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휴가철이면 인천공항은 해외여행을 위해 출국하는 사람들로 붐빈다. 시간과 약간의 여유만 있다면 해외여행은 국내여행 못지않게 일반적인 여가문화로 여겨진다. 서점의 여행코너는 해외여행 가이드북으로 넘쳐난다. 여행작가라는 이름의 직업이 생겨날 정도로 최근 대한민국은 여행의 열풍 속에 휩싸여 있다. 그러나 불과 3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 해외여행은 공무원이나 기업의 공무나 출장이 아니면 거의 어려운 일이었다.
요즘 젊은 세대들에겐 거의 믿기 힘든 이야기지만, 한 세대 전만 해도 관광 목적의 출국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일반인이 해외에 나가려면 기업의 출장, 학생의 유학, 해외취업 등 특별한 목적이 있어야 했다.
광복 이후 1980년대까지 순수 목적의 해외여행을 위한 여권은 아예 발급되지 않았다.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여행 여권을 발급하지 않은 것은 국민들이 해외에 나가 소비를 할 만큼 국내 경제사정이 좋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폐쇄성은 국가를 고립시켰고 국민의 안목을 떨어뜨렸다. 폐쇄적인 국가의 경제성장은 한계가 있었다. 결국, 정부는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을 유치하면서 국제화, 세계화, 개방화의 물결이 밀려들자 해외여행 자유화에 대해 검토하게 되었다.
정부는 1983년 1월 1일부터 50세 이상 국민에 한하여 200만원을 1년간 예치하는 조건으로 연1회에 유효한 관광여권을 발급하였다. 사상 최초로 국민의 관광목적 해외여행이 자유화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연령과 재산에 기준을 둔 제한적 해외여행 자유화였다. 이후 해외여행이 가능한 연령대를 해마다 조금씩 낮춰갔다.
해외여행의 전면적 자유화는 1989년에 이루어졌다. 88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른 자신감과 올림픽을 통한 국제화가 해외여행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켰고, 정부도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이는 1980년대 후반 우리나라 경제의 성장과 국민의 생활수준 향상이 큰 이유가 되었다. 또한, 1987년 민주화 이후 사회 전반의 경직된 분위기가 완화되고 자유로워진 것도 한 몫하였다.
해외여행이 자유화되자 가장 먼저 이를 반긴 것은 여행사였다. 여행사들은 각종 여행 패키지들을 상품으로 내놓았고, 이에 호응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전까지 제주도나 설악산으로 가던 신혼여행을 해외로 가게 되었고, 각종 친목 여행이나 효도관광 등도 유행하였다.
해외여행 자유화 바람을 가장 적극적으로 탄 것은 대학생들이었다. 이전까지 억눌려있던 대학가의 문화는 해외여행 자유화와 함께 다소간 숨통이 트였다. 1989년 해외여행이 전면 자유화 되자마자 사상 최초로 출국자 수가 100만 명을 돌파했다. 대학생들이 방학을 이용해 연수와 배낭여행을 떠나는 사례가 급증했던 것이다. 1990년 9월 8일 한국관광공사는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20대의 해외여행 증가율이 가장 높았다고 발표하였다. 이러한 수요를 타고 배낭여행 전문 여행사가 속속 나타나 대학가를 중심으로 치열한 마케팅 활동을 펼쳤다.
1989년 해외여행은 자유화되었지만, 해외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통과해야할 다소 경직된 과정이 있었다. 그것은 반공교육이었다. 당시 여권 신청자는 한국관광공사 산하 관광교육원, 자유총연맹, 예지원 등에서 수강료 3천 원을 내고 하루 동안 소양교육을 받아야 했다. 해외에서의 한국인 납북사례와 조총련 활동 등에 관한 안보교육 등을 받고 교육필증을 제출해야 여권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이러한 반공교육은 늘어나는 관광객의 숫자를 감당할 수 없는데다가 상당히 요식적이어서 결국 1992년에 폐지되었다. 한편, 소양교육 폐지와 함께 신원조회 절차도 대폭 간소화됐다. 기존에 5일이 걸리던 신원조사를 여권발급 신청시 전산 확인을 거쳐 즉시 끝낼 수 있도록 했다.
정부는 늘어나는 관광객을 통제하기보다는 외화낭비와 밀수품 문제, 사치소비 풍토 등에 대해서는 경계하였지만, 해외관광객의 기하급수적인 증가를 막지는 않았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해외여행 산업은 날로 성장 일로를 걸었다. 요즘은 1990년대의 ‘청춘이여 무조건 떠나라’, 혹은 관광지 수집식의 여행행태를 벗어나 개인의 취향에 따르는 다양한 해외여행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여행사 주도의 패키지 여행보다 스스로 스케줄을 만들어가는 자유 여행객들도 점차 증가하는 추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