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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자혜의원

소록도자혜의원은 한센병 전문기관인 국립소록도병원의 전신으로 1916년 2월 24일 조선총독부령 제7호에 의해 설립된 나환자 전문병원이다. 관립 자혜의원은 1909년 그 관제가 공포되었으나, 1909년 12월에는 청주와 전주에만 설치가 되었고, 1910년 1월에 함흥에 설치되었다. 1910년 한일병합 이후인 동년 9월에는 나머지 10개도에 설치가 되었으며, 1912년에는 강원도(강릉), 함경북도(회령), 전라남도(제주), 경상북도(안동), 평안북도(초산)에 하나씩의 자혜의원이 더 설립되어, 모두 18개의 자혜의원이 운영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16년 마지막으로 설치된 관립 자혜의원이 소록도자혜의원이며, 다른 자혜의원과 달리 초기부터 나환자 전문병원으로 설립된 것이 특징적이라 할 수 있다. 현재 국가기록원에는 소록도자혜의원과 관련된 도면이 모두 60매 소장되어 있으며, 그 내역은 다음과 같다.

명칭 연도 도면수
(관립)소록도자혜의원 1916.02 ~ 1925.03 18
(도립)소록도자혜의원 1925.04 ~ 1934.08 42
소록도 갱생원 1934.09 ~ 1945.08 -

현재 소장되어 있는 도면은 크게 2시기의 것이다. 1916년 개설 이후 초기 단계의 공사도면이 18매이며 이들 도면에는 작성연도가 기재되어 있지 않다. 나머지는 1927년과 1928년에 의원을 크게 확장하면서 생산된 도면으로 모두 작성연도가 기재되어 있으며, 42매가 소장되어 있다. 특히 이들 도면은 소록도자혜의원이 1925년 도립으로 이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건축도면의 관리는 조선총독부 건축기구에서 담당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이후의 도면이 같이 소장되어 있지 않은 것은 1930년대에 전라남도 소속의 건축기구로 건축생산활동이 이관되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소록도자혜의원은 1925년 4월 1일 칙령 제85호로 지방관관제가 개정되면서, 소록도자혜의원도 전라남도 소속으로 전환되었다. 이후, 1928년까지 수용 환자 정원을 기존 250명에서 450명으로 증원키로 하고, 기존의 북병사(北病舍)에 병사 27동과 예배당 등 부속 건물을 증축하여 환자를 추가로 수용하였다. 1929년에는 부지를 추가 매수하여 병사 22동과 진료소, 예배당 등의 부속 건물을 추가로 신축하여 남병사(南病舍)라 칭하였다. 이 시기 소록도자혜의원의 수용환자 수는 모두 735명에 달하였고, 부지 총면적은 348,983평에 연건평 2,064평이었다.

