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여름과 겨울 방학을 보내야 하는 학생들은 방학을 앞두고 매번 마냥 놀기에도 불안하고, 그렇다고 긴 방학 시간 동안 공부에만 열중하자니 아쉽기 마련. 방학이란 분명, 더운 여름, 그리고 추운 겨울 잠시 학업을 멈추고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을 갖기 위함이지만 요즘 학생들에게는 ‘휴식’이 아닌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에서는 대개 7월 20일경부터 8월 20일경까지가 여름방학, 12월 20일경부터 1월 20일경까지가 겨울방학 기간이다. 대학의 방학은 이보다 길어서 7월 초부터 8월말까지 여름방학이고, 12월 말부터 2월까지는 겨울방학 기간이다. 거기에 최근에는 초·중·고교가 자율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단기 방학(재량휴업)도 있고 지역에 따라 봄방학을 하는 곳도 있다. 과거, 방학은 어떤 모습이었을지 잠시 시간여행을 하고자 한다.
1950 ~ 1960년대까지 방학은 더위와 추위를 피해 학교를 쉬고 농번기 부족한 일손을 도와주거나 학생들의 독서나 여행 등에 활용됐다. 방학을 맞이해 초등학생이나 청소년들이 친척 집을 방문하는 것도 중요한 일과였다. 하지만 점차 방학동안 그냥 놀기보다 학업적으로도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자는 목소리가 생겨났다. 목표와 생활습관을 스스로 정해서 방학을 활용하자는 취지에서였다. 중고등학교 졸업반은 입학시험을 앞둔 시기였기 때문에 여름 방학기간 동안 보충수업이 이뤄지기도 했다.
방학의 즐거움도 빠지지 않았다. 여름방학 당시 최고 인기 장소는 ‘풀’이었다. 오늘날 물놀이장으로 생각하면 된다. 당시 어린이 풀은 장충단 공원, 탑골공원, 인현공원, 사직공원, 묵정공원, 삼청공원, 영등포공원 이렇게 일곱 군데에 있었고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이용할 수 있었다. 겨울 방학 때는 동네 골목에서 친구들과 딱지치기, 구슬치기를 즐겼고, 눈이 내리고 얼음이 얼면 눈싸움과 앉은뱅이 썰매를 즐기며 놀았다. 또 많은 어린이가 만화가게로 몰려 웅성거렸다. 대학생들은 농촌으로 그룹 활동을 다녀왔다. 농촌봉사활동부터 문맹퇴치와 계몽활동은 물론, 무의촌 진료를 펼쳤다.
1970년대에는 본격적으로 방학 기간이 학교생활의 연장선상이란 의미에 초점이 맞춰진 시기다. 중·고등학교에선 방학 기간을 보충학습을 하는 시간으로 활용을 했고, 1971년 KBS TV 학교 방송은 방학을 맞아 ‘방학생활’이라는 프로그램을 제작해 방영했다. 대상은 유치원부터 중학생까지였고, 유치원 대상 프로는 1편, 초등학교 대상이 5편, 중학교 대상 5편, 학부형과 교사 대상이 1편, 초등학교, 중학교 공통 2편(교육영화, 인형극)이었다.
그전에 판매되던 『방학공부』책은 문교부(현 교육부)에서 1979년 여름 방학부터 『탐구생활』이란 이름의 교재를 제작해 초등학생 5백 70여만 명에게 무료로 배포하기 시작했다. 이전 교재였던 『방학공부』가 주입식 위주의 가정학습용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면, 『탐구생활』은 책의 전체 내용에 과학 과목을 60% 이상 배정, 방학기간 동안 학생들이 자연과 접하고 각종 동식물 상태를 탐구하면서 스스로 연구하고 답을 찾아보는 내용을 담았다.
1980년대 대학생들은 방학 때 규제로 울고 규제로 웃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과열 과외 문제’로 1980년 7월 과외수업이 법적으로 금지되었다. 1960년대 이후부터 1970년대까지 방학 동안 대학생들의 학비 벌이 수단이었던 과외가 전면 금지되면서 대학생들은 새로운 학비 조달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음식점이나 세차장, 주유소에서의 시간제 근무 등 다양한 형태의 아르바이트를 했다.
같은 시기에 해외 연수 규제가 풀렸다. 국가보위비상대책 상임위는 1980년 7월 23일 그동안 억제해오던 방학 중 대학생 해외연수를 해제하기로 하고, 여름방학부터 소속 학교장의 추천이 있는 경우 개인 또는 단체의 해외연수를 허가했다. 처음엔 단순 해외 견문, 어학연수 목적뿐이었으나, 점차 학술세미나 참관 해외건설현장에서의 실습 등 그 목적과 경험 분야가 다양해졌다. 그러다가 1989년 3월부터 다시 대학생에 의한 과외가 허용되었고 현재까지 방학 동안 대학생들이 학비를 버는 주요한 아르바이트가 되고 있다.
방학 숙제하면 빠지지 않았던 곤충채집은 1990년에 들어서면서 사라진다. 1994년 환경처와 한국교총은 여름방학을 ‘환경 방학’으로 정하고 여름방학 숙제에 곤충과 식물채집을 금지했다. 대신 쓰레기를 재활용한 공작숙제가 있었고, 일회용품 안 쓰기, 환경보호 실천 일기 등을 가족실천과제로 내줬다. 그해 전국 7천 4백여 개의 초등학교에 재생용지로 제작된 환경 방학 일기장이 배부됐다.
하지만 도시 어린이들을 억지로라도 자연으로 들어가게 했던 채집 숙제가 사라지자 자연학습의 기회가 없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방학 기간 가족 단위의 자연체험 캠프는 물론, 야영장의 인기가 높아졌다.
1990년대 후반에 오면서 전인교육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지고, 방학 중에는 컴퓨터, 스포츠 등에 참여하며 창의적으로 자기 개발에 힘쓰는 것이 강조됐다. 1990년대 제주지역에는 특이한 테마를 가진 이색방학들이 번졌다. 음력 8월 1일을 전후해 성묘하는 제주지역 벌초 풍습에 맞춰 제주지역 대부분 초등학교가 ‘조상숭배의 날’을 만들어 ‘벌초방학’을 운영했다. 감귤 수확철인 11월~12월에 이르면 남제주군(현 서귀포시) 남원읍 지역 초등학교 등 감귤주산지에서는 ‘감귤 방학’이 시작됐다. 과거 농번기 방학에서 변형된 이들 방학은 어린이들이 집안의 바쁜 일손을 다소나마 덜어주며 노동의 소중함을 직접 체험토록 학교에서 배려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요즘 학생들은 방학 때 무엇을 가장 하고 싶을까.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초등학생들의 경우 가족여행이 1위(70.8%) 물놀이, 놀이동산 가기가 2위(67.7%)였다고 한다. 어린이들은 방학을 가족과 추억을 쌓는 시간으로 생각했다. 반면, 중· 고교생들에게 방학은 많은 경험과 자기 계발을 하고 싶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ㆍ도ㆍ교육청이나 기타 기관에서 주최하는 해외연수 프로그램에 많은 청소년이 몰린다. 요즘 대학생들의 방학은 취업과 등록금 걱정에 한시도 마음 편할 수 없는 시간이다. 실제로 방학기간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다는 학생이 90%를 넘었다. ’방학‘을 보내는 학생들의 모습만 봐도 시대와 세대의 고민이 보이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