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총독부 부속기관·관측소

인천부청

인천부(仁川府)는 1910년 10월 1일 조선총독부가 지방행정조직을 개편하면서 지정된 행정구역이다. 지정 당시 인천부는 기존의 인천이사청(仁川理事廳, 元 일본영사관)을 부청으로 활용하였는데, 1930년대 각 도·부청사의 신축이 진행되면서 인천부청 역시 새로 신축되었고, 1932년 8월 19일에 기공하여 1933년 6월 25일에 낙성되었으며, 공비는 68,000엔(圓)이 소요되었다. 이 건물은 해방 이후 1981년까지 인천시 청사로 사용되었으며, 1985년부터 현재까지는 인천 중구청사(인천광역시 중구 관동1가 9-1번지)로 사용되고 있다. 건물은 현재 등록문화재 제249호 '구인천부 청사(舊仁川府廳舍)'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 국가기록원에는 당시에 새롭게 계획된 인천부청과 관련된 도면 36매가 소장되어 있으며, 신청사의 계획 당시인 1932년의 도면이 18매, 1933년의 도면이 18매 남아 있다. 공사유형별로는 신축계획 도면이 14매, 설계변경 도면이 17매, 그리고 설비 관련 도면 5매가 소장되어 있다.

<표> 인천부청 소장 목록
명칭 연도 도면수
인천부청 1910-1945 36

당시 새롭게 신축된 청사의 전체적인 계획은 [도판1][도판2]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인천부청사신축공사설계도(仁川府廳舍新築工事設計圖)'의 제목이 달려있는 이 도면들은 1932년에 작성된 것으로 청사의 전반적인 개황을 보여준다. 당시 계획된 청사는 지상 2층과 일부 3층과 지하층(二階建(中央背面三階建地下室付))을 계획한 철근콘크리트조 건물로 연면적은 412.35평(건평 198.58평)으로 계획되었다. 건물의 주요구조는 철근콘크리트조였으나, 외벽체는 벽돌조로 구성되었고, 내부의 일부 벽체는 목골철망(木骨鐵網)벽체로 구성되었다. 청사의 평면은 一자 형태를 기본으로 중앙의 후면과 좌우양단부의 일부가 조금씩 튀어나온 형태로 계획되었다. 1920-30년대 지방행정조직의 시설로 건설된 도․부 청사의 평면 유형은 크게 山자형, E자형, 凸자형, 一자형으로 나누어진다는 연구를 참고하면, 이중 인천부청사는 크게는 凸자형 평면에 해당하는 계획안이다.

건물의 구조가 철근콘크리트로 계획됨에 따라 청사의 내부에는 대형의 무주(無柱)공간이 계획되었는데, 현관과 내부의 홀, 후면의 계단실 및 화장실 등은 중앙에 배치되고, 그 좌우에 대형의 ㄴ자 무주공간이 계획되었다. 1층 좌우 공간의 전면은 좁고 긴 방문인 대기실(公衆溜)로 계획되었으며, 그 후면으로 왼쪽에는 호적(戶籍), 수도(水道), 서무(庶務) 계실(係室)이, 오른쪽에는 재무계실(財務係室)이 배치되었다. 재무계실의 중앙부 쪽 일부는 별도의 목골철망벽으로 구획되어 부금고(府金庫)로 계획되었다.

반면 2층 부분은 목골철망의 비내력벽으로 각 공간이 분할되어 계획되었다. 계단실과 이어지는 후면에 좌우의 복도를 두고, 전면에는 모두 5개의 실을 구성하였다. 양단부의 넓은 공간에는 회의실과 내무계실(內務係室)이 배치되었고, 중앙부분에는 왼쪽부터 의원대기실·소회의실·식당(議員控室·小會議室·食堂), 응접실 겸 귀빈실, 부윤실(府尹室)이 계획되었다. 또, 계단실의 중간 참 후면에는 별도의 벽을 치고 신문기자실을 계획하였으며, 신문기자실 상부의 2.5층 부분에는 교환실(交換室)이 설치되었다.

