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드컵 준비 > 대회 유치 과정 > 유치위원회 출범

유치위원회 출범

유치위원회 결성

“나는 21세기의 첫 월드컵 축제는 아시아에 마련하고 싶다.” 이렇게 말한 사람은 1980년대 당시의 FIFA 회장 아벨란제(Dr. João Havelange)였다. 1986년 멕시코 대회 때, 그는 2002년 대회는 유럽이나 남미가 아닌 아시아에서 개최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한 것이다. 1974년 이래 장기간 FIFA 회장직을 수행해왔으며, 국제 스포츠계의 명사인 그의 이 같은 의사 표시는 국제 축구계에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다.

아벨란제 FIFA 회장은 평소 일본에 대해 상당한 호감을 가지고 있었고, 일본을 잘 아는 인사로 알려져 있었다. 그는 일본이 세계의 손꼽는 경제대국이기에, 월드컵을 능히 개최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일본은 1989년 12월, FIFA 월드컵 유치 의사를 공식적으로 표명했으며, 이듬해 6월에는 유치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이렇게 해서 일본의 월드컵 유치 활동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될 것처럼 보였다.

한편 일본의 월드컵 유치 활동이 차츰 본 궤도에 오르고 있을 때, 한국인들은 지난해에 있었던 88서울올림픽의 큰 성공에 대한 자부심과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의 선망과 우호적 눈빛을 받아 매우 고무적인 상태에 있었다. 한국은 남북으로 분단된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이데올로기 문제로 반쪽 올림픽이 된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과 1984년 LA올림픽과는 달리, 러시아와 동구권 국가들이 대거 참여한, ‘온전한 세계 축제’를 이룰 수 있었다. 그뿐 아니라, 재정적인 면에서도 역대 올림픽에 비해 가장 성과가 좋은 올림픽이라는 평가를 얻었다. 따라서 새로이 지니게 된 자신감과 자부심은 월드컵 유치라는 새로운 목표 설정에 다가서게 했다고 할 수 있다.

“축구에 관한 한, 우리가 아시아의 최강자이다.”

이 같은 자부심은 축구인 들은 물론 일반 국민들이 갖고 있는 자부심이었다. 따라서 새로이 지니게 된 자신감과 자부심은 월드컵 유치라는 새로운 목표 설정에 다가서게 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대회 유치 발전이 공식 석상에서 맨 처음으로 나온 것은 1989년 8월8일 국민체육진흥공단의 업무보고회에서였다. 그리고 그것은 곧 여러 사람의 공감을 얻었다.

“월드컵은 우리가 개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같은 공감대 위에서 정부는 대한축구협회로 하여금 개최 가능성을 검토하도록 했다.

한편 1990년 들어 한국의 대회 개최에 약간이나마 고무적인 신호가 FIFA측의 인사들로부터 나왔다. 1990년 2월 15일 아시아 축구연맹(AFC)의 함자 회장이 내한하였을 때 “한국이 개최를 희망하는 아시아 여러 나라 가운데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발언을 한 것이었다. 그리고 1990년 5월 31일 아벨란제 FIFA회장이 “2002년 월드컵 개최국으로는 통일 한국이 되기를 희망 한다.”라는 견해를 밝혔다. 평소 그의 축구 외교가 세계의 분쟁 해소와 평화 발전에 기여하기를 원하는 태도의 한 면을 엿볼 수 있는 발언이었다. 이런 흐름은 한국인들에게는 고무적인 메시지로 받아들여졌다. 1990년 6월1일 당시 김우중 대한축구협회장은 2002년 월드컵 유치 의사 표명을 담은 서한을 FIFA에 보냈고, 6월 9일 FIFA는 그 의견을 접수했다는 회신(당시 블래터 사무총장 명의)을 보내왔다.

2002년월드컵축구대회조직 위원회,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공식보고서(2003)

2002년월드컵축구대회조직 위원회,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공식보고서(2003)

1991년 6월 25일 체육청소년부는 대한체육회 및 축구협회 관계자들을 초청하여 대회 유치 문제를 논의했다. 그러나 그 이후 대회 유치 논의는 경기장 건설 등 여러 부문의 재정 부담이 큰데 비해 재원확보가 어렵다는 이유로 하여 상당기간 유보되고 있었다.

1993년 2월 취임한 김영삼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 공약으로 2002 FIFA 월드컵™ 을 유치하겠다고 밝힌 적이 있었다. FIFA 월드컵 개최가 국위 선양과 국민 생활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크다는 사실을 인식한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 직후 대회 유치를 적극 추진하라고 내각에 지시하였다.

정몽준 회장은 1993년 6월 1일 FIFA에 월드컵 유치 의사를 밝힌 서한을 다시 한 번 보냈다.