1934년 9월 14일에는「조선총독부나요양소관제」가 제정되고「조선총독부지방관제」가 개정되면서 소록도자혜의원은 폐지되고, 기존의 시설은 소록도 갱생원(更生園)으로 확대 개편되게 되었다. 1935년 4월에는 칙령 제4호로「조선나예방령」이 공포되면서 나환자의 강제수용이 시작되었고, 1936~37년과 1939년에 각각 대규모의 확장공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소록도자혜의원 개설 당시의 모습으로 추정되는 도면이 [도판1]이다. 복쪽 해안 쪽에 관사들이 배치되어 있으며, 그 아래쪽으로 사무실, 진료소, 부속시설, 병사(病舍)가 순차적으로 위치하고 있다. 사무실과 진료소 사이는 철조망으로 구획되어 있었다. 당시 건물들은 매우 단순하게 설계되었다. [도판2]는 사무실의 설계도이다. 사무실은 누름대비늘판벽으로 마감된 양풍 단층 목조건물로 설계되었으며, 내부에는 원장실, 사무실, 건강자 진료실(健康者診療室), 약국 제제실(藥局製劑室)만이 계획된 매우 기능적인 건물이었다. 이러한 특징은 진료소의 설계도에서도 동일하게 확인된다.([도판4] 참조) 하지만, [도판1]에서 확인되는 소록도자혜의원의 배치 현황은 이후 시기의 배치 형태([도판4], [도판6] 참조)와는 완전히 달라 1910년대 후반에서 1920년대 중반 사이에 대규모의 이축(移築)이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국가기록원에 소장된 상세 배치도를 통해 소록도자혜의원의 1920년대 후반의 모습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도판4]는 ‘소록도자혜의원건물배치도 / 27호’로 1927년에 작성된 것이다. 지도에서 보이는 지역은 현재의 소록리 지역으로 1916년 소록도자혜의원이 설치될 당시 가장 먼저 개발된 지역이다. 전술한 것처럼, [도판1]에서 보이는 건물의 배치는 찾아볼 수 없다. 도면에는 현재건물은 격자로, 1928년도(昭和三) 신축예정 건물은 색칠한 격자로 표시되어 있다. 1927년 당시 현황을 먼저 살펴보면, 남쪽의 해안선 근처에 관사 및 숙사가 군집을 이루고 있고, 그 북쪽에 병사(病舍)들이 위치하며, 병사와 관사 사이에 진료소, 예배당, 제독소, 창고 등이 배치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남(男)병사와 여(女)병사는 따로 떨어져 있었으며, 각 병사는 군집을 이루고 있었으나, 전염병사(傳染病舍)는 외곽에 별도로 계획되어 있었다. 1928년 수용인원을 증원하면서, 북병사 지역에도 대규모 신축공사가 수행되었는데, 기존 병사 지역의 북동쪽에 대규모의 남병사들을 계획하였고, 여병사 지역에도 건물을 추가로 계획하였다. 관사 지역에도 일부 건물이 더 계획되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수용 인원의 증가와 더불어 관리직원들도 증원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도판5][도판4]]와 같은 해에 작성된 도면으로 건물 외에 전답(田畓)등도 같이 표시되어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동시에 현재 남생리 지역에 토지를 추가 매수하여 의원을 대규모로 확장하였다. [도판6][도판4]에서 보이는 지역의 남쪽 지역이다. 관사 지역의 남쪽으로 멀리 떨어진 지역에 대규모로 병사와 부속 시설들이 계획되었음을 볼 수 있다. 또, 관사 지역과 병사 지역은 철조망으로 구획되어 있었음도 확인된다. 병사지역은 북병사(北病舍)와 유사한 구조로 계획되었다. 관사 지역과 가까운 곳에 진료소, 예배당 등의 부속시설이 배치되었고, 그 바깥쪽으로 남(男)병사와 여(女)병사가 계획되었다. 초기 각 병사들은 동서방향으로 배치되었는데, 이는 곧 남북방향으로 변경되었다.([도판7] 참조)

이 시기에도 각 건물들은 양풍 목조구법으로 매우 단순하게 설계되었다. [도판8]은 남병사 지역에 신축된 진료소의 도면이다. 이전 시기의 진료소([도판3] 참조)보다는 조금 규모가 커졌지만, 입면이 누름대비늘판벽으로 단순하게 마감되고, 내부 역시 매우 기능적으로 계획되어 있는 점은 동일하다. 병사 역시 마찬가지로, 병사는 2실이나 3실의 연립형태에 난방과 취사를 위한 부엌이 덧붙는 형태로 설계되었다. 각 방에는 온돌(溫突)이 시설되었으며, 입면의 형태는 양풍이 아닌 한식(韓式)과 유사하게 계획되어 있는 점이 특징적이다.([도판9] 참조) 이 시기에 사무소 또한 증축되었다. 사무소는 [도판2]의 건물을 이축하여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부속가(附屬家)가 있었던 부분을 대규모로 확장하는 공사가 시행되었다. 증축된 부분 또한 원래 건물과 마찬가지로 누름대비늘판벽을 활용한 매우 단순한 건물로 계획되었다.([도판10] 참조)

[참고도판]
  • 도판1. 소록도자혜의원사무실기타신축부지지균공사 / 22, 1916-20 추정상세보기
  • 도판2. 소록도자혜의원사무실급부속가신축공사설계도 / 1, 1916-20 추정상세보기
  • 도판3. 소록도자혜의원진료소급부속가신축공사설계도 / 2, 1916-20 추정상세보기
  • 도판4. 소록도자혜의원건물배치도 / 27호, 1927상세보기
  • 도판5. 소록도자혜의원병사기타신축공사배치도 / 1, 1927상세보기
  • 도판6. 소록도자혜의원병사기타신축공사배치도 / 1, 1927상세보기
  • 도판7. 소록도자혜의원병사관사기타신축공사배치변경도 / 병사지부 (변경설계도) / 21, 1927상세보기
  • 도판8. 소록도자혜의원진료소신축설계도 2 / 제16-3호, 1927상세보기
  • 도판9. 소록도자혜의원각병실신축설계도 3 / 제16-4호, 1927상세보기
  • 도판10. 소록도자혜의원사무실증축공사배치도 / 평면,건면상세도 / 19, 1927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