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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형

인천소년형무소

일제강점기 개성과 김천, 인천에는 소년형무소가 설치되어 있었다. 이중 인천의 소년형무소는 가장 늦은 1936년 7월 신설되었으며, 현재 국가기록원에는 관련된 도면 53매가 소장되어 있고 그 내역은 다음의 표와 같다.

명칭 연도 도면수
인천소년형무소 1936.07 - 1945.08 53

인천소년형무소는 조선총독부령 제52호에 의거하여 1936년 7월 부천군(富川郡) 문학면(文鶴面) 학익리(鶴翼里) (현 인천시 학익동)에서 개소한 형무소로, 일제강점기 운영된 형무소 중 가장 늦게 신설된 형무소이다. 기존 개성과 김천의 두 소년형무소의 수감 인원이 수용 능력을 넘는 포화 상태에 있어, 인천소년형무소를 신축하여 이감하게 된 것이다. 공사는 1935년부터 30만원의 예산으로 시행되었으며, 총 3개년의 공사를 예정하였다. 첫해인 1935년에는 총 예산 중 10만원을 들여 45,000여평의 부지를 정지(整地)하고 감방과 작업장을 만들었는데, 그 중 35,000평은 농작지로 만들어 소년죄수들에게 농작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인천소년형무소 신축 계획의 전반적인 모습은 [도판1]에서 확인할 수 있다. 1935년에 작성된 이 도면은 형무소 부지의 정리 작업을 위한 도면이다. 형무소의 부지는 동서로 긴 장방형에 가깝게 준비되었으며, 북쪽으로 진입로가 놓이고, 행형 구역 담장 바깥쪽에 청사가 계획되었다. 북쪽의 진입로 초입에는 관사 부지가 계획되어 있음도 확인할 수 있다. 인천소년형무소의 구체적인 배치 계획은 같은 1935년의 [도판2]에서 볼 수 있는데, 북쪽의 전면에 중앙에 청사가 위치하며, 그 좌우로, 연무장과 창고가 계획되었다. 청사에서 긴 통로가 행형 구역 안쪽으로 관통하게 되며, 이 중앙 통로의 서쪽으로는 감방 시설 등이, 동쪽으로 공장 시설 등이 계획되어 있다. 행형 구역 바로 안쪽에는 계호실(戒護室)과 서적고(書籍庫), 의무실, 병감(病監), 피병감(避病監)이 담장에 면해 위치하며, 그 안쪽의 서쪽편에는 총 4동의 감방이 병렬 배치되었고, 동쪽에는 전면부터 교장(敎場), 공장 3동이 계획되었다. 가장 후면에는 취사장과 욕장(浴場)이 계획되었다. 감옥과 공장은 동서로 긴 건물로 계획되었으나, 처음부터 전체를 다 건립하지 않고 부분적으로 짓는 것을 계획하였는데, 이는 추후의 확장을 고려한 것이다. 도면은 가장 먼저 공장 하나가 건립되었으며, 이후 잡거감방(雜居監房) 1개동을 건립하는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

[도판3]은 당시 건립된 공장의 설계도이다. 공장은 내부에 넓은 무주(無柱) 공간을 갖도록 계획되었으며, 단층의 목조 건물로 계획되었다. [도판4][도판5]는 공장 다음으로 건립된 잡거감방의 평면도와 입면도이다. 이 건물은 철근콘크리트를 주된 건축재료로 하여 2층으로 지어졌다. 이 건물은 1920년대까지 감방 건물이 대부분 목조나 벽돌조의 단층 건물로 지어졌던 것에 비하면, 1930년대의 건축 기술과 재료의 발달이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전 시기의 감방이 중앙 복도를 중심으로 좌우에 감방이 배치되었던 것에 비하여, 인천소년형무소에서는 편복도가 채용되고 남쪽으로만 감방이 배치되었으며, 1층, 2층 각각 13개의 잡거방이 계획되었다. 건축양식에 있어서도 입면에서 창호가 벽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양상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철근콘크리트조 건물의 전형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또한, 좌우 양단에 계획된 계단실은 외부를 둥글게 계획하였는데, 이 또한 벽돌조나 목조 건물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계획 기법이다. 더불어, 박공(Pediment)나 아치(Arch) 등의 장식이 전혀 가미되지 않는 1930년대 철근콘트리트조 건물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건물이다.

