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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바퀴로 가는 친환경 교통수단

자전거를 타자

「자전거이용활성화에 관한 법률」은 자전거가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에 따른 환경오염, 교통 체증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친환경 교통수단의 방안으로 주목받으면서 1995년 제정되었다. 이 법률은 2017년까지 27차례 개정되면서 자전거 등록번호판과 차대번호의 표기에 관한 사항, 대중교통에 자전거 거치대 설치 권장, 일정한 기준에 적합한 전기자전거를 자전거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방안 등의 내용이 보충되었다.

자전거이용활성화에 관한 법률안 자전거이용활성화에 관한 법률안 자전거이용활성화에 관한 법률안
자전거이용활성화에 관한 법률안(1994)

각 지자체에서는 친환경교통수단인 자전거를 많이 이용하도록 다양한 자전거 활성화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서울자전거 따릉이’처럼 만 15세 이상의 남녀노소라면 누구나 이용이 가능한 무인 자전거 대여 시스템이 있다.

우리나라 자전거의 역사

우리나라에 자전거가 들어온 것은 개화기 때다. 1896년 예조시랑 고희성이 자전거를 타고 장안거리를 돌아다녔다고도 하고, 같은 해 독립운동가 서재필 박사가 독립문 신축현장에 갈 때 자전거를 탔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2년 후에는 독립협회 회장을 지냈던 윤치호가 하와이에서 통타이어를 사용한 자전거를 들여왔다고 전해진다.

자전거 경주 자전거 경주 자전거 경주 자전거 경주 자전거 경주
[대한뉴스 제274호] 자전거 경주(1960)

이후 한두 대씩 자전거가 들어오게 되었으며 1903년에는 조정의 관리들을 위해 1백대의 자전거가 도입되기도 했다. 1905년 12월에 「가로관리규칙」이 제정·시행되었는데 ‘야간에 등화 없이 자전거를 타는 것을 금한다’라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무렵 자전거가 꽤 많이 보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자전거가 흔하게 되자 자전거 대회도 열렸는데 첫 자전거 대회는 1906년 4월 22일에 열렸다. 대회를 주최한 사람은 대한제국의 군인이었던 권원식과 요시카와라는 일본인이었다. 서울 동대문 훈련원에서 열린 이 자전거 대회는 당시로서는 큰 액수에 해당하는 100원(圓)이 상금이었다. 상금도 상금이지만 박진감 넘치는 자전거 경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자전거 영웅, 엄복동

1913년 4월 13일 서울 용산에서 열린 '전조선자전거경주대회'는 인산인해로 사람들이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 등급별로 열린 대회에서 최고 선수들만 달리는 일류 선수 경기에 우리나라 엄복동 선수가 있었다. 총 스무 바퀴를 도는 이 경기에서 엄복동 선수는 첫 우승을 했다. 이 대회를 시작으로 엄복동 선수는 출전하는 대회마다 연전연승이었다. 이때부터 엄복동 선수는 ‘자전거 왕’으로 불렸다.

엄복동 선수가 출전한 경기 중 최고는 1920년 5월 2일에 열린 대회였다. 경복궁에서 열린 시민대운동회의 자전거경기에서 경쟁자였던 일본인이 몇 바퀴 남겨놓고 있을 때 엄복동 선수는 마지막 40바퀴를 다 돌아 이미 우승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그런데 돌연 주최 측에서 해가 졌다는 이유를 들어 경기를 중단시켰다. 불 보듯 뻔한 엄복동 선수의 우승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일본을 제압한 엄복동 선수의 인기는 하늘을 치솟을 만큼 대단했다. 일제강점기 나라 잃은 설움과 3.1운동 이후 무자비한 일제의 억압과 통제로 인한 울분을 엄복동 선수의 우승으로 달랠 수 있었다.

1910년부터 자전거 선수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던 엄복동 선수는 서른다섯 살이 되던 1920년 서울 장충단 대회를 끝으로 은퇴를 했다. 엄복동 선수의 영향으로 자전거 경기는 최고의 인기 스포츠가 됐으며 해마다 전국 곳곳에서 수많은 자전거 대회가 열렸다. 암울했던 시대 자전거 하나로 우리 국민들의 마음을 달래주었던 엄복동 선수는 국민적인 영웅이었다.

자전거 산업의 발전

1946년에는 서울의 자전거 수가 29,000여 대였는데, 다음 해에 52,000여 대로 급격하게 늘어났다. 이 무렵 자전거는 오늘날의 자가용과 같은 역할을 했다. 많은 직장인들이 출퇴근하면서 이용했고, 관공서에 드나드는 민원인들도 거의 대부분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시청과 같은 큰 기관이나 신문사 등에는 일정한 요금을 받고 자전거를 보관해주는 업체도 생겨났고 1950년대 후반에는 우리나라의 자전거 생산이 본 궤도에 올랐다.

  • 기아산업주식회사 자전거 생산 광경
  • 기아산업주식회사 자전거 생산 광경
    (1956)
  • 엑스플로 74자전거 행렬
  • 엑스플로 74자전거 행렬
    (1974)
  • 포항종합제철근로자 통근자전거 행렬
  • 포항종합제철근로자 통근자전거 행렬
    (1978)

오늘날 자전거는 용도가 매우 다양해져 상업용이나 소하물 운반에 쓰는 자전거, 통근·통학 및 장을 보는 데 쓰는 자전거, 어린이들이 타는 작은 자전거, 경주용자전거, 산악자전거 등으로 나눠진다. 가공기술의 발달로 알루미늄, 카본은 물론 티타늄 등 소재측면에서 비약적으로 발전하였고, 브레이크, 기어, 바퀴 등이 정밀하고 여러 기능을 갖추면서 다양한 가격대의 자전거들이 생산되고 있다.

  • 제9회 소년체육대회 전경, 자전거 경기
  • 제9회 소년체육대회 전경, 자전거 경기
    (1980)
  • 자전거 타는 어린이들
  • 자전거 타는 어린이들
    (1985)
  • 자전거로 출근하는 근로자
  • 자전거로 출근하는 근로자
    (1992)
(집필자 : 황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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