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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딸랑딸랑’ 사랑을 나누는 종소리

12월, 거리에는 어김없이 크리스마스트리가 반짝이고, 곳곳에 울려 퍼지는 캐럴은 팍팍한 삶을 잠시나마 잊게 한다. “딸랑∼ 딸랑∼” 온정이 가득 넘치는 빨간 냄비와 함께 구세군의 종소리가 정겹다. 크리스마스는 원래 기독교의 최대 축제일로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리는 날이었으나, 이제는 종교적인 의미를 초월하여 소외된 이웃에게 나눔을 실천하고 사랑과 용서의 메시지를 전하는 날로 통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크리스마스가 들어온 것은 1884년으로 서양 선교사에 의해 들어와 이듬해부터 확산되기 시작했다. 1896년 12월 24일자 「독립신문」에는 “예수 그리스도 탄일을 맞아 조선 인민들도 대군주 폐하와 왕태자 전하의 성체가 안강하고 나라 운수가 영원하며 조선 전국이 화평하고 인민들이 무병하고 부요하게 되기를 하나님께 정성으로 빌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1897년 배재학당에서는 크리스마스 며칠 전부터 수백 개의 등불을 만들어 회당 앞에 걸어두었다고 한다. 한국 불교에서 소원을 비는 '등'으로 만들어진 트리는 한국의 전통과 서양 종교가 빚어낸 색다른 크리스마스 풍경이었다. 선교사 언더우드의 저서에 따르면 명성황후는 크리스마스에 대해 호기심이 많아 기원과 의미 등을 묻기도 했다고 한다.

[대한뉴스 1166] 크리스마스 이모저모
[대한뉴스 1166] 크리스마스 이모저모(1977)

모던 열풍에 실려 온 상업적 크리스마스

1930년대에도 전등불을 밝히고 서울 시내는 ‘불야성을 이룬 별천지’를 이루었다. 모던 걸과 모던 보이들이 거리를 활보했고, 백화점을 통해 새로운 소비의 유행이 시작되던 이 시기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고 선물을 교환하는 관습이 확산되었다. 그 해 조선일보 기사에는 아기 예수 탄생을 기념하는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전하며 “크리스마스에는 아가들에게 선물을 주어야 한다”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선물 증정 뿐 아니라, 크리스마스이브에 친한 지인들과 만나 유흥을 즐기는 문화 또한 활발해졌다. 1936년 「조선일보」는 ‘토산(土産) 크리스마스’라는 기사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아 회사원들이 모여 술을 먹는 유흥 분위기가 조성되었다고 했고, 「매일신보」는 ‘기독교인에서 상인의 손으로 넘어간 크리스마스’라는 기사에서 크리스마스의 상업화를 비판하기도 했다. 1930년대 중반까지 한껏 고조되던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여 일제가 유흥적인 크리스마스 행사를 금지시키면서 주춤하게 되었다. 1938년 「동아일보」는 ‘산타클로스는 안온다’라며, 크리스마스 행사 금지에 대한 내용과 일본군에게 크리스마스 위문품을 보내는 기사를 실었다. 1945년 광복 이후 미군정에 의해 공휴일로 지정되고, 6.25전쟁이 끝난 1950년대 중·후반부터 크리스마스 이브는 ‘젊은이들이 즐기는 날’이라는 인식이 퍼져갔다. 1981년까지 지속된 야간 통행금지 시절에는 성탄절과 일부 특정일에만 통행금지가 해제되면서 밤새 놀 수 있는 해방의 날로 여겼으며, '연인들의 날'로도 통했다.

남북애육원 크리스마스 행사 썸네일 이미지
남북애육원 크리스마스 행사(1954)
구세군 자선냄비에 성금하는 사람들 썸네일 이미지
구세군 자선냄비에 성금하는 사람들(1964)
크리스마스 거리풍경 썸네일 이미지
크리스마스 거리풍경(1965)

