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예외 없이 13자리의 숫자를 부여받는다. 이 숫자는 한번 부여받게 되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거의 고치는 일 없는 자기만의 고유 식별 번호이면서 대한민국 국민임을 인정받는 숫자이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처음으로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은 사람은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였다. 1968년에 발급받은 주민등록번호는 지금보다 한 자리 적은 12자리로 박정희 대통령의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는 ‘100001’, 육영수 여사는 ‘200001’이었다.
이와 같은 주민등록제도는 같은 해 1월 21일 북한 특수부대인 124군부대 소속 무장 게릴라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한 일에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한국군 복장에 수류탄 및 기관단총으로 무장을 한 채 휴전선을 넘어 서울 잠입에 성공하지만 자하문에서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렸다. 이 사건 후 정부는 전 국민에게 단일 형태의 신분증을 나눠주어 필요할 때 신원을 정확히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야당의 반대가 있었지만 주민의 동태를 파악하고 남파 간첩 등 불온분자들의 색출이 용이하도록 하는 「주민등록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주민등록법 1차 개정으로 주민등록증이 도입되었고 1차 개정안의 시행으로 1968년 말까지 발급대상자 1,500만 여 명에게 각각 고유한 주민등록번호가 적힌 주민등록증이 발급되었다.
근대적 의미에서의 주민등록제도는 1942년의 「조선기류령(朝鮮寄留令)」에서 시작한다. ‘기류’란 본적지 이외의 곳에 주소를 두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일제는 본적지를 이탈해 90일 이상 다른 곳에 거주할 경우 반드시 거주 신고를 하도록 했으며 이를 어길 경우 강력한 제재를 가했다. 신분과 주거지를 의무적으로 신고하게 해 조선인의 인구동태를 파악한 「조선기류령」은 강제징용이나 징병 등 식민지 수탈 등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 마련되었다.
광복 후 1947년 미군정이 수많은 사람들의 유입과 이동을 파악하려 주민등록을 시행하려 했지만,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라는 지적에 따라 폐지됐다. 1949년 제주도에서는 양민증이 발급되었다. 양민증은 이름, 나이, 성별, 주소가 기록되어 있으며 제주 4.3사건 당시 일반인에게 발급되었다. 양민증이 없으면 안전이 보장되지 않았다. 6·25전쟁 중에는 주민등록제도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시·도민증 제도가 전국적으로 실시됐다. 이 시·도민증은 시·도 규칙에 따라 18세 이상 국민들에게 발급되었고 본적, 출생지, 주소 등이 기록되어 있었다. 이때에는 시·도민증 외에 거주지와 식품을 지원받기 위해 꼭 필요했던 피난민증명서, 한강을 건널 수 있도록 발급되었던 한강도강증, 장티푸스가 유행하는 지역을 오갈 때 필요한 장질부사접종증 등과 같은 증명서도 있었다.
1962년 종래의 기류제도를 개선해 「주민등록법」을 제정하고 시행하게 되면서 우리나라의 모든 주민은 시·군 단위로 주민등록을 하게 되었고 1968년 「주민등록법」이 개정되면서 지금의 주민등록제도가 제대로 정착되었다. 1970년 2차 개정 때는 주민등록증 발급을 의무화했으며 주민등록증을 신분 확인 용도로 사용하도록 법제화하였다. 이렇게 법령을 개정한 이유는 치안 상 필요한 특별한 경우에 주민등록증을 제시하도록 함으로써 간첩이나 불순분자를 용이하게 식별, 색출하여 반공태세를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이때부터 개정안에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지문날인제도도 시행되었다. 이러한 이유가 개인의 인권을 해친다는 반대의견도 있고 사람에게 번호를 붙여 관리한다는 것이 윤리적으로 타당하냐는 논란도 많았지만 주민등록제도는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주민등록법」에 따르면, 모든 주민은 30일 이상 거주할 목적으로 그 관할구역 안에 거주지를 가지는 경우에는 그날로부터 14일 이내에 주민등록을 하여야 한다. 하지만 30일 이상 살아도 거주할 목적이 없거나 영내에 기거하는 군인은 그가 속하는 세대의 거주지에서 등록해야 하며, 영외에 거주하는 군인은 영외거주지에서 등록해야 한다. 외국인 중 치외법권을 가지지 않는 외국인은 「출입국관리법」에 의한 외국인 등록을 함으로써 주민등록을 대신한다. 주민등록번호는 처음에는 12자리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지금처럼 13자리로 바뀐 것은 1975년 3차 개정을 통해서이다. 13자리 주민등록번호 앞의 6자리는 생년월일, 뒷부분 7자리는 성별과 지역코드, 검증번호로 이루어진다. 뒷부분 7자리 맨 앞부분은 성별을 나타내는데 1은 남자, 2는 여자이다. 2000년 출생자부터는 남자는 3, 여자는 4를 부여받았다. 그 다음 네 개의 숫자는 지역코드, 즉 출생신고지역, 출생신고 당일 접수 순서를 표시하고 있다. 맨 마지막 숫자가 ‘검증번호’로 생년월일을 포함한 앞 12개 숫자 모두를 특정한 공식에 대입해서 산출한다.
주민등록번호 체계는 처음 만들어진 이래 2016년까지 큰 변화 없이 계속 쓰고 있다. 그런데, 사기업이나 웹 사이트 등에서도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고 수집하면서 주민등록번호 도용, 주민등록번호를 포함한 개인정보의 유출 등의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이러한 부작용을 줄일 목적으로 정부에서는 아이핀(I-PIN)이라는 주민등록번호 부분 대체 수단을 개발하였지만, 이는 미봉책에 불과했다.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민간에서의 주민등록번호 및 과도한 개인정보 수집이나 이용을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결국, 2014년 8월부터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민간 기업이 웹 사이트 등에서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하지만, 잇따른 개인정보 유출 사고로 인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자 그 체계를 개편하자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주민등록번호 변경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은 주민등록법 조항은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 주민등록번호 유출 또는 오남용으로 인한 피해 등에 대한 고려 없이 번호 변경을 일률적으로 허용하지 않는 것은 그 자체로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에 대한 과도한 침해이다. 주민등록번호 변경은 일정한 요건을 구비한 경우 객관성과 공정성을 갖춘 기관심사를 거쳐 변경하도록 허용할 필요가 있다”는 2015년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한번 부여받으면 끝이었던 주민등록번호 변경도 2017년 하반기에는 가능해질 전망이다. 따라서 성폭력 또는 다른 이유로 정보유출 피해가 우려되는 사람은 규정된 절차에 따라 변경사유가 인정되면 지자체로 부터 새로운 번호를 부여받을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