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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대덕연구개발특구

대덕연구단지준공식, 1992

대덕연구단지준공식,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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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대표적 산업단지이자 우리나라 산업단지 중 가장 특이한 성격을 지닌 산업단지로 대덕연구단지를 들 수 있다. 단지지정은 1973년에 이루어졌으나 실제 개발은 1980년대에 이루어졌다. 대덕연구단지는 일반적인 국가산업단지들처럼 제조업체의 입지를 위하여 개발된 것이 아니며, 공업기능의 입지 역시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초기단계에 공업지역이 계획되었으나, 실제 생산시설을 대덕연구단지 안에 설치할 수 있게 된 것은 1990년대 말엽부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덕연구단지가 국가산업단지로 지정된 것은 개발의 효율성을 위해 「산업기지개발 촉진법」에 의하여 공업기지로 지정됨에 따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연구 학원도시 건설 계획, 1973

연구 학원도시 건설 계획,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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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 전문연구단지 건설 계획, 1976

대덕 전문연구단지 건설 계획,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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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단지의 개발이 시작된 것은 1973년 1월 27일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과학기술처 초도 순시에서 연구학원도시 건설을 지시하면서부터 이다. 이후 동년 5월 28일 단지 건설의 기본계획이 확정되었고, 1973년 11월 20일 건설부고시 468호로 충남 대덕군 유성읍, 탄동면 일원의 지역 810만평이 '교육 및 연구단지 지구'로 지정되었다.

정부는 대덕연구단지의 개발을 위한 제도적 장치로 1973년 12월 31일 「특정연구기관 육성법」을 제정하였다. 이 법은 과학기술과 산업경제의 발전을 위하여 정부가 출연하는 연구기관(특정연구기관)의 보호육성을 위하여 제정되었으며, 연구학원도시의 건설을 명문화하였다. 그 후 1976년 4월 12일 연구학원도시 건설기본계획의 조정을 거쳐, 1977년 6월 3일 과학기술처에서 대덕전문연구단지 토지이용계획(안)을 수립하였고, 1977년 12월 8일 산업기지 개발구역으로 지정되었다. 대상지역은 약 840만평으로 이는 1973년 11월 20일 건설부고시 468호로 고시된 교육 및 연구단지 결정지구 약 810만평과 한국핵연료개발공단 부지 및 동진입로 지역 약 30만평을 합한 것이다.

산업기지개발구역 지정 (대덕) (의안922호), 1977

산업기지개발구역 지정 (대덕)
(의안922호),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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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밸리 선포식 대통령 연설문, 2000

대덕밸리 선포식 대통령 연설문,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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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단지와 산업계간의 연계가 강화된 것은 1990년대 후반 연구소 출신자들의 창업이 증가하면서부터다. 실제로 대전시의 벤처기업 성장은 대덕 연구단지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대덕연구단지에서 나타난 이러한 현상은 벤처기업 육성을 강조하던 당시 정부의 관심을 끌기 시작하였다. 정부는 1999년 12월 연구결과의 실용화를 위해 연구단지내에 생산시설의 설치가 가능하도록 제도를 개선하였다. 또 2000년 9월 28일 '대덕 밸리 선포식'을 통해 지식 및 기술집약적 벤처기업의 집적지로 대덕연구단지의 위상을 제고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대덕연구단지는 연구와 산업이 결합된 벤처기업 밸리로 자리 잡기 시작하였다.

김대중대통령대덕밸리선포식참석연설, 2000

김대중대통령대덕밸리선포식참석연설,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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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결과 대덕연구개발특구로 입지하는 기업들이 급속히 증가하였으며, 2007년 말 현재 대덕연구개발특구에는 출연기관 28개소와 투자기관 7개소, 국공립기관 15개소, 교육기관 6개소, 기업 898개소 등 977개의 기관이 입지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