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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준비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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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준비기구

월드컵 대회는 FIFA가 주최자로서 대회 준비와 운영을 총괄하며, 개최국 조직위원회가 FIFA를 대리하여, 각 개최 도시와 유기적 관계를 가지고 실질적인 대회 개최 준비와 운영 활동을 한다.

그러나 이 기본 골격만 가지고는 대회의 원활한 준비를 기대하기 어려운 측면이 크다. 월드컵 대회 같은 이른바 메가 스포츠 이벤트는 일정한 기간에 방대한 인력과 투자를 요구한다. 이 속에는 각 분야의 수준 높은 전문 인력과 사회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포함된다. 그런 만큼 중앙 정부와 지방 자치 단체 그리고 축구협회를 포함한 민간 기구의 폭넓은 참여와 지원이 요구된다.

한국은 정부가 대회 유치 단계에서부터 유치위원회의 조직과 활동을 적극 지원하였으며, 이어서 조직위원회의 조직과 활동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조직위원회는 대외적으로 FIFA와 일본 조직위윈회와 협의 및 협력 관계를 유지하며 대내적으로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축구협회 등 민간 기구와 긴밀한 협력 속에 대회준비업무를 수행하였다.

조직위원회(KOWOC)

제17회 월드컵축구대회지원법제정안(1996), DA0140184

제17회 월드컵축구대회
지원법제정안(1996), DA0140184

한국이 일본과 함께 2002 FIFA 월드컵™의 공동 개최국으로 선정되자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친 유치위원회는 6월 14일 제 7차 임시위원총회를 열고 해산을 결의하였으며, 6월 30일 해산되었다.

이후 1996년 12월 30일 민법 제 32조에 의해 대회조직위원회가 창립되었다. 발기인 57명 중 42명이 참가한 이 회의는 한국경영자총협회 이동찬 회장을 위원장으로 선출하고, 최창신 문화체육부 차관보를 사무총장으로 선임했다.

마침내 1월 20일에 조직위원회의 정관이 제정되었다. 정관은 조직위원회의 정식 명칭을 재단법인 2002년월드컵축구대회조직위원회로, 외국에 대하여는 영문으로 The Korean Organizing Commitee for the 2002 FIFA World Cup Korea/Japan(약칭:KOWOC)으로 결정 하였다. 약칭을 ‘KOWOC’로 한 것에는 ‘함께 일한다’는 뜻의 영문 ‘co-work'와 발음을 유사하게 하려는 의도가 들어 있었다. 곧, 관련기관들의 협동, 온 국민의 참여 그리고 한일 두 나라의 협력을 시사 하는 것이었다. 조직위원회는 주로 한국에서 활동했지만, 한국에서 FIFA를 대리한다는 성격과 공동 개최국인 일본조직위원회와의 협동 관계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국제성을 띠는 조직체이다.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준비기본계획(시안)(1998), DA0140718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 준비기본계획
(시안)(1998), DA0140718

조직위원회는 2002년 1월 14일까지 모두 15차례 직제규정을 개정하고, 그에 근거하여 직제를 변경하고 필요 인력을 충원했다.

조직위원회는 대회 개최를 3년 반 앞둔 1998년 12월 ‘2002년월드컵축구대회준비기본계획’을 수립하였다. 대회 업무를 10개 분야, 33개 단위 사업, 184개 개별 사업으로 분류한 이 기본 계획은 조직위원회의 방대한 사업 수행의 기초가 되었다. 이러한 기본 계획에는 한국에서 치르게 되어 있는 본선 조 추첨, FIFA 총회, 개막식, 문화 행사 같은 FIFA의 주요 행사와 경기 운영 계획 및 각종 수익 사업의 기본 계획이 포함되었다. 이러한 기본계획에 따라 1999년 12월 ‘분야별 세부 계획’을 만들었고, 대회 개막을 1년 반 앞둔 2000년 12월에는 ‘현장 운영 계획(Venue Operation Plan)’ 을 만들었다.

정부

2002 FIFA 월드컵™의 성공을 위하여 정부는 모든 부서가 총리실을 중심으로 협의 체제를 갖추고 대회 준비를 지원하였다. 정부는 안전 · 교통 · 숙박 · 환경 · 출입국 · 홍보 등 대회 준비 전 분야에 걸쳐 여건을 조성하고 조직위원회 활동을 지원하였으며, 조직위원회는 이 같은 정부 지원에 힘입어 대회의 완벽한 운영에 전념할 수 있었다.

