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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곡진 역사와 함께 한 서울의 얼굴 청계천

‘맑은 개울’이란 뜻을 가진 개천(開川)은 청계천의 본래 이름이다. 서울 사람들의 놀이터이자 빨래터였던 이곳은 서울 시내 중심부를 뚫고 중랑천과 합하여 한강으로 들어간다. 10.84Km의 물길. 그러나 냇가가 좁아서 장마 때마다 물이 범람해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를 끼치며 많은 사람의 울분을 사기도 했다. 그런 이유와 함께 청계천은 1958년부터 1977년까지 복개공사에 들어갔다.

청계천을 덮다.

“시내에서도 교통량이 가장 폭주하는 종로와 을지로 사이를 흐르고 있는 청계천을 덮게 되면 도심지의 교통량은 훨씬 줄어들 것이며 시내의 수많은 하수구로부터 청계천으로 흘러나오는 오물이 시민의 보건과 위생을 해롭히는 폐해는 줄어들 것인데, 허(허정)시장은 청계천이 완전 복개되면 이 길을 시민의 "드라이브 웨이"로 만들어 양측에 가로수를 심어 풍치를 돋울 것이라고 말하였다.”(「청계천(淸溪川) 덮을 계획(計劃)」, 경향신문 1958년 3월 29일자 기사)

청계천 덮개공사 참고 이미지
청계천 덮개공사(1958)

그렇게 청계천 위로 도로를 만들고 그 위로 광교에서부터 마장동까지, 총 길이 5.6㎞에 이르는 고가도로가 건설되었다. 양측에 가로수를 심어 풍치를 돋울 것이란 계획이었는데, 이는 계천 주변에 자리 잡은 판자촌을 철거하겠다는 의미였다. 6.25전쟁 후 집을 잃은 사람들과 피란민들의 주거형태였던 판잣집. 1969년에는 주택 150채가 소실되는 숭인동 판자촌 화재사건이 발생하기도 할 만큼 판자촌은 화재에 무방비한 상태였다. 1960년대에 판잣집 정비작업을 대대적으로 벌인 사람은 당시 김현옥 서울시장이었다. 그는 판잣집을 철거해 철거민들을 시외로 이주시키거나 서민아파트를 지어 주거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청계천 복개 사업계획서 참고 이미지
청계천 복개 사업계획서(1957)

그렇게 청계천 복개공사를 통해 판자촌이 철거되면서 청계천을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되는데, 청계천 변 판자촌에서 ‘재봉틀(미싱)’ 한 두 대로 옷을 만들어 판매하던 사람들이 의류공장으로 흡수되면서 청계천은 1970년대 상공업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의류공장과 시장이 복합적으로 형성된 만큼 유동인구가 많았고 대규모 집회가 이뤄지거나 대통령 선거유세에 빠질 수 없는 장소로, 1980년대부터 청계천은 서울 시민의 광장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자가용 급증과 맞물려 시민의 ‘드라이브 웨이’가 되겠다던 청계천 도로는 상습 정체구간으로 변모했다. 시장이 형성되었던 만큼 불법주차도 성행해 1990년대 청계천은 차량 정체로 몸살을 앓게 되자 서울시는 1999년 청계천 무단주차를 뿌리 뽑겠다는 단속강화 의지를 밝히기도 했고 전용주차 지역을 지정하는 방침을 내놓기도 했다.

거기다 복개된 이후 도로 밑에서 흐르고 있는 청계천의 수질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1958년 복개 전부터 이미 폐천(廢川)이었던 청계천을 과연 이대로 놔둬도 괜찮은 지에 대한 우려가 쏟아졌다. 다행히 1984년 언론사와 학계의 연구와 취재 결과, 복개 전보다 청계천의 수질은 양호한 수준으로 변모하였으며, 나름의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서울의 광장, 청계천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 무분별한 성장과 개발보다 환경과 문화를 중요하게 생각하자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청계천 주변 건물들의 노후화로 강남과 강북 지역 간의 경제적, 문화적 불균형 역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서울시는 서울의 얼굴을 인간과 자연, 문화가 공생하는 환경친화적인 도시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혔는데, 그것이 청계천 복원사업의 시작이었다. 이로서 청계천의 고가도로는 헐리고, 도로 밑으로 흐르던 청계천은 2005년 47년 만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정조의 화성행궁 모습을 그린 단원 김홍도의 그림을 도자 벽화로 재현한 정조 반차도(班次圖)와 서울 시민 2만 명이 직접 쓰고 그린 타일로 꾸며 놓은 소망의 벽 등 이제 청계천은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서울의 명소가 되었다. 원래 청계천에는 모두 24개의 다리가 있었는데, 이 중 22개의 다리(인도교 7개, 차도교 15개)가 2005년 복원되었다. 서울시는 2050년까지 2005년 복원 당시 미흡했던 부분을 개선·보완하고 현재의 인공 하천을 자연 하천으로 돌릴 방법을 모색하는 등 다양한 청계천 정비사업을 진행 중에 있다.

항공촬영_서울 청계천 참고 이미지
항공촬영_서울 청계천(1958)
서울 청계천 건설사항 참고 이미지
서울 청계천 건설사항(1960)
제2청계교 개통식 참고 이미지
제2청계교 개통식(1961)
서울 청계천 복구공사 참고 이미지
서울 청계천 복구공사(1965)
서울 청계천 복구공사 참고 이미지
서울 청계천 복구공사(1965)
청계천 복원 기공식 참고 이미지
청계천 복원 기공식(2003)

좁은 물길 때문에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준 수마(水磨)로, 도로확충과 개발 여파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도 했던 청계천.
복개와 복원 작업을 거치며 이제는 서울 도심의 대표적 휴식공간이 되었지만, 청계천의 갈 길은 아직도 멀기만 하다. ‘맑은 개울’이란 본래 이름에 어울리는 옛 모습을 되찾길 기대해 본다.

(집필자 : 최유진)

참고자료

  • 경향신문, 「불에 타버린 신설동 청계천 일대 판자촌」, 1965.3.15.
  • 경향신문, 「서울시 살림살이 시민의 돈 어떻게 쓰이나」, 1965.1.28.
  • 경향신문, 「청계천 그 밑 어떻게 변했을까」, 1984.1.30.
  • 경향신문, 「淸溪川(청계천) 덮을 計劃(계획)」, 1958.3.29.
  • 네이버 지식백과 (http://terms.naver.com)
  • 신정일, 『새로 쓰는 택리지 (숨겨진 우리 땅의 아름다움을 찾아서, 서울 경기도)』, 다음생각, 2012.
  • 전상인, 『아파트에 미치다 –현대 한국의 주거사회학』, 이숲,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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