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렁절렁 소리를 내며 조선달이 그 날 산 돈을 따지는 것을 보고 허생원은 말뚝에서 넓은 휘장을 걷고 벌여놓았던 물건을 거두기 시작하였다. 무명필과 주단 바리가 두 고리짝에 꼭 찼다. 멍석 위에는 천 조각이 어수선하게 남았다. 다른 축들도 벌써 거진 전들을 걷고 있었다. 약빠르게 떠나는 패도 있었다. 어물장수도 땜장이도 엿장수도 생강장수도 꼴들이 보이지 않았다. 내일은 진부와 대화에 장이 선다. 축들은 그 어느 쪽으로든지 밤을 새며 육칠십 리 밤길을 타박거리지 않으면 안 된다” 1930년대 강원도 평창군 봉평 일대를 떠돌아다니며 물건을 팔던 장돌뱅이들의 삶과 애환을 그린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중의 일부이다. 이 소설에 나오는 봉평장은 강원도 평창군에 있던 오일장의 하나로 한 때 제일 큰 장터였다, 특히, 교통이 불편했던 과거에는 허생원과 같은 장돌뱅이들이 5일장마다 돌아다니며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팔았다. 5일장은 고장의 중심지였으며 단순히 물건이 오고가는 장소가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 고장의 소식을 전하고 전해 듣는 정보 교환의 장이기도 했다.
그러나 교통의 발달과 소비형태 등의 변화로 많은 전통시장이 제자리를 잃어갔고 봉평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정부에서도 전통시장을 살리겠다며 다양한 정책을 펼쳤으며 전통시장도 살아남기 위해 나름대로의 자구책을 세웠다. 그리고 2014년 4월 봉평장은 강원도와 한 기업체가 공동으로 진행한 전통시장 활성화 프로젝트로 새롭게 태어났다. 봉평의 대표 특산물인 메밀을 소재로 다양한 먹거리를 만들고 봉평장을 알릴 수 있는 로고와 스티커, 상인별 명함도 만들었다. 더불어 상품별 특성과 손님의 눈높이에 맞게 판매대와 천막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등 전통시장을 찾는 손님들이 불편해했던 부분을 적극적으로 개선했다. 그 결과, 봉평장은 방문객과 점포 수, 평균 매출이 그 전보다 30% 이상 증가하였다. 「메밀꽃 필 무렵」의 허생원을 지금 봉평장에서 볼 수는 없지만, 전통시장이 갖고 있는 넉넉한 인심과 푸근한 정만은 여전하다.
광복 당시 남한에는 상설시장 34개와 정기시장 407개 도합 441개의 재래시장이 있었다. 시장경영진흥원의 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전통시장은 2005년 1,660곳에서 2010년 1,517곳으로 감소했다. 반면, 대형마트는 2005년 265곳에서 2010년 442곳으로 늘어났다. 즉, 전통시장이 사라진 만큼 대형마트가 증가했다는 것이다.
「메밀꽃 필 무렵」에서처럼 우리의 전통시장은 오일장이 대부분이었다. 지금은 대다수 전통시장이 매일 열리는 상설시장으로 바뀌었지만, 아직 지역 곳곳에 5일장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제주민속5일장이다. 제주민속5일장은 조선말 보부상들의 거래장소로 이용되어 오다가 1905년 현재의 관덕장 앞 광장에 개장되었다. 그후 1954년 제주시 이도동에 남문 오일장으로 개장되었다가 우여곡절 끝에 1998년에 이르러 현재의 두도1동 1204번지 일대로 영구 이전하였다. 제주민속5일장이 열리는 날은 끝자리에 2와 7이 들어가는 날이다. 장날에는 제주시 대형마트의 매출이 감소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며 특히 관광객들도 많다. 제주5일장만의 특별한 모습은 ‘할망장터’라는 것이다. 이 할망장터는 65세 이상 노인들이 직접 채취한 채소, 약초, 직접 만든 메주 등 지역 특산물을 직접 판매하는 곳이다.