정부의 폭넓고 적극적인 지원은 월드컵 개최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바탕이 된 것이지만 거기에는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국가 발전의 전기를 마련하자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

안전하고 완벽한 대회 개최
9·11 미국 테러 사건 이후 세계 각국이 테러의 위협을 느낌에 따라 안전에 대한 대내외의 우려를 씻어내고 만약의 불상사를 철저히 예방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결과적으로 완벽한 대회를 일궈냈다.
국가 이미지 제고
대회를 통해 국제 사회에 ‘IT 강국’ 이미지와 ‘문화 한국’ 이미지를 핵심으로 하여 한국의 국가 이미지를 확고히 구축하고자 하였다. 개막식 행사를 비롯하여 서울과 각 개최 도시에서 열린 80여 개의 문화 행사가‘IT 강국’이미지와‘문화 한국’이미지를 강력히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 기획 추진되었다.
경제 효과 극대화
한국개발연구원에 의뢰해 대회 개최의 예상 경제 효과를 분석하고,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추진하였다.
지방의 세계화
서울 외에도 대규모 국제 대회를 치를 수 있는 도시가 9개나 더 있음을 국제 사회에 각인시키고, 앞으로 이 도시들을 중심으로 지방의 세계화에 박차를 가한다는 전략을 추진하였다.
대회 참가국들과의 우호 증진
대회 개막식에 각국 정상을 포함한 귀빈들을 초청하고, 이를 통해 적극적으로 외교 활동을 벌였다.

정부의 월드컵 지원체제는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지원법과 그 시행령 및 시행 규칙에 근거를 두고 있다. 또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 및 제 14회부산아시아경기대회 정부지원규정(총리 훈령 제 385호)도 그 근거가 된다.

1999년 6월 10일에 열린 관계 장관회의 에서 16개 부처가 성공적인 대회 개최를 위한 지원 계획을 확정하였고, 2000년 4월 19일 열린 실무대책협의회에서는 문화 · 교통 · 안전 등 분야별 세부 계획을 확정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정부 각 부처에서는 자체적으로 대회 준비와 관련된 계획을 수립·추진하였으며 국무조정실에서는 각 부처별 추진 상황을 점검함과 아울러 정부 지원이 필요한 사항을 자체적으로 발굴하여 적극 지원하였다.

개최도시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 개최도시선정계획(안)(1997), DA0140219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 개최도시
선정계획(안)(1997), DA0140219

한국 정부가 1993년 3월 대회 유치 방침을 확정한 이후 유치 활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던 시기인 1994년 가을 각 개최 도시들은 정부에 대회 유치 의사를 밝혔으며, 이어서 1995년에는 각 개최 도시별로 유치위원회를 구성했다. 각 도시별 유치위원회는 1996년 5월 31일 한일 공동 개최가 결정된데 따라 조직위원회가 1997년 12월 10개 개최 도시를 선정하기까지 활발하게 유치 활동을 펼쳤다.

각 개최도시들은 대회 준비를 위해 부시장을 단장으로 한 일정한 형태의 ‘추진단’을 구성하여 준비 기본 계획을 수립하고 경기장 건설을 추진하였다. 이후 준비 업무 각 부문별 세부 계획을 수립·추진하여 FIFA 및 조직위원회에 협력하여 경기 진행을 도와 성공적인 월드컵 개최에 일조하였다.

국회

2002년월드컵축구대회조직 위원회,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공식보고서(2003)

2002년월드컵축구대회조직 위원회,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공식보고서(2003)

한국의 월드컵 유치 활동이 한창 무르익을 때 국회는 강력한 지지 의사를 표명하였다. 제 170회 정기 국회에서 국회 본회의는 출석의원 전원 찬성으로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 유치를 지지하는 결의문’을 통과시켰던 것이다. 이어서 국회는 1995년 11월 7일 제 177회 국회 정기회 제 11차 본회의에서 국회법 제 44조의 규정에 의해서 하나의 특별 위원회를 만들었다. ‘국제경기대회지원특별위원회’가 그것이다.

국제경기대회지원특별위원회는 이후 ‘2002년월드컵등국제경기대회지원특별위원회’로 변경되었다. 이후 국회는 1996년 12월 13일, 「2002년월드컵축구대회지원법」(법률 제 5278호)을 제정하였으며(1998년, 1999년, 2000년에 걸쳐 다섯차례 개정), 이 법률에 의거해서「2002년월드컵축구대회지원법시행령」(1997.5.6 제정)과 「2002년월드컵축구대회지원법시행규칙」(1997.6.23 제정)이 만들어졌다.

