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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맹 퇴치 사업 1954년

광복 직후 남한 지역의 문맹률은 12살 이상 전체 인구(10,253,138명)의 약 78%(7,980,922명)로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 일제는 동화정책의 일환으로 우리말과 한글의 사용을 금지했기 때문에 당시 대다수의 국민이 한글을 알지 못하는 문맹 상태였다. 이 때문에 미 군정청은 문맹 문제를 관장할 ‘성인교육위원회’를 조직하고, ‘국문 강습소’를 설치 운영하였다. 또한 공민학교를 설치하는 등 학령기를 초과하여 초등교육의 기회를 받지 못한 아동, 청소년 및 성인들을 위한 교육정책을 펼쳤다. 그 결과 1948년 문맹률은 정부 수립 시 약 41.3%로 낮아졌다.

정부 수립 이후 정부는 교육의 1차적 과제로 초등의무교육의 정착과 더불어 ‘문맹퇴치’를 통한 국민 계몽에 두었다. 그러나 6.25 전쟁으로 이러한 계획은 실효를 거두지 못하였다. 휴전협정 이후 정부는 <의무교육완성 6개년 계획>(1954∼1959)과 <문맹퇴치 5개년 계획>(1954∼1958)을 수립하였다. 이를 통해 학령기의 아동들이 초등 수준의 의무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교육제도를 정비하고 이러한 혜택을 받지 못한 국민들을 위한 보완적 정책을 마련하고자 했던 것이다.

1954년 문교부는 국민 완전 문맹퇴치 계획안을 제출하였고, 같은 해 2월 16일에 국무회의에서 의결하였다. 이 계획에 따라 문맹퇴치 사업이 1954년부터 1958년까지 5개년에 걸쳐 실시되었다. 매년 농한기를 이용하여 70~90일 동안 교육하였는데, 교육내용은 초등학교 2학년 수준의 읽기, 셈하기, 기초적 과학 지식 등이었다. 이 사업의 결과 문맹률은 1958년에 4.1%로 격감되었다.

  • 대학생 농촌 문맹퇴치 계몽 활동4(1962), CET0048264(4)

    대학생 농촌 문맹퇴치 계몽
    활동4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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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맹퇴치(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서 제주도를 시범지역으로 교육실시) (1965), CEN0000433(3-1) 재생

    문맹퇴치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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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내용과 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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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차와 사업내용
연차 사업내용과 성과
제1차 (1954) 문교부는 교육을 담당하고 내부무는 참여를 독려하는 역할을 하였다. 국방부는 비문해 군인들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만 19세 이상의 2,69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하였다. 전국에 84,190개의 교육반을 설치하고, 1,972,115명에게 문해교육을 실시하였다.
제2차 (1952) 만 12세 이상의 비문해자 남녀 전원을 대상으로 실시하였다. 전국에 62,192개소의 교육반을 설치하였고, 1,370,000명이 참여하여 이 중 1,053,000명이 수료하였다.
제3차 (1956) 만 12세 이상 45세 이하의 비문해자 전원을 대상으로 실시하였다. 농림부, 보건사회부, 내무부의 협조로 전국의 교육 대상자 1,115,000명 중 712,000명을 교육시켰다.
제4차 (1957) 만 12세 이상 45세 이하의 비문해자 전원을 대상으로 실시하였다. 전국에 20,694개의 교육반을 설치하였고, 419,000명이 수료하였다.
제5차 (1958) 만 12세 이상 비문해자 전원을 대상으로 실시하였다. 33,185개의 교육반을 설치하였고, 1,145,000명이 참여하여 이 중 582,300명이 수료하였다.
  • 문맹국민 완전 퇴치 계획(1953), BA0084194(17-1)

    문맹국민 완전 퇴치 계획(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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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차 전국문맹퇴치 교육실시 계획안(1954), BA0084198(35-1)

    제2차 전국문맹퇴치 교육실시
    계획안(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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