이러한 5일장과 달리 우리의 삶과 역사를 함축하고 있는 상설시장으로 전통시장이 있다. 사전적인 개념으로 전통시장이란 상업기반시설이 오래되고 낡아 개수, 보수 또는 정비가 필요하거나 유통기능이 취약하여 경영 개선 및 상거래의 현대화 촉진이 필요한 장소를 말한다. 「재래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이 「전통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으로 변경·시행되면서 재래시장의 명칭도 전통시장으로 변경되었다.
과거 재래시장이라 불리던 시절의 전통시장은 지저분하고 불친절하다는 이미지 탓에 소비자들의 발길이 줄었고, 상인들의 경제상황도 좋지 않았다.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0년대 초반부터 전통시장 살리기 정책을 시행해 왔다. 비가림막 설치, 주차장 조성 등 전통시장의 시설현대화에도 집중하고 2009년 7월에는 전통시장의 수요 진작을 위한 목적으로 우리나라의 전통시장이면 어디에서든지 공통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상품권도 발행하였다. 정부의 노력과 더불어 전통시장의 끊임없는 변신이 더해져 전통시장은 새롭게 탈바꿈하고 있다. 높은 천장과 밝은 조명을 지닌 시장 내부는 습한 장마철에도 불구하고, 냉·난방 시설이 완벽히 갖춰져 있어 시원한 에어컨을 쐬며 쇼핑을 즐길 수 있다. 무빙워크가 각층을 이어주고 있어 비오는 날이면 우산과 좁디좁은 골목에서 흙이 묻지 않을까 조심하는 모습도 찾아볼 수 없다. 휴식공간은 물론 쇼핑카트와 자율 포장대, 문화센터와 옥외주차장까지 자리잡고 있다. 이것은 최첨단 시설을 갖춘 국내 최초의 마트형 전통시장인 군산공설시장의 모습이다. 군산시 신영동에 위치한 군산공설시장은 1913년 군산선 개통과 더불어 인근 식료품상들이 모여들면서 1918년 시장이 형성됐다. 100여 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군산공설시장은 유통구조와 소비자의 구매형태의 변화 등으로 매출이 급격히 감소하면서 문을 닫기 직전까지 갔다. 그러나 시장을 살리기 위해 시장상인들과 지자체가 나서서 모든 것을 바꾸었다. 2010년 국비 97억 원, 시비 193억 여 원을 투자해 시설 현대화 사업을 시작했다. 기존시장의 건물노후화에서 오는 위생불량과 주차장 부재 등을 수리하고 편의시설을 대폭 확충했다. 특히, 대형마트에서는 볼 수 없는 대장간, 제분·제환소 등 전통 업종 점포를 비롯해 한약재 점포도 자리 잡고 있어 전통시장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군산공설시장은 국내 최초의 마트형 전통시장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매출도 껑충 뛰었다.
군산공설시장의 사례에서 보여준 것처럼, ‘인심’ 빼고는 모든 것을 바꾸기 시작한 전통시장은 매출 감소세가 2011년 7.9%에서 2013년 1.3%로 둔화했으며 특히, 정부에서 지원한 시장은 매출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한 방안도 계속되고 있는데, 2015년부터는 「전통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전통시장의 입지, 역량 등에 따라 고유의 특성을 살리는 시장 육성사업을 시작했다. 이 시장육성사업은 골목형시장, 글로벌명품시장, 지역선도시장 등으로 시장을 특성화하는 것이다. 골목형시장은 도심과 주택단지에 위치한 전통시장으로 각 시장만의 고유의 개성과 특색을 통해 지역 주민들과 어우러지는 시장을 말하며, 글로벌명품시장은 우리나라 특유의 활기와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국제적 관광명소로 외국인이 가보면 좋을 대한민국의 대표 전통시장을 말한다. 이밖에 상품·교육·문화의 동시 소비가 가능한 지역 대표시장을 중심으로 인근상권 및 지역사회의 동반성장을 선도하는 지역선도시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