1년 뒤인 1936년에 계획된 독거감방(獨居監房) 역시 잡거방과 같은 형태의 건물로 계획되었으며, 다만 내부의 간막이를 더 잘게 나누어 각 층에 26개씩의 독거방을 설치하였다. 이에 따라 북쪽 입면에 더 작은 창호가 조밀하게 배열된 것이 다른 점이다.([도판6], [도판7] 참조)
[도판8]은 1936년에 작성된 배치도이다. 공장 한 동과 잡거감방 한 동의 신축 다음에, 청사, 계호실, 독거감 1동, 잡거감 1동, 공장 1동, 취사장을 신축하는 계획을 담고 있다. 1년 뒤의 배치 계획도인 [도판9]에서는 이후 청사의 좌우에 연무장과 창고, 의무실, 병감, 피병감, 교장, 욕장, 각 건물을 연결하는 통로를 신축하는 계획을 보여준다. 이렇게 해서 1935년부터 3개년 동안 형무소의 주요 건물이 신축되었으며, 형무소 내에는 추가적인 확장을 위한 충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으나, 현재 국가기록원에는 이후의 증축에 관련된 도면이 소장되어 있지 않아 그 전모는 알기 어렵다.

[도판10][도판11]은 1936년에 신축된 청사의 계획도 중 일부이다. 청사 역시 철근콘크리트조 2층 건물로 계획되었으며, 지붕 또한 평지붕이 채용되었다. 다른 소년형무소의 청사가 그러했듯이 인천소년형무소의 청사 또한 형무소의 이미지를 전혀 풍기지 않는 일반적인 관청과 같은 형태로 계획되었다. 입면에는 장식이 완전히 배제되어 모던한 인상을 보여주고 있으며, 중앙의 현관을 중심으로 좌우대칭의 계획을 하였다. 내부의 1층에는 중앙의 복도를 중심으로 전면인 북쪽에 사무실 2실이 배치되었으며, 후면에 탕비실, 숙직실, 응접실, 조사실(調所) 등이 배치되었다. 2층에는 중앙 후면의 계단실을 중심으로 전후 방향의 복도가 계획되었으며, 회의실, 소장실, 응접실이 배치되었다. 변소는 본채의 서쪽에 단층 부속건물로 계획되어 본채와 통로로 연결되었다. 현관 앞에는 큰 포치(車寄せ)와 자동차용 경사로가 계획되었다.

[도판12]에서는 청사와 같은 1936년에 계획된 계호실(戒護室)의 계획을 볼 수 있다. 이 건물의 1층은 계호사무실, 간수휴게소 등으로 사용되었으며, 2층은 교회당(敎誨堂)으로 사용되었다. 이 역시 철근콘크리트조 2층 건물로 계획되었으며, 장식이 배재된 평활한 입면과 평지붕이 채용되었다. 다만, 입면에 굴뚝을 등 간격으로 돌출시켜 수직성을 강조하고 있다.

[참고도판]
  • 도판1. 인천소년형무소부지지균공사설계평면도/부지지균공사평면도/1, 1935상세보기
  • 도판2. 인천소년형무소외위신설기타공사배치도/배치도/1, 1935상세보기
  • 도판3. 인천소년형무소신축공사(공장)/건면급평면각복도/1, 1935상세보기
  • 도판4. 인천소년형무소잡거감방신축공사설계도/일이계평면기타도/1, 1935상세보기
  • 도판5. 인천소년형무소잡거감방신축공사설계도/각면건도/2, 1935상세보기
  • 도판6. 인천소년형무소독거감방신축공사/일이계평면각복도/1, 1936상세보기
  • 도판7. 인천소년형무소독거감방신축공사/자도/2, 1936상세보기
  • 도판8. 인천소년형무소청사감방기타신축공사배치도/배치도/1, 1936상세보기
  • 도판9. 인천소년형무소교장기타신축공사배치도/배치도/2, 1937상세보기
  • 도판10. 인천소년형무소청사기타신축공사설계도/일이계평면급자도/1, 1936상세보기
  • 도판11. 인천소년형무소청사기타신축공사설계도/현관회상세도/4, 1936상세보기
  • 도판12. 인천소년형무소계호사무실급교회당기타신축공사설계도/건면급일이계평면각복기타도/1, 1936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