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눈높이를 고려한 냉장고 수납공간, 운전자의 시선과 팔 길이를 적용한 자동차의 인터페이스, 손가락이 닿는 범위에 맞춘 스마트폰 등 적합성이 우수한 제품들과 생활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인체정보가 필요하다. 국민표준체위는 우리나라 사람의 몸에 잘 맞는 인간공학적 제품을 만들기 위한 국민들의 신체 데이터로서, 신체 각 부위 간의 길이나 둘레 등 인체 부위를 정밀 조사해 산출한 표준 통계치이다. 국민의 신체를 보건의료만이 아니라 산업용 표준을 확립하기 위한 목적으로 측정하고 분석하는 것이다. 국가표준화사업의 일환인 국민표준체위는 한국인의 표준 인체 측정치에 의해 산업제품의 표준치를 설정, 표준 규격의 기초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즉, 의류, 가구류, 신발, 설비 등 산업제품을 우리 몸에 맞도록 제작해 보다 편리하게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1970년대 초 방위산업을 육성하면서 미군이 원조해 준 M1 소총이 한국인 체형에 비해 지나치게 크고 무거워서 사용이 어렵게 되자 우리 몸에 맞는 무기를 생산해서 사용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또한, 비단 군수장비 뿐만 아니라 근대화산업은 서구의 모방이 아니라 우리 몸에 맞는 제품 생산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1970년대부터 국산제품의 생산이 하나 둘씩 늘어나면서 독자적 규격의 설계 생산 방식이 필요하게 되었고, 인체측정 및 인간공학적 자료의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게 되었다.
국가기술표준원은 1979년 제1차 국민표준체위조사를 시작으로 2015년 제7차 조사까지 36년 동안 5∼7년 주기로 실시해왔다. 그동안 패션 의류, 신발 제화, 가구, 자동차, 모터사이클과 자전거, 전기 및 전자, 로봇 등 거의 모든 산업 제품의 설계에 다양하게 활용된 국민표준체위는 우리 국민들의 신체 전반에 대한 내용을 알 수 있는 바로미터나 다름없다. 팔, 다리, 손, 발, 머리둘레 등 몸의 각 부분에 대한 치수 외에 동작범위와 근력 등 다양한 정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자료인 국민표준체위는 ‘한국인 인체치수’, '사이즈코리아(Size Korea)' 사업으로 불려지고 있다. 36년간 국민표준체위조사로 측정된 데이터는 185만 종의 인체치수, 2만 종의 동적치수 및 12만 종의 3D 인체형상 자료들로, 독창적인 한국형 산업제품 개발에 이용되어 왔다.
광복 후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고 극적인 정치·사회·경제·문화적 변화를 경험했다. 그 속에서 한국인의 ‘몸’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보릿고개를 겪은 세대와 경제적 풍요를 겪은 세대 간에 체형 차이도 뚜렷이 나타나고 있는데, 특히 신장, 다리 길이와 신체 비율, 체중 등에서 점점 ‘서구화되어 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이 2015년 실시한 ‘제7차 한국인 인체치수 조사’ 결과에 따르면, 36년 전인 1979년 1차 조사 당시 보다 우리 국민들은 ‘키가 커지고, 뚱뚱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16∼69세 전 연령대에서 남녀의 평균 키가 커졌는데, 20대 남성의 평균키는 173.9㎝, 여자는 160.9㎝ 였다. 1979년 이후 전체 연령대에서 남자는 5∼7.6㎝, 여자는 3.7∼6.5㎝ 가량 평균 키가 커졌는데, 특히 30대(30∼34세)에서 남자는 7.6cm 커진 173.7cm, 여자는 6.5cm 커진 160.2cm로 신장 변화가 가장 뚜렷했다. 신체비율에 있어서는 특히 여성의 경우, 키에 비해 다리가 긴 '롱다리' 체형으로 변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만 인구는 1979년 이후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로, 특히 남성의 비만화가 두드러졌다. 30대 이후 성인 남자의 절반 정도가 비만으로 나타났고, 여성의 경우 10대 후반에서 증가하다가 20대로 진입하면서 급격히 감소하며, 35세 이후 다시 비만 비율이 30%이상을 차지하면서 점차 증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복부비만의 지표가 되는 허리둘레는 1979년 이후 전체 연령대에서 남자는 3.6∼10.4㎝, 여자는 3.1∼5.5㎝ 가량 증가했다.
체형변화에 대한 통계치는 우리 생활에서 불편을 초래하는 것들에 대한 개선책 마련에도 기여했다. 한 예로 극장 의자는 1960년대 48cm에서 2000년대 55cm로 넓어졌다. 한편, 지하철 좌석의 경우 1970년대 지하철이 생긴 이후 한 번도 규격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좌석이 좁다’는 민원이 계속 제기되어, 서울메트로 측은 2017년 좌석 폭을 늘릴 계획이라고 한다.
국가기술표준원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협력하여 2016년부터 한국인 인체 치수 조사 사업에 연령대별 보폭 길이, 관절의 각도, 발의 압력 등을 입체 형상으로 측정하는 항목을 추가하기로 했다. 이는 모자·마스크 등을 착용해 CCTV 녹화영상으로도 개인 식별이 곤란한 경우 걸음걸이에 관한 동적 움직임을 분석해 동일인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법보행이 최근 범죄수사에 활용됨에 따라, 한국인 인체치수 조사를 바탕으로 범죄수사를 지원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서구화된 청소년의 신체조건과 교육환경 변화에 따른 학생의 활동반경을 고려해 ‘가변형 책걸상’ 제작을 위한 표준과 머리영역 제품(모자, 헬멧, 마스크, 헤드셋 등)의 설계를 위한 맞춤형 지침도 마련한다. 이외에도 국립재활원과 공동으로 고령자와 장애인의 신체동작범위를 분석해 이동기기, 자세보조기구, 재활기구, 보조로봇 등의 제품과 생활공간 설계에 필요한 인체정보가 담겨 있는 지침을 개발해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제품을 개발하고 생활공간 설계 등을 지원하기로 했다.
미래 IT산업을 이끌 착용형 스마트 기기 웨어러블(Wearable)을 실용화하는 데 필요한 한국인의 인체정보 데이터를 구축하는 작업도 본격화된다. 기존의 국민표준체위 조사가 단순히 인체정보를 제공하는데 그쳤다면, 2016년부터는 제품 설계에 필요한 인체정보를 추출·가공함으로써, 스마트 안경 등 착용형 스마트기기의 디자인 산업화에 토대를 마련하겠다는 것이 국가기술표준원의 계획이다. 2016년 웨어러블 스마트기기를 시작으로 자동차, 헬스케어기기 등으로 확대될 한국인의 치수 데이터가 향후 여러 산업 분야에 어떻게 접목될지 귀추가 주목된다.