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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 부속기관·관측소

조선총독부 식산국 상공과 용산분실

1910년 9월 30일 공포한 칙령 제354호 <조선총독부 및 소속관서 관제(朝鮮總督府及所屬官署官制)>에 따라 조선총독부는 총무부·내무부·탁지부·농상공부·사법부의 5부(部)와 그 아래 9개의 국(局)을 두었다. 1919년 3‧1운동 이후 총독부는 '문화통치'의 방향으로 시정방침을 바꾸고 그 해 8월 관제를 개편하게 되었는데, 종래의 부를 국으로 바꾸어 내무국, 법무국, 재무국, 식산국, 학무국, 경무국의 6개 국(局)을 설치하였다. 이 과정에서 농상공부가 식산국으로 바뀌면서, 식산국은 비로소 독립된 하나의 국으로서 기능하기 시작하였다.

상공과는 1910년 9월 농상공부 상공국 상공과로 시작하여, 1912년 농상공부 식산국 상공과로 바뀌었다가, 1915년 국 제도가 폐지되면서 농상공부 상공과로 되었다. 이후 1919년 8월 관제 개정으로 식산국에 소속되면서 1943년 12월 농상국 상무과로 바뀔 때까지 조선에서의 상공업정책을 관장하였다. 1925년 여름 조선총독부는 근대 도량형의 도입을 위하여 미돌법(米突法, 미터법)을 발포하였으며, 이에 따라 식산국 상공과 용산분실은 도량형기(度量衡器)의 제작을 주관하고, 시내에 유통되는 도량기 점검을 실시하였다.

현재 국가기록원에는 조선총독부 식산국 상공과 용산분실과 관련된 도면 32매가 소장되어 있으며, 공사유형별로는 신축계획도면이 20매, 증개축 관련 도면이 7매, 그리고 설비관련 도면 5매가 소장되어 있다.

<표> 조선총독부 식산국 상공과 용산분실 소장 목록
명칭 연도 도면수
조선총독부 식산국 상공과 용산분실 1923-1943 32

식산국 상공과 용산분실의 전체 배치는 [도판1][도판2]에서 확인할 수 있다. 두 도면 모두 1928년에 작성된 배치도로, 전체 부지와 주변 가로의 상황이 기재되어 있다. 남서쪽에 간선도로가 있었으며, 간선도로에 면해있는 용산경찰서 북쪽에 진입로를 내고 정문을 설치하였다. 부지는 북동쪽으로 좁고 긴 형태로 현재의 서울시 용산구 원효로1가 용산구 보건분소와 원효1동 경로당, 청년 창업플러스 센터 등이 위치한 자리에 해당하여 해방 이후에도 계속 국가소유의 부지로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도판1]을 보면, 부지에는 모두 13개동의 건물이 있었으며, 그 중 사무실 및 숙직실 건물이 정문 바로 안쪽에 배치되어 있었다. 부지 전면의 사무실 반대쪽에는 창고 두 동이 위치하였고, 부지 중앙에는 화학용량기검정실(化學用量器檢定室)과 형기검정실(衡器檢定室)을 중심으로 도량검정실(度量檢定室), 계량기검정실(計量器檢定室), 창고, 가스미터검정실(瓦斯メートル檢定室)이 위치하였다. 부지 후면에도 여러 창고들이 배치되었다.

[도판2][도판1]에서 점선으로 계획된 각 건물 사이의 외부 회랑에 대한 계획을 보여준다. 각 건물 사이를 잇는 회랑을 계획하면서, 각 회랑의 중간 부분에는 마차가 통과 할 수 있도록 '마차통로(馬車通路)'를 두고 난간에 양여닫이문을 달았음이 확인된다.

이후, 1936년에는 청사를 새롭게 계획하게 되는데, 그 내용을 [도판3]에서 볼 수 있다. 원래는 전면 정문 바로 안쪽에 청사를 계획하였다가, 부지 전면의 일부가 신설도로용지로 편입되면서, 청사를 뒤로 물려 재계획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새롭게 계획된 청사는 기존의 사무실과 달리 전면에 포치(車寄せ)가 크게 부가된 형태이며, 기존에 전면에 덧붙은 숙직실도 후면으로 이동되었음을 볼 수 있다.

신축된 청사의 구조는 벽돌과 철근콘크리트의 병용 구조로, 본채는 2층으로, 후면의 부속가는 단층으로 계획되었다.([도판4], [도판5]참조) 청사의 상세한 평면과 입면 계획은 [도판6]에서 확인된다. 청사 1층은 무주공간의 사무실로 계획하여 넓은 공간을 확보하였고, 한쪽에 응접실을 구획하였다. 따라서 현관에서 내부로 이르는 별도의 진입홀과 내부복도는 마련되어 있지 않다. 청사 2층도 전체적으로는 무주공간의 사무실로 계획되었고, 한쪽에 연구실과 진열실이 배치되었다. 이층으로 연결되는 계단실은 후면에 돌출되어 배치되었으며, 계단실을 통해 숙직실 등의 부속가로 연결되었는데, 그 사이에는 샷터(シャッター)가 설치되었다. 부속가에는 부엌을 중심으로 왼쪽에 숙직실과 벽장, 오른쪽에 남자변소, 여자변소, 욕실이 배치되었다. 청사의 입면은 중앙의 포치와 상부의 중앙박공을 중심으로 좌우대칭으로 구성되었다. 전체 입면은 평면적으로 단순하게 계획되었으며, 포치와 중앙부의 상세한 계획은 [도판7]에 잘 나타나 있다.

[도판8]에서는 계량기 검정실의 단면과 상세를 볼 수 있는데, 계량기검정실은 2층의 벽돌과 철근콘크리트의 병용 구조이며, 외벽은 벽돌로 마감하였고, 목조 트러스로 지붕을 구성하고 기와를 얹었다.

[참고도판]

  • 도판1. 용산상공과분실창고기타부지평면도 / 계량기검정실증축 / 1, 1928 상세보기
  • 도판2. 용산상공과분실계량기검정실증축창고기타신축공사설계도 / 도랑하, 배치도 / 3, 1928 상세보기
  • 도판3. 조선총독부식산국상공과용산분실신축공사배치기타변경도 / 9, 1936 상세보기
  • 도판4. 조선총독부식산국상공과용산분실신축공사설계도 / 4, 1936 상세보기
  • 도판5. 조선총독부식산국상공과용산분실청사창브라인도신설공사 / 11, 1937 상세보기
  • 도판6. 조선총독부식산국상공과용산분실신축공사설계도 / 2, 1936 상세보기
  • 도판7. 조선총독부식산국상공과용산분실신축공사설계도 / 현관상세도 / 5, 1936 상세보기
  • 도판8. 용산상공과분실계량기검정실증축창고기타신축공사설계도 / 2, 1928 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