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전원개발 5개년계획 이후 제2차(1967~1971), 제3차(1972~1976), 제4차(1977~1981) 전원 개발 5개년계획이 순차적으로 시행되었다.
한전은 10개년 장기 전력수요예측 작업을 실시하고 이를 근거로 발전소 건설계획을 수립했는데, 이렇게 수립된 제2차 전원개발 5개년계획은 1971년의 최대수요를 약160만kw로 보고 신규 건설로 약120만kw를 추가하여 총 195만kw의 전력을 확보하는 안을 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계획에 반영하였다. 그 후 정부와 한전은 급증하는 수요증가에 대비하여 1966년 9월, 기존 계획에 화천수력 4호기, 울산 가스터빈, 부산화력 3,4호기의 건설을 추가한 제2차 전원개발 5개년 계획을 확정하여 사업을 추진하였다..
1971년에 마무리된 제2차 전원개발 5개년계획 사업기간 중에는 화력발전으로만 약 180만kw의 신규전원을 개발했다. 또 이때부터는 수력발전이나 석탄화력보다 석유화력이 집중적으로 건설되었는데 1971년 말의 수력 대 화력의 구성비는 13:87이었다. 이는 당시 석유가격이 국제시장에서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었고 석탄은 가격문제를 비롯하여 발전소의 지리적 조건과 국내 생산량의 경직성 등 여러 가지 제약이 뒤따라 발전용 연료로서는 부적합하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기간 중 민간자본을 동원하기 위한 정부의 방침에 따라 경인에너지, 동해전력, 호남전력 등 3개의 민간 화력발전소가 건설되었다
제3차 전원개발 5개년계획기간인 1973년 국제 원유가의 폭등으로 종전의 석유화력중심 발전정책을 근본적으로 수정, 발전연료의 다원화를 시도하였다. 1976년 말의 에너지원별 발전량 구성비는 화력발전이 92.3%, 수력이 7.7%에 불과하여 탈석유 전원개발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3차 5개년계획 사업에는 장기대책으로서 원자력과 유연탄화력을 주전원으로 하는 적극적인 방향전환이 시도되었다. 이 기간 중에 건설된 발전소는 한전사업으로 영동화력 1호기, 인천화력 2호기, 여수화력 1호기, 민전사업으로 동해화력(뒤에 울산화력으로 개칭) 3호기, 호남화력 1,2호기가 준공되었다.
제4차 5개년 계획기간은 전원개발에 몇 가지 새로운 전환을 시도함으로써 전력사상신기원을 마련한 중요한 시기이다. 주요특징으로는 두 차례의 석유파동을 계기로 탈석유 및 에너지 다원화시책이 강력히 추진되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기저부하설비도 유전소화력으로부터 원자력 및 유연탄화력 주도형으로 계획이 전환되었다. 이 계획에 따라 대용량의 원자력발전소와 석탄화력, 양수발전 등 과거의 어느 때보다도 많은 건설공사가 동시에 추진되었다. 여수화력 2호기, 인천화력 3,4호기, 영동화력 2호기, 평택화력 1,2호기, 울산화력 4,5,6호기, 군산 및 영월 울산의 복합화력 등이 이 시기에 개발되었다.
기록물 철 제목 | 독일경제협력상 영남화력발전소 기공식 참석(CET00209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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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물 건 제목 | 독일경제협력상 영남화력발전소 기공식 행사참석1(1967) |
기록물 철 제목 | 박정희대통령 부산화력 3.4호기 21만KW 준공식 참석(CET00212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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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물 건 제목 | 부산화력발전소 3.4호기 21만KW 준공식 전경(1969) |
기록물 철 제목 | 박정희대통령 제주화력발전소 준공식 참석(CET00212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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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물 건 제목 | 박정희대통령 제주화력발전소 준공식 참석 시찰4(1970) |
기록물 철 제목 | 경인에너지화력발전소 및 정유공장 준공식(이낙선상공부장관)(CET00725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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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물 건 제목 | 경인에너지화력발전소 및 정유공장 준공식1(19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