다. 채광과 난방에 불리한 북향 병실의 단점을 신축 병동에서는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병실에서 외부로 직접 나갈 수 있도록 각 병실마다 독립적인 문을 설치한 점은 매우 특징적이다. 이는 요양소의 특성상 장기간 머무르게 되는 환자를 배려하여 각각의 병실을 환자의 개인 생활 공간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병동의 외벽은 단순하게 계획되었고, 맞배지붕이 설치되었다.([도판11] 참조)

[도판12]는 신축병동 남쪽에 계획된 애국관의 도면이다. 강당과 일광욕실, 수양실(修養室), 매점 등이 계획된 건물로 재활치료, 휴식, 행사 등을 위한 공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목조 단층 건물로 강당의 대규모 무주공간을 만들기 위해 왕대공트러스를 사용하여 지붕을 설치하였다.([도판13] 참조) 다른 건물과 마찬가지로 지붕으로는 맞배지붕이 사용되었고, 강당 출입구 위에서부터 지붕까지 이어지는 긴 유리창을 두어 정면을 강조하였다. 또한, 지붕 용마루에는 덧지붕을 씌워 넓은 지붕면에 시각적 변화를 주었다. 강당 측면에는 내부 채광을 고려하여 창을 2층으로 계획하였다.([도판14] 참조)

[참고도판]
  • 도판1. 상이군인요양소전기설비공사설계도/배치도, 1939-41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2. 상이군인요양소증축전기설비공사설계도, 1939-41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3. 마산상군요배치안, 1939-41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4. 상이군인마산요양소배치도, 1939-41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5. 상이군인요양소(마산)증기난방공사기타공사설계도/소독공사부, 1939-41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6. 상이군인요양소신영공사/본관일반구계현관회리/42매내6, 1939-41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7. 상이군인요양소신영공사/본관일호병동입면건구표/42매내4, 1939-41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8. 상이군인요양소신영공사/일이호병동(반분)/평면기초복소실복/42내3, 1939-41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9. 상이군인요양소신영공사/일이호병동입면건구표/42매내5, 1939-41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10. 상이군인마산요양소신축공사설계도/병동지부/평면도/26내12, 1939-41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11. 상이군인마산요양소신축공사설계도/병동지부/자도급단면도/26내13, 1939-41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12. 마산상이군인요양소애국관신축기타공사/배치도평면도건구표/1, 1939-41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13. 마산상이군인요양소애국관신축기타공사/천전사상표/강당구계도/4, 1939-41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14. 마산상이군인요양소애국관신축기타공사/입면/2, 1939-41년 추정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