2002년월드컵축구대회조직 위원회,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공식보고서(2003)

2002년월드컵축구대회조직 위원회,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공식보고서(2003)

이때 월드컵의 유치에 전에 없던 새로운 시각의 접근이 있었다. 한국의 분단 상황을 유치의 마이너스 요인이 아니라 플러스 요인으로 바꾸어 활용하자는 의견이었다. 먼저, 한국이 북한을 설득하여 그들과 함께 월드컵 유치를 추진하면 그것은 남북 간의 긴장 완화는 물론 국제 사회에 평화 무드를 준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다음으로 북한이 동조하지 않고 한국이 단독으로 개최하게 됐을 때 우리가 북한을 설득하여 남북 공동 개최를 추진한다면, 이것 역시 남·북의 화해에 큰 도움이 될 것이고 국제 사회에서도 환영할 일이 될 것이다. 남북한이 국제 사회의 주목을 받으며 월드컵을 공동 개최한다면, 그것은 한반도의 평화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스포츠를 통해서 세계 평화를 구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입증해주는 일이 될 것이다.

2002년월드컵유치관련업무담당(1993), DA0139895

2002년월드컵유치
관련업무담당(1993), DA0139895

마침내 1993년 12월 13일, 대한축구협회 정몽준 회장은 기자들 앞에서 공식적으로, 2002년 대회를 유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정회장의 대회 유치 발언은 국내외에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우선 한국에서는 성공적 올림픽 개최 경험을 살리면 능히 감당할 수 있다는 찬성 의견과, 한국 축구의 현실로 보아서는 월드컵 개최가 과욕이라는 의견으로 엇갈리고 있었다. 한국 축구가 아시아 최강이라는 자부심에도 불구하고, 월드컵 16강에 오른 적이 아직 한 차례도 없는 빈곤한 성적 때문이었다.

만일 개최국으로 결정된다면 본선 진출권은 자동으로 확보하겠지만, 유럽이나 남미의 막강한 팀들과 대등한 경기를 벌일 수 있어야 개최국의 면목이 서지 않겠는가.

또 이미 유치 활동을 활발히 벌이고 있는 일본과 경합하여 이길 승산이 희박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2002년 월드컵대회 유치에는 88서울올림픽 유치 때와 비슷한 측면이 있었다. 첫째, 그것은 일본이 한국의 강력한 경쟁 상대라는 점이다. 둘째, 88서울 올림픽 유치 때 일본의 나고야시(なごやし)가 선발 주자로 앞서가고 있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일본의 월드컵 유치 활동은 앞서가고 있다는 점이 그러했다. 이런 사정에 비춰볼 때 FIFA 월드컵 유치에서도 다시 한번 일본을 따라 잡는 것이 전혀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았다.

유치위원회 집행위원회 회의안건 및 보고사항(1994), DA0139907

유치위원회 집행위원회 회의안건
및 보고사항(1994), DA0139907

한국의 월드컵 유치 활동이 공식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한 것은 1994년 1월 18일 유치위원회의 발기위원회가 열리면서 부터였다. 스포츠(축구) 분야를 비롯하여 재계 · 학계 · 언론계 등 각계의 원로와 지도적 인사들로 결성된 발기위원회는 2002 FIFA 월드컵™ 유치를 위한 첫 공식모임이었다. 이홍구 평화통일자문회의 부의장을 위원장으로 선출한 이날의 발기위원회는 골격의 변동이 없이 2개월 뒤 발족한 유치위원회로 이어졌다.

위원들의 면면도 거의 변동 없이 유치위원회는 1994년 3월 15일 발족하였다. 공식 명칭은 재단법인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유치위원회’이며, 외국에 대하여는 The Bidding Commitee for the 2002 FIFA World Cup Korea(약칭: KOBID)로 표시하기로 했다.

대한축구협회장 FIFA 부회장 당선

유치위원회가 중요한 책무를 떠맡고 출범하였을 때, 월드컵 유치 활동의 또 하나의 축이 되어야 할 대한축구협회는 하나의 중요한 계기를 맞았다. 정몽준 회장이 FIFA의 아시아축구연맹(AFC)에서 선출하는 FIFA 부회장 선거에 출마했기 때문이었다. FIFA 부회장이 되면 우선 개최지 결정 때 소중한 한표를 행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FIFA의 집행위원들과 수시로 자유로운 접촉이 가능해지므로 대회 유치 활동에 매우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는 셈이 된다.

선거는 1994년 5월 13일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말레이시아의 수도 : Kuala Lumpur)에서 실시되었다. 선거 결과 한표 차이로 정몽준 회장이 당선됐다. 정몽준 회장의 FIFA 부회장 당선은 대회 유치 활동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