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제별 해제 > 의료 · 세관 > 의료 > 함흥자혜의원

의료

함흥자혜의원

함흥자혜의원은 전주자혜의원 및 청주자혜의원과 함께 융희 9년(1909) 8월 24일에 공포된 칙령 제75호에 의하여 최초로 개원한 3대 자혜의원 중 하나이다. 다만, 전주자혜의원과 청주자혜의원은 1909년 12월에 개원하였으나, 함흥자혜의원은 한 달 늦은 1910년 1월에 개원하였다. 이후 1925년 4월 1일「조선도립의원관제(朝鮮道立醫院官制)」및「도립의원규정(道立醫院規程)」이 시행되면서 함흥자혜의원은 조선총독부령(1925.4.1)에 의하여 함경남도립함흥의원으로 관제가 개편되었다. 현재 국가기록원에는 함흥자혜의원에 관련된 41매의 도면이 소장되어 있다.

명칭 연도 도면수
함흥자혜의원(기존) 1910.01 ~ 1919 (추정) 2매
함흥자혜의원(부지확장) 1919 (추정) ~ 1925.03 39매

함흥자혜의원은 1910년 1월 25일 함경남도 함흥부(咸興府) 본정(本町)에서 개원하였다. 당시의 배치도를 보면 도로로 둘러싸인 큰 대지에 자혜의원, 보통학교, 농공은행(農工銀行), 감옥서 및 민유지(民有地)가 연접하고 있다.([도판1] 참조)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으나, 큰 부지와 연결된 도로를 따라가면 도청, 군청, 경찰서, 수비대 등으로 연결되는 주요한 위치에 입지하였음을 알 수 있다. 다만, 부지 자체가 다른 시설들과 연접해 있는 것으로 보아 기존의 시설을 전용하여 사용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으며, [도판2]에서 볼 수 있듯이 민가로 추정할 수 있는 건물들을 병원시설로 고쳐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좁은 부지에서 운영되어 온 함흥자혜의원은 이후 대대적인 시설 확충을 시작하였다. 이전까지 감옥서, 보통학교, 민유지로 사용되었던 부지를 함흥자혜의원이 모두 차지하게 된 것이다.([도판3] 참조) 다만, 은행부지가 자혜의원으로 편입되지 않아 대지 전체를 자혜의원이 사용할 수는 없었지만, 부지의 남쪽 끝에 도로변에 정문을 두고 남북축 상에 본관 및 병실을 비롯한 건물들을 계획하였다. 초기에는 본관, 풍패전(豊沛殿), 기관실의 세 동의 건물만 계획되어 있다. 여기서 풍패전은 조선시대 함흥객사, 풍패관(豊沛館)을 가리키는 것으로 1907년 12월부터 1918년 12월까지 함흥제일공립보통학교의 교사로 사용되다가 함흥자혜의원의 시설확충 과정에서 병원시설로 전용된 것이다. 따라서, 함흥자혜의원이 부지를 확충하고 풍패전을 병원시설로 변용되는 것은 1919년으로 추정할 수 있다. [도판4]에서는 풍패전의 개축에 관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데, 객사건물의 중앙에 전체를 관통하는 복도를 설치하고 내부에 약품창고, 숙직실 그리고 간호부생도교실을 계획하였으며, 왼쪽에 부속건물로 변소를 신축하고 복도로 연결하였다. 1919년에는 본관 건물도 함께 건립되었다. [도판5]의 본관 계획안을 보면, 본관은 건물의 중앙부만 2층으로 구성된 부분 2층 건물로 계획되었다. 2층에는 원장실, 서무실, 도서실, 회의실 등이 배치되었고, 1층에는 외래환자를 위한 각 실들이 배치되었다. 건물 왼쪽으로 별도 공간으로 구획된 시료진료부가 연접되었기 때문에 건물의 현관은 우측으로 일부 치우치게 되었다. 1층 전면에는 세 개의 출입구를 두었는데, 가장 오른쪽에 주 현관을 두고 그 왼쪽에는 환자출입구를 별도로 두었다. 그리고 가장 좌측에는 진료비를 내지 못하는 시료환자(施療患者)를 위한 출입구가 마련되어 있는데, 건물 후면의 변소까지도 시료환자와 수납환자를 구분하여 사용토록 한 점이 눈에 띈다. 진료실은 안과, 이비과, 내과, 소아과, 부인과, 치과, 외과로 구분되었고, 각 실들은 중앙 복도 양편에 나란히 배치되었다. 건물 후면에 배치된 방들 중에는 수술실이 포함되어 있는데, 지붕의 일부를 유리(槢硝子)를 사용한 천창으로 구성하여 수술실 내부에 채광이 되도록 계획한 점이 특징적이다.([도판6] 참조)

이후에도 초기 세 개 동의 건물 외에 병실, 간호부기숙사 등의 건물을 추가로 건립하였는데, 전체적인 배치의 형태는 [도판7]에서 살펴볼 수 있다. 모든 건물들은 좌우로 긴 형태를 하고 있으며, 남향하여 줄지어 배치되었다. 대부분의 건물들은 본관의 배면 및 후면과 복도로 연결되었다. 본관과 풍패관 뒤로는 1,2등병실과 3등병실이 두 개의 건물로 계획되어 있고, 3등병실 왼쪽으로는 간호부기숙사가 복도로 연결되었다. 간호부기숙사는 2층의 건물로 계획되어 단층의 병실과는 차이를 보임과 동시에 본관에 버금가는 높이를 보여주고 있다.([도판8] 참조) 기숙사 각 층의 내부에는 후면에 복도를 두고 중앙의 계단으로 이동하도록 하였는데, 계단 양쪽으로는 큰 방 한 개씩을 계획하여 단체로 사용하도록 한 점이 특징적이다. 간호병실과 3등병실 뒤쪽으로는 우측에서부터 시료병실, 기관실, 창고와 취사장이 배치되어 있다. 시료병실 뒤쪽의 가장 북쪽 부분에는 담장 또는 철조망으로 구획된 병실 1개동이 계획되었는데 그 계획형태로 보아 전염병실로 추정된다.

[참고도판]
  • 도판1. 자혜의원급부근도/3, 1910~1919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2. 함경남도자혜의원병실이전모양체급욕실변소도랑하신축설계도/4, 1910~1919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3. 함흥자혜의원부지지균평면도/30, 1919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4. 함흥자혜의원풍패전모양체기타공사설계도/풍패전모양체부/22, 1919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5. 함흥자혜의원증기난방장치지도/2, 1919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6. 함흥자혜의원수술실천정명취변경도/25, 1919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7. 함흥자혜의원제2기급수공사설계도/8, 1919~1934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8. 함흥자혜의원강호부기숙사기타신축설계도9/14, 1919년 추정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