반면, 지하층은 계단실과 화장실 아래쪽에만 계획되었다. 지하층의 출입은 건물 후면에 별도로 설치된 옥외계단을 통해 이루어졌으며, 내부에는 보일러실과 석탄고를 중심으로 후면으로 보일러 공간과 철근콘크리트조 대형 연돌(煙突)이 계획되었다. 또, 일층 후면 계단실의 한쪽에는 다른 부분과 달리 단층의 부속건물이 연접하여 계획되었는데, 내부는 탕비실과 숙직실로 사용되었고, 별도의 굴뚝이 계획되었다. 또한, 1933년에는 숙직실 일부가 확장되는 설계 변경이 진행되었다.([도판3] 참조)

전체 건물의 입면 계획은 1930년대 유행한 모더니즘의 국제주의 건축 양식을 잘 보여준다. 상중하에 각각 좌우로 긴 수평띠를 두고, 좌우의 폭이 더 넓은 창호를 규칙적으로 배열함으로써 건물의 수평성을 강조하고 있다. 철근콘크리트 바닥판을 사용한 평지붕을 채택하였기 때문에 지붕부도 특별한 의장요소 없이 마감되었다. 반면, 건물의 중앙부에는 다양한 의장 요소가 계획되어 있다. 중앙 현관의 좌우 벽체를 전면으로 돌출시키고, 그 상부에 수평판 형태의 포치를 둠으로써 중앙 현관을 강조하고 있으며, 그 상부에는 수직 루버(louver)의 형태로 돌출된 수직판 4개가 계획되어 있어, 전체적으로 단조로운 건물 입면에 변화를 주고 있다. ([도판4] 참조) 또, 전면에 관해서는 설계변경도([도판5] 참조)가 확인되는데, 설계 변경의 이유는 건물의 상부 중앙에 일본제국 문장을 설치하기 위함이었다.

청사 건물을 포함한 인천부청의 전체적인 배치는 [도판6]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도면은 1933년에 정문 신축을 위해 작성된 것으로, 서남-동북 방향의 장방형 대지의 중앙에 청사가 서남향으로 배치되었고, 그 전면으로 정문이 계획되었음을 보여준다. 청사의 동남쪽에는 각종 관사가 계획되어 있으며, 그 후면인 동쪽에는 대규모의 부윤(府尹) 관사가 배치되어 있다. 청사의 후면에는 별도의 건물 한 동이 계획되어 있으나, 건물명이 기재되어 있지는 않다. 도면에 기재된 내용 중 가장 흥미로운 점은 정문의 위치 결정 상황이다. 일제강점기 관립시설의 정문 위치는 청사 중앙의 현관과 축을 맞추어 계획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인천부청의 경우 정문 앞 도로의 중축선과 청사의 현관을 잇는 가상선 위에 정문을 배치하고 있다. 이는 계획도상에서의 기하학적 중심보다는 도로 등 외부에서 시지각적 중심에 대한 개념이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계획된 정문의 상세는 [도판7]에서 확인된다. 정문 역시 한 쌍의 철근콘크리트조 기둥을 중심으로 계획되었으며, 별다른 지붕이나 부속시설 없이 매우 기능적으로 계획되었다.

청사의 구체적인 구조 계획은 [도판8]에 기재되어 있다. 건물 좌우 부분에는 전후 방향으로 철근콘크리트보를 계획하였으며, 중앙 부분에는 건물 좌우 방향의 보가 추가로 설치되었다. 각 부분에는 서로 다른 단면적의 보가 설계되어 사용되었다. 나아가, 평지붕의 처리 방식과 각 층간 보와 벽체의 구조는 [도판9]에서 확인된다. 평지붕에는 방수를 위해 1/50의 구배(句配)가 적용되었으며, 철근콘크리트 바닥판 상부에 방수층을 계획하고 시멘트블럭으로 마감하였다. 패러핏 부분에는 방수모르타르를 발랐다.

[참고도판]

  • 도판1. 인천부청사신축공사설계도 / 1 / 평면급건면도, 1932 상세보기
  • 도판2. 인천부청사신축공사설계도 / 2 / 건면지형복기타도, 1932 상세보기
  • 도판3. 인천부청사신축기타공사내숙직실기타설계변경도 / 11 / 평면기타도, 1933 상세보기
  • 도판4. 인천부청신축공사설계도 / 3 / 현관회리상세도, 1932 상세보기
  • 도판5. 인천부청사신축기타공사설계변경도 / 5 / 정면문장변경도, 1933 상세보기
  • 도판6. 인천부청정문신설기타공사배치도 / 11 / 배치도, 1933 상세보기
  • 도판7. 인천부청정문신설기타공사설계도 / 12 / 정면급평면기타도, 1933 상세보기
  • 도판8. 인천부청사신축공사설계도 / 9 / 철근상세기타도, 1932 상세보기
  • 도판9. 인천부청사신축공사설계도 / 4 / 일반구계상세도, 1932 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