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스포츠 경기장, 국회, 각각 다른 장소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어떤 행사가 치러질 경우 국민의례가 빠지지 않는 곳이란 점이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시작으로 진행되는 국민의례.
그 다음으로 ‘애국가 제창’,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 순서로 국민의례가 진행된다. 어떤 자리에서건 없던 애국심도 저절로 생기게 하는 경건한 의식이지만, 그 안에는 여러 이견이 있었다.
우선 ‘국민의례’라는 말부터 문제였다. 몇몇 국어학자들은 국민의례라는 말 속에 제국주의에 충성하고자 만든 기본 정서가 담겨있다고 지적했다. 사실, 국민의례는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일본 교단이 태평양전쟁 완수를 위해 기미가요를 연주하고 묵념을 했던 의식에서 출발한 것이라는 설이 있는 만큼 일제강점기의 식민용어란 주장이다. 그러나 본래의 출발이 어떠했든 간에 국민의례는 우리 역사 속에서 주요 행사의 시작을 알리며 국가에 대한 존경과 애착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늘 똑같은 형식으로 이뤄진 것만 같은 국민의례도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화했다 점이다.
국민의례 절차에서 낭송하는 맹세문은 1968년 충남도교육청 장학계장이었던 유종선씨가 처음 만들었다. 초기엔 충남지역 학교에서만 사용되다가 1972년 문교부가 이를 각 학교에서 실시하도록 함으로써 전국 학교의 모든 학생이 ‘국민의례’를 할 때 ‘국기에 대한 맹세’를 낭송해야했다.
이후 1980년 국무총리 지시로 국기에 대한 경례 시 ‘국기에 대한 맹세’를 병행 시행토록 했는데, 그 내용이 1984년 2월「대한민국 국기에 관한 규정」으로 법제화되었다. 그 후, 1996년에는「대한민국 국기에 관한 규정」이 개정되어 국기강하식과 각종 행사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 중 애국가가 연주될 경우 국기에 대한 맹세문 낭송은 생략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국기에 대한 맹세문은 몇 차례 수정되었다. 2007년에는 25년 만에 대대적인 수정이 이뤄졌는데, 이는 국민여론의 영향이 컸다. 전국의 만 20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전화 여론조사 결과, 국기에 대한 맹세문은 있어야 하지만 시대 상황에 맞게 수정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42.8%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당시 행정자치부는 국민의 뜻을 반영해 맹세문 일부를 수정하였다.
‘국기에 대한 맹세문’ 변경
초기 |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의 통일과 번영을 위하여 정의와 진실로서 충성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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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이후 |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
2007년 이후 |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
그 후 2010년에 국민의례에 대한 지침이 다시 한번 개정되었다. 행사규모와 내용에 따라 의례의 절차를 ‘약식’과 ‘정식’으로 구분하였다. ‘약식절차’는 ‘국기에 대한 경례’만 하고 그 다음 의례는 생략하는 것으로, ‘국기에 대한 맹세'는 낭송하지 않으며 의례 순서를 생략한다고 해서 ’이하생략‘이라는 말도 하지 않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식절차‘는 국민의례 순서를 모두 진행하는 것인데, ’국기에 대한 맹세문‘을 사회자가 낭송하도록 하며, 애국가 제창은 가능하면 4절까지 부르도록 하지만 1절만 제창해도 되도록 했다. 묵념할 때는 행사 내용을 고려해서 말을 덧붙여도 되지만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이라는 말을 필수로 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국민의례는 늘 ‘절차의 간소화냐’, ‘철저하게 지키느냐’라는 문제로 혼란을 빚어왔다. 많은 행사에서 국민의례가 생략되고 있어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국민의례를 보는 여러 시선이 있지만, 그 시선의 바탕은 모두 똑같지 않을까 생각된다. 나라 사랑의 마음, 형식은 형식일 뿐일 테지만, 형식도 때론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