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직후 이승만은 국무위원을 모두 사퇴시키고 이기붕의 부통령 당선을 취소하는 등 유화책으로 상황을 모면하려 했으나 1960년 4월 25일 “쓰러진 학생들의 피에 보답하라”는 교수들의 데모를 계기로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는 다시 한번 분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