선물과 캐럴의 흥겨운 잔치

1960∼70년대에는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 통닭'이란 광고가 등장할 정도로 전기구이 통닭이 인기였고, 버터크림케이크로 성탄절 분위기를 냈다. 1970년대 태권브이가 방영되면서 어린이 선물로 로봇 완구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1980년대는 종합과자선물세트와 바비 인형이 최고의 선물이었고, 1980년대 중반 프라이드치킨도 크리스마스의 인기 먹거리였다. 1990년대 청소년들은 백팩과 모자, 비디오 게임기, 삐삐를 크리스마스 선물로 선호했으며, 어린이들에게 블록 장난감과 인형의 집이 인기를 끌었다. 2000년대에는 패밀리 레스토랑을 찾는 가정이 많아졌으며, 상품권과 전자 제품이 선물로 인기가 있었다. 현재까지도 어린이들의 크리스마스 선물로는 장난감, 특히 애니메이션 캐릭터 완구나 변신자동차 등이 변함없이 인기를 끌고 있다.

한편, 크리스마스 무렵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캐럴(carol)은 크리스마스를 즐기고 축하하기 위해 듣는 음악이다. 2010년대에 들어서 성탄 무렵 캐럴이 들리지 않게 됐는데 이유는 엄격해진 저작권료 문제 때문이었다. 그러나 문화체육관광부가 한국저작권단체연합회, 음악저작권 4개 단체와 합의해 2015년 12월 9일 크리스마스 캐럴에 대한 저작권료가 없어지게 되었다.

크리스마스트리 점등식 중계방송 관계자 썸네일 이미지
크리스마스트리 점등식 중계방송 관계자(1968)
서울시청 앞 크리스마스 트리 썸네일 이미지
서울시청 앞 크리스마스 트리(1988)
백화점 카드 및 트리 썸네일 이미지
백화점 카드 및 트리(1990)

결핵퇴치 돕는 크리스마스 실(Seal)

1960∼80년대에는 크리스마스 실 구매가 '도덕적 의무'와도 같았다. 크리스마스 실(Seal)은 '나도 결핵 환자를 돕는데 참여하고 있다'는 증표로써 크리스마스카드에 우표와 함께 붙였다. 크리스마스 실은 1904년 12월 10일 덴마크의 한 우체국 직원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졌는데, 당시에는 결핵환자가 많던 시절이어서 세계 각국으로 급속히 퍼져나갔다. 우리나라에는 1932년 12월 황해도 해주의 구세결핵요양원장으로 있던 캐나다 선교의사 셔우드 홀(Sherwood Hall)에 의해 도입됐으며, 최초의 실에는 남대문이 그려졌다. 1953년 대한결핵협회가 창립되면서 실이 결핵퇴치기금 조성을 위한 모금운동으로 완전히 정착되었다. 1983년 '크리스마스 실첩' 발행 및 실 수집 경진대회, 1988년 세계 크리스마스 실 전시회 등의 행사가 열리기도 했으나, 최근에는 모바일 문화에 밀려 손편지가 쇠퇴하면서 실에 대한 관심도 급감했다. 2013년 실 판매수익은 39억 원, 2014년은 34억 1천만 원으로 줄었으며, 10년 전인 2003년 판매수익금 64억 원에 비해 절반이나 줄어들었다. 2014년 우리나라의 결핵 발생률을 보면, 10만 명당 86명으로 집계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세계 10대 경제 대국의 위상에 걸맞게 결핵환자들을 돕는 ‘크리스마스의 실’의 좋은 의미를 되살려보자는 움직임이 최근에 일어나고 있다.

크리스마씰 모금계획
크리스마씰 모금계획(1972)
(집필자 : 남애리)

참고자료

  • 네이버 지식백과(http://terms.naver.com)
  • 『신여성』, 크리스마스 선물과 음식, 1933. 12(7권 12호).
  • 『상투의 나라』, 집문당, 1999.
  • 조선일보, 「토산(土産) 크리스마스」, 1936.12.25.
  • 머니투데이, 「크리스마스는 어쩌다 한국에서 연인들 기념일이 됐나」, 2014.12.25.
  • 조선일보, 「“없어서 못 팔아요” 크리스마스에 웃는 동대문 완구시장」, 2015.12.15.
  • 국민일보, 「크리스마스실의 추억」, 2015.12.11.
  • 국제신문, 「연하장·크리스마스실 사라진 세밑 풍경」, 2015.12.25.
  • 제민일보, 「잊혀져가는 ‘크리스마스 씰’의 추억」, 2015.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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