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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현대 예술사의 산증인 세종문화회관

최근에는 대규모의 공연이나 전시, 행사를 치룰 수 있는 공간이 그 운영주체나 지역에 따라 다양다종 하지만, 불과 30여년 전 만 하여도 세계적인 행사를 치러 낼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은 ‘세종문화회관’이 유일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78년 개관한 이래 오늘날까지 많은 문화행사가 열리고 있는 세종문화회관은 그러기에 우리나라 현대 문화 예술사의 산증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세종문화회관의 기원

현재 세종문화회관이 있는 자리에 회관을 설립할 계획을 세운 것은 1955년이었다. 6.25전쟁이 끝난 후, 이승만 탄생 80주년을 기념하는 공간으로 현재 세종문화회관 자리에 이승만의 아호인 ‘우남’을 딴 우남회관의 건립을 계획한 것이다. 당시 민주당은 우남회관 건립의 불필요성을 주장하며 예산집행을 막았지만 결국 1958년 상량식을 하였다.
그러나 설계단계부터 건립비 총액에 대한 정확한 계산을 하지 못한 상태로 시작된 공사는 처음부터 삐걱거렸다. 1950년대 말 우리나라 상황은 건설기초자재를 국내에서 생산할 능력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철근부터 시멘트까지 모든 것을 외국에서 수입해야 했고, 설계 당시 예상치 못했던 각종 시설비 등이 소요되어 공사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 와중에 1960년 4월 19일 ‘4.19’ 혁명이 일어나고 이승만 대통령이 하와이로 망명하면서 1960년 8월 서울시의회는 건설 중인 ‘우남회관’의 명칭을 ‘시민회관’으로 변경하였다.

우남회관 착공식 참고 이미지
우남회관 착공식(1956)
우남회관 상량식 참고 이미지
우남회관 상량식(1958)
우남회관건축용 자재의 수입협의 참고 이미지
우남회관건축용 자재의 수입협의(1959)

시민회관은 1961년 10월 연건평 2,900평의 4층 규모의 건물로 완공되었는데, 당시 우리나라 최고·최대의 규모였다. 시민회관에서는 한국 최초의 뮤지컬 극단 ‘예그린악단’의 창단 공연을 비롯해 연극, 뮤지컬, 악극, 리사이틀 등 각종 대중문화공연이 열렸고, 매년 연말에 MBC-TV의 ‘10대 가수 청백전’이 열려 화제를 모으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시민회관은 1972년 12월 2일 ‘10대 가수 청백전’ 공연 중 무대 위 조명장치가 터지면서 일어난 불로 전소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이 화재사건은 불이 나자 당황한 주최 측에서 급하게 내린 무대 막에 불이 옮겨 붙으면서 큰 화재가 되었고, 이 사고로 당시 시민회관의 관장을 비롯한 50여명이 사망하는 참극이 빚어졌다.

시민회관 전경 참고 이미지
시민회관 전경(1962)
시민회관 화재진화 모습 참고 이미지
시민회관 화재진화 모습(1972)
시민회관 신축 기공 현장 참고 이미지
시민회관 신축 기공 현장(1973)

시민회관이 불 타 없어진 2년 후인 1974년 서울시민을 위한 문화공간의 필요성이 요구되어 그 자리에 다시 시민회관 건물을 착공하였다. 이후 1978년 2월 당시 예술원 원장이던 박종화와 세종기념사업회 등의 건의로 명칭을 ‘세종문화회관’으로 확정지었다. ‘세종문화회관’이라고 명명한 것은 건물이 세종로에 위치한 점과 세종대왕의 업적 추앙 등을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세종문화회관은 착공한지 4년만인 1978년 4월 14일 개관하였다.

세종문화회관의 이모저모

세종문화회관의 설계는 현상공모에 의해 ‘엄덕문건축연구소’가 맡았는데 한국의 전통양식의 현대적 구현이라는 취지 아래 외부벽면을 화강석으로 마감하였고, 자유와 평화를 상징하는 부조 및 조각·회화작품 등 예술조형물을 곳곳에 비치하였다. 지하 3층, 지상 6층 규모로 대강당, 소강당, 회의장, 연회장, 전시장 등을 갖추어 다목적 문화공간의 기능을 담당하게끔 하였다. 당시 세종문화회관의 준공식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해 서울시만이 아닌 국가적 문화공간으로서 세종문화회관의 위상을 부각시키기도 했다.

세종문화회관 건물 전경2 참고 이미지
세종문화회관 건물 전경2(1978)
박정희 대통령 세종문화회관 개관식 참석 참고 이미지
박정희 대통령 세종문화회관 개관식 참석
(1978)

세종문화회관의 각종 부대시설은 당시로서는 최첨단이었는데, 특히 독일의 ‘칼 슈케(Kal Schuke)’사가 제작하여 대강당에 설치한 파이프오르간은 당시 세계 5대 오르간이라고 일컬어 질만큼 큰 규모를 자랑하였다. 당시 돈으로 125만 달러의 거액을 들여 설치한 이 파이프오르간은 파이프만 8,098개에 높이 11m, 무게 45t짜리로 아시아 최대 규모였다. 세종문화회관에 파이프오르간을 설치한 독일인 슐츠는 한국 관계자들이 일본 NHK홀에 설치된 오르간보다 더 크게 만들어달라고 주문한 것이 특히 인상적이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이 파이프오르간의 형태는 전통악기인 거문고 모양을 본떴는데, 거기에 한국의 지붕양식을 본뜬 스페니시 트럼펫 및 한국의 범종 32개를 특별 배치하기도 했다. 당시 무대 조명과 음향관계 기기는 첨단 기술을 자랑하던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기계와 기술을 도입하였는데, 현물을 받은 후 국가 간 차관 형식으로 4년여 간 이자와 대금을 치르면서 기계장치를 다루는 기술을 이전받았다.

시민회관건립에 따른 기자재 도입을 위한 차관계약 인가 참고 이미지
시민회관건립에 따른 기자재 도입을 위한 차관계약 인가(1975)

세종문화회관은 개관 이래 국내외의 유수한 예술단체와 개인의 공연과 전시를 유치함으로서 명실상부 우리나라 문화 예술의 본령이 되었다. 특히 1988년 ‘예술의 전당’이 건립되기 전까지 우리나라의 문화예술의 전당으로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였다. 2003년에는 노후된 시설을 전면 보수하여 이듬해에 대극장을 재개관했으며, 2006년과 2007년에는 ‘세종 체임버홀’과 ‘세종M씨어터’를 새롭게 열고 예술동을 증축해 다양한 장르의 공연과 전시를 소화했다. 최근에는 연계공연, 광화문 마당, 동네문화클럽 등을 통해서 서울시의 문화예술 허브로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증축 참고 이미지
세종문화회관 증축(1985)
(집필자 : 김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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