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상징하는 5대 상징물에는 태극기, 애국가, 무궁화, 나라도장, 나라문장이 있다. 이 중 나라문장은 무엇일까? 나라문장이라 하면 쉽게 접할 수 없는 낯설고 딱딱한 느낌이지만,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곳에 나라문장이 있다. 그것은 바로 여권을 통해서이다. 여권 앞면에 보면 태극문양을 무궁화 꽃잎 5장이 감싸고 있고 대한민국 글자가 새겨진 리본이 보이는데, 바로 이것이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나라문장이다.
나라문장은 국가문장 또는 국장(國章)이라고 한다. 원래 문장은 서양에서 가문이나 단체 또는 국가의 계보와 권위를 상징하는 장식적인 표시로 많이 이용되고 발달되어 왔다. 문장은 어느 한 순간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동안 한 국가가 변화하고 발전하면서 그 나라의 역사, 문화, 사상이 스며들어 만들어졌다. 그래서 나라문장에는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영속적인 가치도 함께 갖고 있다. 이런 이유로 나라문장에서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원래 문장이라고 하는 것은 주로 서양에서 많이 사용되어 왔었다. 서양에서 문장이 가장 많이 사용된 것은 중세부터였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앞선 시대인 고대국가 시대에 나라와 왕의 상징이 있었다. 공화정 시대 말기 로마의 정치가 마리우스가 집정관(執政官)으로 있을 때는 독수리를 상징으로 삼았었다. 그 후 로마의 상징은 용으로 바뀌었고, 이것이 서로마 황제의 기에 다는 상징이 되었다. 또한 고대 그리스 로마에서는 전투에 참여했던 병사들이 방패에 자기들만의 문장을 새겨 적과 아군을 구별하기도 했다.
오늘날 볼 수 있는 서양 문장은 12세기 초, 기사들이 무예 대결을 하거나 전쟁터에 나갔을 때 방패나 코트에 단 상징이 있었는데, 그것이 시초가 되었다. 1127년 영국왕 헨리 1세가 아들에게 문장이 달린 방패를 주었는데, 그것이 가장 오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문장은 왕실의 권위를 강조한 영국의 문장이 특히 유명한데, 처음에는 왕족만 사용했다가 13세기 중반에는 하급 귀족이나 기사까지 사용하게 되었다. 15세기 무렵에는 도시나 부대 등 단체도 문장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문장들은 유럽 국가들이 식민지를 확장하면서 전 세계로 전파되기 시작해 최근에는 넓은 의미의 문장이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문장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아시리아의 황소, 로마의 독수리와 용, 아테네의 올빼미, 영국의 사자, 러시아의 독수리, 프랑스의 백합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사자문장은 제1차 십자군원정 이래 유럽에 도입되어 기사의 용맹함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여겨졌다. 특히 영국이나 스코틀랜드 왕가의 문장에 사자를 많이 사용했는데, 3차 십자군 전쟁에 참가한 리처드 1세는 사자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사자를 문장의 상징으로 사용한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이후 현재까지 영국 왕실은 물론 잉글랜드 축구팀도 사자를 상징으로 쓰고 있다.
이처럼 문장에는 왕이나 주권자 혹은 국가의 문장, 공적인 일을 했을 때 영주로부터 허락된 문장, 성직자나 도시, 대학, 길드와 그 밖의 단체의 문장, 특별한 가문에 속하는 세습적인 문장, 결혼으로 이루어진 문장 등이 있다.
우리나라의 나라문장은 우리나라의 권위를 상징하는 장식적인 표시로, 1963년 12월 19일 「나라문장규정」을 제정하면서 사용하게 되었다. 원래는 국한문을 혼용해서 사용했는데 1970년에 개정되면서 한글로 변경되었다.
현재 우리의 나라문장은 태극문양을 무궁화 꽃잎 5장이 감싸고 ‘대한민국’ 글자가 새겨진 리본으로 그 테두리를 둘러싸고 있다. 나라문장은 외국기관에 발송되는 중요문서, 훈장 및 대통령표창장, 재외공관의 건물, 국가공무원 신분증, 국·공립 대학교의 졸업증서 및 학위증서, 여권 등에 대한민국의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정부 소유의 선박 및 항공기, 화폐, 기타 각 중앙행정기관의 장이 국가표지를 필요로 한다고 인정하는 문서·시설 또는 물자에 사용할 수 있다. 나라문장은 용도에 따라 휘장 또는 철인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필요에 따라 일정한 비율로 규격을 확대·축소할 수 있다. 또 문서의 경우에는 휘장이나 철인이 문서의 중앙 상단부에 오도록 해야 한다. 문장을 보면 그 나라를 알 수 있듯이, 문장을 법제화하는 일도 나라마다 달라 그 나라의 상태를 알 수 있다. 보통 나라문장은 헌법이나 법률 등으로 규정하거나 관행처럼 인정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무궁화, 태극기, 애국가, 나라문장 등 국가를 상징하는 것들을 모아 「국가상징 통합법」을 제정하자는 움직임도 있다.
태극문양과 무궁화를 기초로 하여 만들어진 우리나라 문장에 담긴 의미를 보면 이 둘 모두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이미지라 할 수 있다. 우선 태극문양은 태극기에서 볼 수 있는데, 중국의 고대 사상 중 음양사상과 결합한 것으로 만물을 생성시키는 우주의 근원을 뜻하고 있다. 즉, 나라문장 속의 태극문양은 우리나라가 음과 양이 조화롭게 발전하여 우주의 근원처럼 세상의 중심에 서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또한 무궁화는 우리 민족이 아주 오래 전부터 귀하게 여기던 꽃이었다. 오랜 세월동안 우리 민족과 함께 해 온 무궁화는 애국가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노래 가사가 등장하면서 국민들의 사랑을 더욱 많이 받게 되었다. 무궁화는 이름처럼 ‘영원히 피고 또 피어 지지 않는 꽃’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 꽃으로 우리 민족의 강인하고 끈질긴 생명력을 잘 드러내주는 꽃이기도 하다. 조선에서도 원래 문무관의 복식이나 예복에 무궁화 문양이 있었으나, 구한말 조선왕실에서 무궁화 대신 오얏꽃(이화, 李花)을 왕조의 문장으로 삼아 각종 공문서에 이 문양을 쓰기도 하였다. 오얏꽃 모양의 문장은 창덕궁 용마루나 덕수궁 석조전에 이 문장의 형태가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