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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향한 꿈의 씨앗, 우리별 인공위성!! 인공위성

“하늘에 쏘아올린 호기심의 눈(眼), 인공위성”

인공위성(Artificial Satellite)은 달처럼 지구를 타원 궤도에 따라 돌 수 있도록 만들어진 물체이다. 그 종류는 우주 관측, 지구 관측, 상업용(GPS/방송), 군사용 등이 있으며, 목적에 따라 지구와의 거리 및 궤도를 유지한 채 끊임없이 움직이며 역할을 수행한다. 2013년까지 지구에서 발사한 인공위성은 6,000여 대에 이르며, 현재 수많은 인공위성들이 각각 다른 목적을 띠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 지구 주변을 정찰하거나 우주를 향한 꿈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 이 가운데 폐기되거나 대기권에 진입하여 타서 없어진 것을 제외하면 지구궤도에 떠다니고 있는 인공위성은 한 치의 틈도 없이 지구를 둘러싸며 돌고 있다. 이제 인류는 각국이 경쟁하듯 쏘아 올린 인공위성끼리의 충돌과 어느새 수명이 다해 우주쓰레기로 전락한 인공위성들을 치우기 위한 대안을 모색해야할 시점이다.

인공위성을 이용한 해양원격탐사시스템 썸네일 이미지
인공위성을 이용한 해양원격탐사시스템(1992)

1969년 7월 20일 텔레비전을 통해 미국 우주선 ‘아폴로 11호’가 최초로 달 표면 착륙에 성공하는 장면을 본 사람들은 지금까지 멀게만 느껴졌던 우주로 향한 꿈을 현실로 여길 수 있게 되었다. 인류 최초로 달 표면에 발자국을 남긴 닐 암스트롱(Neil Amstrong)은 우주를 향한 발을 내딛으며 “이 첫걸음은 한 인간에게 있어서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 전체에게 있어서 커다란 첫 도약입니다.”라고 했다. 그로부터 23년 후, 우리나라는 우주를 향한 도약의 첫 발을 내딛는다.

우주에 빼곡한 인공위성 중 ‘우리별’은 어디에?

1993년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자 한 사람이 이스라엘 와이즈만연구소에 방문했다. 이곳에서 우주의 인공위성 그림을 본 그는 강한 충격을 받았다. 우주 속 빼곡히 들어찬 인공위성 가운데 우리나라의 인공위성이 들어갈 자리가 안 보였기 때문이다. 하루 빨리 우리도 인공위성을 연구개발 해야겠다고 다짐한 그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 로켓과 인공위성 개발 특별 연구비를 마련해, 인공위성 관련기술을 보유할 수 있는 초석을 마련했다. 김영삼 정부 초대 과학기술처 장관을 지낸 김시중 박사의 이야기이다.

우리의 인공위성 개발 역사는 1987년에   「항공우주산업개발촉진법」  이 마련되고, 1989년 8월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인공위성연구센터가 설립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1992년 8월 11일 마침내 최초의 ‘우리별 1호’가 아리안 발사체에 의해 남미 꾸르우주센터에서 발사되었다. 세계 22번째로 인공위성 보유국가가 된 순간이었다. 우리별 1호는 한국과학기술원 인공위성연구센터가 영국 세레이 대학의 기술을 전수받아 제작한 48.6kg의 소형 인공위성으로, 고도 1,300㎞의 궤도를 따라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이 110분, 주요 임무는 지구표면 촬영, 음성자료와 화상정보 교신 등의 실험이며 수명은 5년이었다.

