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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브 미 초콜릿(Give me chocolate)에서 한강의 기적으로 국제연합 한국재건단

“1950년 12월 1일 국제연합총회 제314차 본회의에서 통과한 410(5)호 결의에 따라 국제연합한국재건단이 경제재건의 과업을 위하여 대한민국 국민에게 원조를 공여하는 목적으로 설립되었으므로 여사한 원조의 요청은 긴급하므로 부흥재건계획의 소기한 성과를 가장 효과적으로 수행하여 대한민국경제원조에 관련된 기타 계획과 긴밀히 조정되기를 위하여 그 기획, 전진, 수행에 관한 일반정책과 절차를 대한민국 정부와 국제연합한국재건단이 상호 제정할 것을 희망하므로...(하략)”(1954년 5월 ‘한국경제원조계획에 관한 대한민국과 국제연합한국재건단과의 협약’ 중에서)

한국 경제원조계획에 관한 대한민국과 국제연합한국재건단과의 협약참고 이미지
한국 경제원조계획에 관한 대한민국과 국제연합한국재건단과의 협약(1948)

6.25전쟁 중 유엔의 원조 결정

현재 풍요를 구가하는 우리의 삶에서 불과 60여 년 전 우리가 세계 최빈국으로 국제연합(UN)으로부터 원조를 받았다는 사실은 믿기지 않는 일처럼 여겨진다. 6.25전쟁을 직접 겪은 노년층 정도나 국제원조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미군에게 달려들며 ‘기브 미 초콜릿’을 외치고 배급된 밀가루로 끓인 수제비, DDT 살포 등의 기억은 이미 한국 현대사 저 너머의, 있지도 않았던 거짓말처럼 여겨질 정도이다.

그러나 분명 우리나라는 1950년대 당시 너무나 가난했고 국제적 원조가 없었다면 국민 전체의 삶이 매우 어려운 위기에 내몰려 있었다. 이런 위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도록 밑거름을 제공한 것이 국제연합한국재건단(United Nations Korean Reconstruction Agency), 약어로 운크라(UNKRA)이다.

이승만 대통령 UNKRA 개소식 참석연설 참고 이미지
이승만 대통령 UNKRA 개소식 참석연설
(1951)
국제연합한국재건단 양곡 도입 참고 이미지
국제연합한국재건단 양곡 도입(1953)
국제연합한국재건단장 및 막료일동에 대한 감사장 수여식 참고 이미지
국제연합한국재건단장 및 막료일동에
대한 감사장 수여식(1966)

UNKRA는 6.25전쟁 중 파괴된 한국의 재건을 목표로 세워진 UN 산하의 특별 임시 기구였다. UNKRA는 1950년 12월에 열린 UN 총회의 결의에 따라 세워졌다. UNKRA는 기존의 국제연합한국통일부흥위원단(UNCURK)과 함께 전후 한국의 복구를 도운 대표적인 UN 기구였다. 사업은 한국 정부와 긴밀한 협조 아래 이루어졌으며, 부분적으로 UNCURK의 감독 아래 있었다. UNKRA를 이끈 사람은 전쟁 기간 동안 미 제1군단장과 제9군단장을 역임하고 퇴역한 쿨터(John Coulter) 장군이었다. 1951년 UNKRA는 미국과 UN 등이 제공한 4,200만 달러의 지원금과 3,000만 달러 규모의 구호물자, 1,000만 달러 상당의 원료물자 등을 한국에 전달하고 집행하는 것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국제연합한국재건단이 수행한 일

UNKRA의 설립 목적은 6.25전쟁으로 붕괴된 한국경제를 전쟁 전 수준으로 회복시키는 재건사업이었다. 그러나 1951년 결성 당시 한창 전쟁 중이었던 한반도 땅에서 UNKRA의 지원물자를 들여올 항구와 운송시설의 거의 없다시피 하였다. 당시 전선 상황이 군사물자 운송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전쟁의 포화가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결국 UNKRA의 활동은 굶어 죽어가는 민간인들에 대한 긴급구호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마저도 유엔군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1951년 당시 우리 국민은 그야말로 아사상태에 이를 만큼 굶주려 있었고 전쟁통에 식량은 너무나 부족했다. UNKRA의 민간 긴급구호는 당시 우리 국민들에게 가뭄의 단비 같은 일이었다.

UNKRA가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1953년 정전이 체결된 이후였다. 이때부터 UNKRA는 1958년 7월 1일 활동을 종료할 때까지 총 122,084,000달러의 계획된 물자를 한국에 지원하였다. UNKRA는 식량뿐만 아니라 민수물자를 들여와서 민생을 안정시켰고, 인플레이션을 수습하였다. 이들이 주력한 일은 한국의 산업·교통·통신시설의 복구와 주택·의료·교육시설의 개선이었다. UNKRA의 원조에 의해 탄광이 개발되었고, 인천판유리공장, 문경시멘트공장, 국립의료원 등이 건설되었다.

한국 재건을 위한 UNKRA의 활동 참고 이미지
한국 재건을 위한 UNKRA의 활동(1957)

UNKRA는 우리나라의 재건에 많은 도움을 주었지만, 부작용도 있었다. 활동기간 동안에 책임과 관할권의 문제, 관료주의, 파벌주의 등으로 인해 유엔군사령부 및 미 경제원조처와 마찰을 빚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부작용 속에서도 UNKRA의 원조가 있었기에 우리나라는 전쟁 후 극한의 가난이라는 상황을 수습하고 국가를 새롭게 일으켜 세울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최근에는 UNKRA의 원조로 설립되었던 국립의료원이 해외 의료취약 국가를 지원하는 등 이제우리나라도 외국에 도움을 줄 만큼 발전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집필자 : 김정미)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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