대한축구협회

2002년월드컵축구대회조직 위원회,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공식보고서(2003)

2002년월드컵축구대회조직 위원회,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공식보고서(2003)

축구협회는 정부의 필승대책위원회(위원장 : 문화관광부 차관보)와 적극 협의하여 2001년 11월, 경기도 파주시에 국가대표팀 전용 트레이닝 센터인 NFC(National Football Center)를 건립함으로써 축구 기술의 실질적 발전 기틀을 마련하였다.

한편 한국 대표팀 감독에 네덜란드의 거스 히딩크를 영입함으로써 축구 대표팀에 새로운 변화의 기회를 갖게 했다. 히딩크 감독은 단시일에 대표 선수들의 기초 체력을 집중적으로 강화한 훈련 방식과 압박 전술 훈련 등은 많은 긍정적 평가를 받기에 이르렀으며, 실제 경기에서 그의 용병술은 많은 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히딩크 감독과 한국 대표팀의 선전은 월드컵대회 4강 효과 외에 한국 사회에 히딩크식 경영방법론 등의 충격 효과를 가져왔다.

대한축구협회

이사회개최 계획통보(1997), DA0141019

이사회개최 계획통보(1997), DA0141019

한국 사회에서 시민들의 자원 봉사 활동은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활성화 되었으며 2002 FIFA 월드컵™은 그 시민운동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고,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정부와 조직위원회는 시민운동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시민운동의 조직화를 시도했으며, 그 같은 시도가 ‘월드컵문화시민운동중앙협의회’ 출범으로 나타났다.

협의회는 자칫하면 막연하고 추상적인 분위기에 잠길 우려가 있는 시민운동을 체계화하기 위해 힘을 기울였으며, 친절 · 질서 · 청결 등 공동체적 시민 의식을 기르고 이를 범국민 실천 운동으로 정착시키는 데 운동의 목표를 두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문화시민운동을 3단계로 나누어 추진하였다.

문화시민운동의 제1단계(1997∼2001)는 2002 FIFA 월드컵™을 위한 준비 단계이며, 제2단계(2002년)는 대회 개최 기간을 중심으로 한 본 단계이다. 그런데 이 운동의 참된 의의는 2002년의 제2단계와 함께 종료되는 것이 아니라 제3단계(2003년)로의 상승과 연속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성숙된 사회가 갖는 이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성숙한 사회의 시민은 문화적인 소양과 감수성을 갖는 시민이기를 소망하게 된다. 그리하여 여기서 ‘문화 + 시민 = 문화시민’이라는 하나의 도식을 생각해볼 수 있다.

FIFA 및 JAWOC과의 협력 시스템

2002 FIFA 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대외 협력은 그 어느 분야 못지않게 중요하였다. 대외 협력 분야가 중요했던 이유는 무엇보다 FIFA 월드컵이 개최국만의 행사가 아니라 FIFA의 행사라는 점과 역사상 최초의 공동 개최라는 사실에 있었다.

2002년월드컵축구대회조직 위원회,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공식보고서(2003)

2002년월드컵축구대회조직 위원회,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공식보고서(2003)

그러나 현지 사정에 차이가 많은 두 나라가 하나의 대회를 개최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나의 대회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동일한 규격의 경기장은 물론 동일한 명칭과 상징물의 사용, 동일한 대회 운영 체제의 수립 등 수많은 문제들이 사전에 토의되어야 하고 합의되어야 했다. 이러한 문제들은 2002 FIFA 월드컵™ 조직위원회 회의, 3자사무총장회의, 한일 사무총장회의에서 논의되었으며 합의가 이루어졌다.

또한 FIFA는 이번 대회에 새로운 제도의 도입을 시도하였는데, 사상 최초의 공동 개최라는 대회 특성에 맞추어 FIFA로서도 역대 어느 대회와는 다른 형태의 새로운 마케팅 · 입장권 · 숙박 제도의 도입을 시도하였다. 따라서 2002 FIFA 월드컵™은 개최 국가에게는 물론 FIFA나 FIFA 월드컵의 공식 파트너 같은 다른 주요 구성 그룹들에게도 정확한 전례를 찾기 어려운 새로운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