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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으로 대한적십자사의 적십자회비 모금 용지를 받은 적이 종종 있을 것이다. 대한적십자사는 여러 구호단체 중 그 역사가 깊은 단체이며 국가의 주관 아래 운영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는 사회봉사와 보건사업 특히, 국내․외 이산가족 찾기운동을 벌여나가고 있다.

남북의 이산가족 상봉문제가 대두될 때 마다 우리는 대한적십자사의 이름을 뉴스에서 듣게 된다. 1970년대부터 대한적십자사는 줄곧 남북한 이산가족의 만남을 주관해 왔다. 중장년층은 1970년대와 80년대 활발하게 이루어진 남북 적십자대표 간 회의에 대한 소식을 뉴스에서 접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1983년 전 국민과 세계인들의 심금을 울린 이산가족 찾기운동도 대한적십자가 주관하였으며, 남북한 상호 방문과 이산가족 상봉을 이루어낸 것도 대한적십자사의 성과였다.

대한적십자사의 역사

적십자사는 원래 세계적인 기구로, 앙리 뒤낭(Jean Henri Dunant)의 제안으로 창설되었다. 1859년 앙리 뒤낭은 솔페리노 전쟁의 참상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았다. 그는 제네바로 돌아가 전쟁의 참상과 그의 체험을 『솔페리노의 회상』이라는 책으로 엮어 1862년 11월에 출판했다.
이 책 속에서 뒤낭은 다친 병사를 간호하기 위한 자격 있는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된 구호단체를 나라별로 결성할 것을 제안했다. 그의 제안은 여러 나라들에서 받아들여져 1863년 국제적십자가 설립되고 스위스 제네바에서 적십자조약이 체결되었다. 적십자사는 전쟁터에서 일어나는 의료행위에 대해 적군과 아군을 막론하고 중립성을 인정하고 보호하는 등의 구호활동과 사회봉사활동에 대해 국가와 이념을 초월한 봉사활동을 약속하였다. 흰 바탕에 붉은색 십자가를 새겨 넣은 상징을 표시하도록 하였다.

우리나라 적십자운동의 역사는 19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적십자는 개화파 인사들에 의해 우리나라에 소개되었고, 적십자사 설립에 대한 움직임이 일어났다. 1903년 고종은 이런 분위기를 받아들여 훈령을 내리고 적십자사 창설을 지시하였다. 우리나라의 적십자사는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적십자 회의에 주프랑스 공사가 처음 참여하여 국제무대에 명함을 내밀었다. 이후 적십자사는 1905년 10월 27일 고종황제 칙령 제47호 「대한적십자사 규칙」 을 반포함으로써 국가 수준의 기틀을 갖추게 되었다. 고종은 ‘널리 구제하고 사랑하라’고 적십자사의 설립 목적을 밝혔다.

그러나 이 적십자사는 일제의 침략에 의해 오래 가지 못하고 비운의 종말을 맞는다. 일제의 의해 강제로 병합되기 1년 전인 1909년 일본은 대한적십자사를 폐지하였고, 일본적십자사의 조선본부를 운영하였다. 대한제국기 만들어진 적십자사의 명맥은 1919년 4월 중국 상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면서 이어져나갔다. 1919년 7월 ‘대한적십자회’가 「임정 내무부령」 제62호에 의해 설립인가 되었으며, 1919년 11월에는 대한적십자회 총회가 개최되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의하여 부활된 대한적십자회는 항일 무장투쟁을 인도적 측면에서 지원하기 위한 태세를 갖추고 외국의 동포환자를 도왔다.

1945년 광복이 되자 대한적십자사를 재건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되기 전인 1947년 임시정부의 적십자사를 이어 조선적십자사가 설립되었다가 대한민국 정부수립에 따라 1949년 대한적십자사가 재조직되었다.

대한적십자사 제1차 회원 모집에 관한 건 참고 이미지
대한적십자사 제1차 회원 모집에 관한 건(1949)

1949년 설립 이후 대한적십자사는 이듬해 일어난 6.25전쟁에서부터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1951년 서울 적십자병원에 임시 구호병원을 설치하였고, 1952년 2월 6일 휴전회담에서 양측의 적십자단체로 구성된 합동기구가 포로수용소를 방문하여 포로송환에 협조하는데 합의하였다. 1953년 포로송환 과정에서 대한적십자사는 공동 UN 적십자단 일원으로 활약하였다. 그 후 1955년에는 국제적십자사에 74번째 국가로써 정식 가입하였다.