금성위성통신 지구국 개통식 썸네일 이미지
금성위성통신 지구국 개통식(1970)
인공위성 우리별1호 지구위성국 연구실 썸네일 이미지
인공위성 우리별1호 지구위성국
연구실(1992)
인공위성 아리랑1호 개발 성공 기념식 썸네일 이미지
인공위성 아리랑1호 개발 성공 기념식
(2000)
다목적 실용위성 아리랑1호 발사계획 썸네일 이미지
다목적 실용위성 아리랑1호 발사계획(1992)

1993년에는 순수한 우리 기술로 설계 제작한 ‘우리별 2호’가 발사되었고, 1999년에는 인도의 우주로켓을 빌려 무게 100㎏짜리 ‘우리별 3호’가 발사되었다. 이후 매년 더 크고 더 성능이 좋은 카메라와 최신식 각종 측정기 등이 탑재된 통신위성, 과학위성, 다목적 실용위성 등을 2015년까지 20여 차례 쏘아 올렸다. 몇 번의 실패도 있었다. 2009년 8월 25일 지구온난화와 기후변동을 관측하는 인공위성을 탑재한 2단식 로켓 '나로호'가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됐으나 실패하고, 2010년 6월에도 궤도진입에 실패하였다. 그러나 2013년 발사 시도 세 번째 만에 첫 우주발사체 ‘나로호’가 발사에 성공, 우리나라는 세계 열한 번째로 스페이스클럽에 가입한 나라가 되었다.

우리의 우주개발 역사 중 인공위성 발사 외에 주목할 두 가지 사건은 먼저, 2008년 4월 8일 최초의 한국우주인이 탄생한 것이다. 우주인 이소연이 러시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소유즈 TMA-12에 탑승하여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도착해서, 총 10일간 다양한 과학기술 임무를 수행한 후 소유즈 TMA-11편으로 지구로 귀환한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2009년 6월 30일 전남 고흥군 봉래면 외나로도에 나로우주센터가 설립되었다. 2000년 건설에 착수하여 8년 반 만에 나로우주센터가 완공되면서 우리나라는 세계 13번째 우주센터를 보유한 국가가 되었다.

2015년 24시간 지상 감시용 ‘아리랑 3A호’ 성공적 발사

2015년 3월 26일 오전 7시8분 45초. ‘아리랑 3A호’가 러시아의 야스니 발사장에서 성공적으로 발사됐다. 주·야간 전천후 지구관측 시대를 열어줄 다목적 실용위성 아리랑 3A호에는 해상도 55㎝급 전자광학카메라와 함께 처음으로 적외선(IR) 관측 센서가 장착됐다. 해상도 55㎝급이란 땅 위에 있는 가로세로 각각 55㎝ 물체를 점으로 인식할 수 있다는 의미로 성인 한 사람을 인식할 수 있는 수준이며, 적외선 센서는 땅 위 물체에서 나오는 미세한 열을 감지한다. 아리랑 3A호는 앞으로 4년간 지구 주변 528㎞ 상공을 하루 15번씩 돌며 지상관측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특히 우리가 자체 개발한 적외선 관측 센서는 땅위의 차량이나 건물 등에서 내뿜는 중적외선을 감지해 도시 열섬 효과나 산불 발생, 밤에 움직이는 구름 등을 관측할 수 있다. 또한 전자광학카메라와 영상레이더(SAR), 적외선 관측 센서(IR)는 밤낮과 날씨에 상관없이 24시간 지상을 감시할 수 있어 세계에서 네번째로 고해상도 적외선 영상을 촬영하는 위성을 보유하는 나라가 된 것이다. 적외선 관측 위성은 현재 미국과 프랑스, 독일, 러시아, 중국, 이스라엘, 일본 등이 비공식적으로 보유하고 있다.

무궁화 1·2호 위성 활용대책 검토보고 썸네일 이미지
무궁화 1·2호 위성 활용대책 검토보고(1995)

세계 우주개발 역사는 50년, 우리나라의 우주개발 역사는 이의 반에 못 미치는 23년에 불과하다. 현재 운용 중인 전 세계 1천 265개 위성 중 우리의 위성은 8개로 전체의 0.6%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로켓 엔진과 관련한 핵심 기술이 없어 독자적인 위성 발사는 불가능한 것이 우리의 우주개발 현상황이다. 2013년 우주기술중장기계획에 의하면, 향후 2025년까지 우리는 차세대 중형위성 12기를 개발, 발사할 예정이다. 또한 국가의 위성 기술을 민간에 이전하고 민간산업체 주도로 위성개발을 본격 추진 중이다.

(집필자 : 남애리)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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