대한적십자사의 활동

대한적십자사는 구호사업과 지역보건사업, 사회봉사사업, 혈액사업, 청소년 관련 사업, 국내․외 이산가족 찾기사업과 남북적십자회담, 원폭피해자 복지사업 등을 벌이고 있다. 이 중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사업 중에는 헌혈운동이 있다, 1958년 국립혈액원을 인수한 대한적십자사는 대한적십자사혈액원을 개원하여 국민적 운동으로 헌혈운동을 전개해 오고 있다. 헌혈은 제2차 세계대전 전후에 세계 적십자 활동으로 시작되었고, 그 후 적십자사 연맹에 속하는 각국 적십자사로 확산되었다. 대한적십자사는 주요 도시에 있는 적십자혈액원에서 헌혈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의 대표적인 활동으로는 국내․외 이산가족 찾기사업과 남북적십자회담을 꼽을 수 있다. 6.25전쟁과 분단이라는 비극적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에서 이산가족문제는 이념과 정치를 넘어 인도적 차원에서 시급히 해결해야할 문제였다.

적십자사의 활동 참고 이미지
적십자사의 활동(1961)
대한적십자사에서 설치한 탁아원 참고 이미지
대한적십자사에서 설치한 탁아원(1962)
대한적십자사 수재민 구호품 및 구호미전달 참고 이미지
대한적십자사 수재민 구호품 및 구호미전달
(1964)
대한적십자사 창립10주년 기념식 참고 이미지
대한적십자사 창립10주년 기념식(1959)

남북적십자회담과 이산가족 상봉

1971년 8월 대한적십자사는 KBS 방송을 통하여 북한 조선적십자회에 남북한 간의 이산가족 찾기를 위한 적십자회담을 개최할 것을 제의하였다. 대한적십자사는 이 제의에서 남북 적십자사가 협력하여 남북으로 흩어져 살고 있는 1,000만 이산가족의 생사와 소재를 확인하고 그들에게 소식을 알려 주며 재회를 주선하는 등 이산가족 찾기운동의 취지를 밝혔다. 북한 측도 평양방송을 통해 남북적십자회담 개최에 동의했다. 이에 남북한 적십자사는 판문점 등에서 만나 이산가족 찾기에 대한 회담을 시작하였다. 제1·2차 회담에서 남북이산가족과 친척들의 주소 및 생사확인, 자유로운 방문과 상봉, 자유로운 서신왕래, 자유의사에 의한 재결합과 기타 인도적으로 해결할 문제 등 5개 항의 의제에 대하여 합의하였다. 그러나 양측은 사안별로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교착상태에 빠졌다.

1983년에는 대한적십자사 주관으로 6.25전쟁 기간에 헤어진 가족을 찾는 프로그램이 KBS를 통해 방송되었다. 이 방송은 처음에는 3시간 단발성으로 방송되었는데, 이산가족들의 폭발적인 반응과 요구로 1983년 6월 30일부터 11월 14일까지 453시간 45분 동안 생방송으로 방영되었다. 이 기간 동안 가족을 만나기 위해 여의도를 찾은 이산가족만 5만여 명에 달했고, 총 500여 명의 이산가족이 상봉하였다. 또 78%라는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한편, 전파를 타고 세계에 알려지기도 하였다.

대한적십자사 남북가족찾기회담 북한에 제의 참고 이미지
대한적십자사 남북가족찾기회담 북한에 제의
(1971)
남북가족찾기 남북적십자 제4차 대면 참고 이미지
남북가족찾기 남북적십자 제4차 대면
(1971)
남북적십자회담 대한적십자사 대표단 판문각 도착 참고 이미지
남북적십자회담 대한적십자사 대표단 판문각
도착 (1972)

이런 분위기 속에서 1984년 북한의 조선적십자회가 남한의 수재민을 위하여 구호물자를 보내겠다는 제의를 해왔고, 남한적십자사가 이를 수락함으로써 실무자 접촉을 계기로 3차례의 본회담이 재개되었다. 1985년 5월 27∼30일 열린 제8차 본회담에서 8.15광복 40주년을 전후하여 이산가족 고향방문단과 예술공연단의 교환방문을 추진하기로 합의하고, 그해 9월 20∼23일 남북적십자 총재는 각기 151명씩의 방문단을 거느리고 서울과 평양을 방문하였다. 이후에도 대한적십자사는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계속 추진하고 있으며, 1992년에는 일제강점기 때 사할린으로 강제 이주되었던 동포를 귀환시켜 국내에 정착하도록 도왔다. 한국에 거주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대한적십자사 회원이 될 수 있다.

(집필자 : 김정미)

참고자료

  • 대한적십자사 홈페이지 (http://redcross.or.kr)
  • 대한적십자사, 『대한적십자사70년사』, 대한적십자사, 1977.
  • 대한적십자사, 『이산가족백서 II』, 대한적십자사, 1986.
  • 대한적십자사, 『이산가족백서Ⅰ』, 대한적십자사, 1976.
  • 두산백과 (http://www.doopedia.co.kr)
  • 박문각,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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